안녕하세요! 사랑방 상임활동가 영서입니다.
9월호에 짤막한 인사말을 실은 것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는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다른 활동가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어떻게 썼을까 찾아보다가 그 자리에서 꼬박 3년 치 ‘활동가의 편지’를 읽어버렸습니다. 재미와 교훈이 섞여 있는 글들을 읽고 나니 오히려 글을 쓸 자신감은 더 떨어지고 말았지만, 모름지기 부족함은 신입활동가만의 특권일 거라 믿으며 편지를 시작합니다.
사랑방에 들어온 지가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가고 버젓이 명함까지 나왔는데도 아직 활동가라는 이름은 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입방 후 집회를 다니며 만난 다른 단체의 활동가분들과 인사하고, 저를 사랑방 상임활동가로 소개할 때는 그렇게 머쓱할 수가 없습니다. ‘활동가’라는 말은 저보다는 더 멋지고 대단한, 예를 들면 여기 함께 있는 사랑방 활동가 같은 사람들에게만 붙여지는 칭호 같달까요. 그러니 하루 빨리 제게 주어진 귀한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조바심이 나기도 했는데, 연말까지 이어지는 교육 대장정 앞에서 조바심은 사그라들고 그 마음은 곧 열정과 설렘으로 바뀌었습니다. 공부가 일이고 일이 배움이라니요! 다른 활동 경험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그럴듯한 이상만 안고 사랑방에 찾아왔던 제게는 너무나 꿈같은 시간입니다. 올해 뭐가 끼었나 싶을 정도로 계속되었던 자잘한 불운들은 다 사랑방과 함께 하기 위한 관문이었다고 농담 삼아 말하고 다닐 정도로 과분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활동가라는 이름표를 잘 갈고 닦아보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 이름이 제게 착 붙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한 달 동안 사랑방에서 많이 했던 말이라고 하면, 아마 “몰라요” 아니면 “모르겠습니다”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무언가 제대로 알고 시작한 적은 단연코 한 번도 없었고, 그것이 나쁘다고 여긴 적도 없지만 ‘이렇게나 뭘 모르고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든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겠다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인생은 내가 어디까지 모르는지 확인하는 시간인 것 같다’ 하는 철학적(?) 고민에 빠지기도 했답니다. 웃기지만 이 생각에 대해서는 여전히 동의하고 있어요. 부끄럽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배신감에 가까운 감정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꽤나 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고 여겨왔던 제 자신에게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요. 그 배신감 속에서 책을 읽고 또 읽다가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적어도 무엇을 모르는지 정도는 알 것 같은 단계까지는 도착했습니다. 이런 변화가 뿌듯하면서도, 다시 새로운 책을 읽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면 이게 무슨 소리지 하며 머리를 긁고 있을 제 모습이 뻔히 보이지만 어디에 물음표를 세워야 하는지 알게 되었으니 다음엔 조금은 덜, 조금은 약하게 긁고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반대로 사랑방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확실하게 “왜?”입니다. 사무실 안에서 ‘왜’는 상임회의나 활동 이야기를 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떠다니고 있습니다. 상하관계가 확실한 체계 안에서 뭐든지 그러려니 지내왔던 저로서는 너무나 새로운 광경이었습니다. 보통 잘 모르더라도 ‘이유가 있겠지’ 하며 대충 넘겨짚고 지나갔을 것들이 여기서는 그냥 넘어가지 않고, 이야기가 더 깊이 흘러갑니다. ‘왜’가 더 많이 끼어들수록 생각의 방향이 훨씬 명확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 자리에 함께 있으니, 새삼 저도 궁금한 게 많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새로 생겨난 질문들을 혼자 해소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든든한 마음으로 제 안에 숨어있던 ‘왜’를 꺼낼 준비를 해봅니다. 어디까지 질문해야 하고, 또 어디까지 질문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선은 무엇이든 더 궁금해하고 싶습니다.
짧은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너무나 개인적이고 솔직한 소감과 적응기를 늘어놓아 버린 건 아닌지 뒤늦게 걱정이 됩니다. 운동을 일상으로 엮고 일상을 운동과 함께 하고 싶었던, 내내 품어온 막연한 목표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기쁨이 계속 새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멋모를 수 있는 이 시기를 조금 더 즐겨도 되겠지요?

입방이 딱 한 달째 되는 날, 이웃단체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가들과 함께 한 식사 자리에서 ‘십이지권’이라는 다육식물을 선물 받았습니다. 언젠가 힘든 때가 오더라도 일 년 십이 개월을 옆에서 살아내는 존재가 있으면 의지가 될 거라는 따뜻한 이유는 덤으로요. 웬만해선 잘 죽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 식물 친구와 함께, 그리고 동료 활동가들과 함께 인권운동사랑방의 어엿한 활동가로 살아보겠습니다.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