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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인 인터뷰

‘남부끄럽지 않은 할머니 활동가’를 꿈꾸는

박상은 님을 만났어요

이번 달 후원인 인터뷰에서는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노란리본인권모임 자원활동가로 함께했던 박상은 님을 만났습니다. 지금은 사회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자 재난 연구자,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의 활동가로 바쁘게 살고 계신데요. 최근 출간한 도서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에 대한 이야기부터 활동가로서 상은 님의 꿈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플랫폼c에서 반상근하고 있는 박상은 입니다.

플랫폼c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시겠어요?

이게 저에게는 항상 어려운 질문인데, 어디 가서 이야기할 때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신생 단체’라고 많이 말하곤 해요. 몇 년 전에 활동가 10여 명이 월례 모임을 가지면서 시작했고, 2020년 5월에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을 진행해서 이제 2년 정도 되었어요.

저희 이름의 핵심은 ‘c’ 인데요. 처음 단체를 만들 때 몇 가지 의미를 담았어요. 하나는 크리틱(critic), 비판과 비평을 열심히 하는 단체가 되자. 또 한국 사회에서는 흔히 a와 b라는 선택지, 최악과 차악의 선택지만 주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아닌 ‘c’라는 선택지를 만들자는 의미도 있어요. 그리고 구성원들이 코뮤니즘(Communism)을 지향하기 때문에 c를 따오기도 했죠. 이러한 지향을 가지는 사람들이 모이는 ‘플랫폼’, 정거장이 되고자 ‘플랫폼c’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처음 단체를 만들 때는 “일단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목표로 움직였는데요, 2년여 지난 지금 단체의 근간이 되는 활동은 월 1회 진행하는 월례포럼, 사회운동 뉴스레터 발간, 책읽기 모임·동아시아 공부모임·페미니즘 공부모임·뉴스레터 읽기모임·문화 소모임과 같은 회원 소모임 등이 있어요. 또 회원들과 함께 주요한 집회나 실천 활동에 참여하기도 해요. 학습, 실천, 비판을 모두 다 하는 단체입니다. 지금은 상근 활동가 1명, 반상근 활동가 1명, 돋움활동가 2명이 활동하고 있어요.

플랫폼c 홈페이지에서 ‘돋움활동가’라는 명칭을 보고 조금 놀라고 신기했던 기억이 있어요.

사랑방의 돋움활동가에서 명칭을 따오기도 했어요. ‘돋움’이라는 단어가 참 좋아 보였거든요. 플랫폼c의 돋움활동가는 전업 활동가는 아니지만, 1주일에 1회 이상 사무실에 오셔서 함께 단체 운영을 책임지고 있어요. 현재 돋움활동가 분들은 다른 사회단체 경험이 별로 없는, 대학 졸업반이거나 막 대학을 졸업하신 분들이에요. 예전에는 학생운동에서 사회운동으로 진입하는 경로가 어느 정도 자리잡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거의 끊겼잖아요? 사회운동으로 진입하는 새로운 전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분들이 플랫폼c 돋움활동가를 거쳐서 다른 사회단체 활동가가 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어요.

최근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이라는 도서를 출간하셨죠. 책 소개를 해주시겠어요?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은 2014년 세월호특별법 제정 운동부터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와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까지, 그러니까 2014년부터 2018 여름까지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여러 시도를 다루는 책이에요. 2014년 세월호특별법 제정운동에 수많은 시민들과 사회단체들이 열과 성을 다해 함께했고, 그 열망을 받아서 특조위와 선조위같은 조사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왜 아직도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은 이렇게 지지부진할까? 왜 조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고 싶어서 책을 쓰기 시작했어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일 텐데요. 일단 하나는, 아까 한국 사회에서 a와 b라는 선택지만 주어진다고 말했던 것처럼 세월호참사에 있어서도 기존의 진영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면서 진상규명이 활용된 측면이 있는 듯해요. 조사위 차원의 자체적인 문제도 있었는데, 한국에서 단일 사건에 대한 재난조사위원회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게 세월호 특조위였거든요. 잘 몰랐기 때문에 제대로 못한 측면이 있죠. 또 저는 원래 사회운동을 하다가 특조위 조사관으로 결합했기 때문에, 특조위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사회운동의 실책이라고 할까요, 운동이 넘어서고자 했지만 넘어서지 못한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조사위가 잘못 구성되거나 운영된 측면도 있었구요. 이러한 부분들을 잘 돌아보고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책은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재난조사에 대한 책이지만, ‘책임’을 어떻게 물을지에 관한 책이기도 하고, 또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밝혀나갈지를 질문하는 책이기도 해요. 특히 앞으로 기후위기로 인해 더 많은 재난을 마주할 텐데,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운동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사회 전체를 바꾸는 재난조사는 어떻게 가능할지, 세월호참사를 계기로 다 함께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꼭 세월호참사나 재난조사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회운동 단체들이 고민하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얼마 전에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해서 SNS에 올렸어요. 처음 세월호 특별법 투쟁을 할 때 사회운동은 분명히 국가와 사회 시스템을 개혁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그 결과 만들어진 특조위는, 결국 국가 기구이기도 하잖아요? 말하자면 사회운동은 특조위에 대해 국가 기구이면서 동시에 국가를 변화시키는, ‘트로이의 목마’와 같은 역할을 기대했던 거에요. 그런데 이게 과연 실현 가능한 기대였을까? 120여 명 규모의 작은 위원회가 받아안을 수 있는 열망이었나? 저는 특조위 조사관을 하면서, 특조위에 너무나도 많은 임무가 주어졌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거든요. 특조위 종료 이후 해외 워크숍에서 특조위 구성 과정과 활동 경험을 나눴는데, 그때 “왜 너희는 국가 재난조사위원회를 통해서 혁명을 하려고 하냐”는 질문을 듣기도 했어요. 특조위 경험을 돌아보며 조사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고민을 하게 되었죠.

이런 내용을 SNS에 올리고 나서 한 분에게 메시지를 받았는데요, “사회적 약자나 피해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법적으로 그를 보장받으려고 하는 모든 운동이 함께 마주하는 딜레마이자 고민인 것 같다”고 공감하는 내용이었어요. 예를 들면 법 제정 운동이나 국가 정책을 다루는 운동도 마찬가지인데, 국가를 비판하면서도 결국 국가의 변화와 승인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곤란함은 꼭 재난조사만의 문제는 아닐 테니까요. 책을 쓰면서는 재난조사를 다뤘지만, 책을 출간하고 나니 고민이 더 확장되기도 했어요. 사회를 바꾸고 책임을 제대로 물으려는 모든 사회운동과 함께 나누고 싶은 고민이에요.

2기 특조위라고도 불렸던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의 활동 기간이 종료되고 이제 보고서 발간을 앞두고 있는데요. 사참위의 조사 결과를 기대하면서도 '예고된 실망'을 걱정하는 마음이 동시에 드는 듯해요. 세월호를 잊지 않고 싶은 사람들, 세월호의 진실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건네고 싶으신 말이 있을까요?

책을 발간하고 나서 몇몇 분들이 후기나 반응을 들려주셨는데,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었어요. 꼭 재난조사가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조사위원회를 경험하셨던 분들은, 마치 본인 이야기 같다고 공감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조사위원회에 긴밀하게 결합하지는 않았지만 세월호참사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쓰셨던 분들은, 지금까지의 세월호참사 조사가 이렇게까지 뚜렷한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 놀랍다는 반응을 많이 보이셨어요. ‘그래도 국가 조사위원회가 만들어졌으니 어떤 식으로든 잘 조사하겠지’라는 어떤 종류의 신뢰가 무너지니 당혹스럽고, 또 본인이 너무 뭘 모르고 관심을 덜 가져서 미안하다는 분이요.

그런데 저는 이 ‘미안함’이 그분들의 잘못이나 책임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실 조사위원회가 아무리 열심히 조사해서 수백 페이지짜리 보고서를 낸다고 해도, 어떻게 그 보고서를 모든 사람들이 다 읽을 수 있겠어요. 조사위의 책무는 ‘조사’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조사 결과를 서사화하고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지금까지 특조위나 선조위같은 조사위가 이 책무를 계속 방기해온 거죠. 사참위 역시 모호한 결론을 낼 가능성이 높고, 또 사회적으로 조사 결과를 나누려는 노력을 기울일지도 잘 모르겠어요. 조사위의 책임 방기 때문에 세월호를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이 더 노력하고 힘을 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게 ‘관심을 덜 가져서 몰랐다’고 죄책감이나 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싶어요.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이 조사위원회의 세세한 쟁점이나 의혹을 모두 파고들거나 따라가야 되는 건 아니에요. 책에도 적었지만, 지금까지 여러 조사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밝혀진 진실의 조각들이 생각보다는 많이 나와 있어요. 이 조각들을 무슨 관점에서 어떻게 엮고 기억할지,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사회적 논의와 토론이 많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계신 대학원생이자, 재난조사와 관련된 책을 펴낸 재난 연구자이며, 또 플랫폼c 활동가이기도 하신데요. 다양한 정체성 중 상은 님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때그때 다른 것 같아요. 학기 중에는 대학원생 정체성이 커지고, 지금처럼 방학 때에는 활동가 정체성이 커지는 식으로요. 요즘에는 책이 나와서 재난 연구자 타이틀을 쓸 일이 많아지기도 했죠. 그래도 제 본업은 활동가라고 생각해요. 제 꿈은 ‘남부끄럽지 않은 할머니 활동가’가 되는 거거든요. 주변 동료들에게 “슬슬 뒷방으로 빠졌으면 좋겠다”고 뒷담화를 듣지 않는, 혹은 뒷방으로 빠지더라도 젊은 활동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의제를 발굴하고 담론을 개발하는, 그런 할머니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서울의 플랫폼c 사무실과 비서울 지역의 대학원을 오가며 바쁘게 지내고 계신데요, 혹시 쉼과 재생산을 위한 상은님의 노하우가 있으실까요?

조금 문제적인 대답일 수도 있는데요. (웃음) 저는 대학원생 정체성으로 있을 때는 활동이 휴식 같고, 또 한창 활동을 바쁘게 할 때는 공부가 휴식 같이 느껴져요. 제가 박사 과정 들어가면서 플랫폼c 반상근을 시작했어요. 그렇다 보니 지금이 인생에서 제일 바쁜 시기인데, 오히려 정서적으로는 안정되어 있기도 해요. 서로 다른 종류의 일을 할 때 오히려 환기도 되고 숨통도 트이는 측면이 있거든요.

이렇게만 말하면 공부랑 활동만 열심히 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저는 노는 것도 반드시 지켜야 할 공식 일정처럼 소화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학기 초 한창 바쁠 시기에 꽃 구경을 가기로 약속을 잡았는데, 막상 직전이 되면 미루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잖아요? 그래도 절대 미루지 않고 놀러 가는 식이에요.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아무리 바빠도 개봉 직후에 보러 가기도 하고요. 다른 일정에 비해 노는 일정은 중요도가 떨어지는 것처럼 이해되어서 쉽게 미루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절대 쉬지도 놀지도 못하게 되더라고요. “노는 일정도 다른 일정 못지않게 중요한 일정이고 약속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또 놀아지는 것 같아요.

2020년 <빠듯하지만 뿌듯하게> 후원인 모집 사업을 계기로 사랑방 후원을 시작하셨는데요. 언제부터 사랑방을 알게 되셨나요?

사랑방이 워낙 학생운동에서도 유명한 단체였으니 그 전에도 이름은 들어봤을 텐데, 가장 명확한 기억은 2007년의 사회운동포럼이에요. 당시 사랑방이 함께 준비했던 행사이고, 사랑방 활동가들이 발제와 토론으로 많이 나왔거든요. 그 이후에 제가 졸업하고 한 사회단체에서 활동할 때, 세월호참사를 계기로 당시 인권단체들이 구성한 ‘존엄과 안전 위원회’에 결합하면서 많은 인권활동가들을 만났죠. 그러다가 특조위 조사관 임기가 종료되고 제가 잠깐 쉬고 있던 2018년에, 사랑방 자원활동가 모임인 ‘노란리본인권모임’이 구성되며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여행지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미류 활동가의 전화를 받았고, 세월호참사를 인권으로 돌아보자는 문제의식을 나누며 길게 통화를 했던 기억이 있어요. 2018년 무렵은 416연대를 제외하고는 세월호를 주요하게 의제로 삼거나 고민하는 단체가 많지 않았는데, 노란리본인권모임은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에 국한되지 않는 세월호 운동을 고민하는 단위로써 그 몫이 컸다고 생각해요. 모임에서 함께 나눈 문제의식에 저도 많이 빚진 부분이 있기도 해요. 이러한 인연으로 2020년 후원인 모집 사업 소식을 보고 소액이지만 바로 후원도 시작했어요.

 

사랑방에서 진행하는 활동 중에서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게 있으실까요?

최근 2년여 사이에 기후위기 관련 활동을 새로 시작하시고 또 열심히 하고 계신 게 눈에 띄었어요. 처음에는 신기하게 생각하기도 했어요. 환경단체도 아니고, 인권단체인 사랑방이 기후위기 운동을 한다는 점에서요. 그런데 굉장히 중요한 판단이고 전환이었던 것 같아요. 중간중간 기후위기와 다른 의제를 엮어서 발행한 ‘인권으로 읽는 세상’도 인상 깊게 읽었고요. 플랫폼c 역시 사회단체로서 기후위기를 고민해야 한다는 고민을 하게 돼요.

마지막으로 사랑방 활동가들에게 한 말씀 남겨주시겠어요?

방금 말씀드린 기후위기 관련 활동이나, 작년에 사랑방이 제안해주신 ‘다른 세계로 길을 내는 활동가 모임’, 그리고 노란리본인권모임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항상 사회운동에서 너무 중요하고 필요한 역할을 사랑방이 해주시는 것 같아요. “와, 너무 중요한 고민이고 제안이다”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어요. 그러니 앞으로도 이런 역할을 잘 해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어요.

조금 다르게 사랑방이나, 혹은 인권운동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피해당사자’ 혹은 ‘유가족’과 함께 하는 운동의 고민이나 곤란함을 조금 더 정리하고 나눠줬으면 좋겠어요. 한국의 사회운동에서 피해자나 유가족이 운동의 주체로 많이 부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피해자와 함께 하는 운동의 의미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피해자에게 너무 큰 부담과 하중을 주는 방식이기도 하잖아요? 저는 피해자나 유가족을 지지하거나 함께 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운동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사회적·공적 애도를 이끌어 내는 역할이나, 사회의 성찰을 요구하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역할은 피해자나 유가족에게 전가되기보다는 사회운동이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피해자나 유가족과 함께 하는 운동에서는 이러한 역할 분담이 어려운 측면이 있기도 하거든요. 그럴 때, 피해자와 함께 하면서 동시에 피해자의 권리에 대해 고민하고 천착해온 사랑방이기 때문에 건넬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피해자와 함께 하는 운동의 어려움이나 곤란함, 사회운동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는 나눌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물론 저도 이러한 고민을 정리하는 과정에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