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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휘몰아치는 나날들, 24시간이 모자라!

안녕하세요, 여러분. 상임활동가 해미입니다. 제가 사랑방에 와서 쓰는 7번째 활동가 편지네요. 편지는 다른 글들에 비해 가볍게 느껴지면서도 참 많이 망설이게 하는 글입니다. 편지는 본래 사적인 글인데, 소식지를 통해 전하는 이 편지는 또 공적인 글이기도 하잖아요. 후원인들이 이걸 궁금해할지, 활동가다운(?) 글을 써야할지 고민을 하게 되더랍니다. 백날 고민해봤자 그 답을 알기란 어렵겠지요. 그러니 일단 글을 끄적여 봅니다.

<1>

편지이니만큼 일단 안부를 전해야겠지요. 저는 꽤 괜찮게 지내고 있는 것 같… 은데 맞을까요? 일단 조금은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긴 합니다. 저는 사랑방에서 외부활동으로는 기후정의동맹, 공권력감시대응팀 이렇게 두 활동을 담당하고 있는데요. 그 중 기후정의동맹은 일주일에 한 번씩 집행위 회의를 하고, 요새는 공공재생에너지법 입법청원을 진행하고 있어서 그 준비도 함께하고 있고, 10월에 패스트트랙을 태울 예정인 반도체특별법에 문제제기하는 데에도 신경을 쓰고, 곧 9월 27일에 열릴 기후정의행진 준비로 슬슬 (엄청나게) 바빠질 예정이지요. 공권력감시대응팀은 ‘소음’을 이유로 평화적 집회에 제동을 걸려는 시도에 대응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인 이수기업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을 규탄하는 집회에 구사대가 동원되어 폭력사태가 발발했는데요, 이를 제지하지 않은 경찰에 대응하는 활동에도 함께하고 있어요. 조만간 진상조사 보고회도 열릴 예정이구요.

이처럼 하나의 활동에서도 다양한 활동이 가지를 치듯 뻗쳐나가니 머릿속이 분주해요. 해야 할 일과 일정을 핸드폰 메모장이나 캘린더 어플에 꼼꼼하게 적는다고 적어놓는데, 간혹 마감날짜를 빼고 메모한다거나 캘린더에 시간만 적어놓고 어떤 내용인지 쓰는 건 깜빡하는, 그야말로 ‘대략 난감’의 사태가 벌어지곤 합니다. 일정을 챙겨주는 팅커벨 같은 요정이 뽈뽈뽈 저를 따라다녀 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랑방 내부로는 화장실 청소 당번, 그리고 결산을 맡고 있습니다. 결산, 이놈이 참 골치입니다. 머리가 잘 안 돌아가요. 이럴 줄 알았으면 제 가계부라도 정리해놓는 습관을 들여놓을 걸 후회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에요. 여러분이 걱정하실까봐 말씀드리면, 사랑방은 총 세 명의 활동가가 함께 회계를 처리하고 있어요. 저 혼자 슉슉 잘하면 좋겠지만 다른 활동가들이 도움을 주며 함께하고 있답니다. 계획을 착실히 세워서 일상을 통제하는 J 유형이 아니라, 흘러가는 대로 대응하며 살았던 대문자 P 유형으로서 겹겹이 쌓이는 약속과 과제는 아무리 신경을 써도 주먹 사이로 흩어지는 모래알 같아요.

그래도 꽤 괜찮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제 일상의 페이스를 나름 유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첫째로는 ‘잠’입니다. 사랑방 초반에는, 할 일을 아직 못 끝냈는데 집까지 왕복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사무실에서 잔 적이 있는데요. 아무리 사랑방 사무실이 보일러 틀면 따숩고 에어컨 틀면 시원해도, 나의 집 나의 방이 최고더라구요(주거권은 중요하다!). 이젠 차라리 쪽잠을 자더라도 꼭 집에서 자고 일찍 일어나 남은 일을 합니다. 올해 들어선 꽤 괜찮은 크기의 모니터도 샀어요. 둘째로는 ‘덕질’입니다. 앞선 편지에서도 소개했듯(<덕후의 사랑>, 2024년 12월호) 저는 아이돌 덕질을 하고 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NCT에는 4개의 팀이 있는데, 그 중에서 저는 3개의 팀을 주력으로 파고 있어요. (말이 뭔가 이상한 것 같아도 넘어가주세요.) 이 3개의 팀이 컴백을 하고, 콘서트를 하면 일 년이 훅 지나가요. 그래서 올해 저의 목표는 워덕밸, 즉 워크 덕질 밸런스였어요. ‘내가 좋아하는 덕질도 못하면서…’라는 억울함도, ‘내 일도 제대로 안하고 어쩌자고…’라는 후회도 들지 않는 그런 밸런스 말이죠. 탄핵 정국에는 전자의 생각이 자주 들어서 제 정신건강에 위험 경보가 울렸습니다. 덕질 자체의 중요성에는 당연히 이입을 못 하실 수도 있지만, 그냥 제 일상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일을 못하는 것. 그리고 그 일상을 잃는다는 건 곧 나를 잃는 일이기도 하기에 힘에 많이 부치는 느낌은 많이들 아실 것 같아요. 솔직히 그 때 저의 에너지 총량이 깎여나갔던 게 있어요. 차근히 회복 중입니다. 그래도 최근 3개월은 저 두 생각이 든 적이 없는 걸 보면 밸런스라는 걸 찾아가는 중인 건 아닐지? 이 글을 읽는 후원인 분들은 자신만의 밸런스 같은 게 있으신지 궁금하네요.


함께 집회 다니느라 꼬질꼬질해진 덕질 인형들을 목욕시킨 후!
뽀송해진 게 보이시나요?

<2>

사랑방을 들어와서 많이 변한 나를 체감할 때가 종종 있어요. 가장 큰 게 요리입니다. 사랑방은 상임회의가 있는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당번을 정하여 직접 점심 식사를 해먹고 있어요. 한 지붕 식구인 인권교육센터 들, 기후정의동맹 활동가들과 함께요. 민망하지만 저는 사랑방 들어오기 전에 제대로 된 요리를 해본 적이 있어요. 가족과 같이 살고 있고, 네… 조금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긴 했습니다. 그래서 사랑방에 와서 식사 당번을 하게 된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때는 활동을 통해 이 세상에 내가 (미약하게나마) 무언가 기여하고 있다는 뿌듯함보다, 제 스스로가 사람이 되어가는 이런 과정이 더 뿌듯할 때도 있습니다. 처음 당번을 했을 때엔 하나의 요리를 하는 데 시간이 실제로 얼마나 걸릴지 가늠을 전혀 못했는데요. 저에게 주어진 2시간 중 제가 만든 건 사실상 흰 밥과 감자채전이 전부였어요. 아니, 영상에서는 뚝딱 됐는데 감자를 닦아서 껍질을 까고 채칼을 이용하고… 그런 시간을 제가 어찌 알았겠습니까. 그냥 맛있어 보이니 한 거죠. (다행히 실제로 맛있었습니다). 다른 상임활동가가 와서 능숙하게 나머지 요리를 해줘서 고맙고 안절부절 했던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금은 1시간 반 남짓한 시간 동안 밥, 국, 반찬 두 세 개를 해냅니다. 식사를 준비하다보니 저의 식사를 준비해주던 이들의 노고를 곱씹게도 되고(그래서 식당에 가면 감사하다는 인사를 더 의식적으로 하게 되더랍니다), 준비한 식사를 맛있게 먹는 이들을 보면서 흐뭇함 같은 것도 느껴보고.

말이 나온 김에 요새 즐겨먹는 냉라면 레시피 하나 공유 드릴까요. 사실 제 레시피는 아니구요, NCT 도영이 ‘나 혼자 산다’라는 방송에 나와서 공유한 레시피에요. (1) 아무 라면이나 준비해주세요. 국물이 차가워지면 기존 맵기보다 더 매워지니까 참고하시구요. (2) 끓는 물에 면과 건더기를 넣어서 끓여주세요. 평소보다 더 오래 퍼지도록 넉넉히 끓여주세요. 다 끓고 나면 찬 물에 헹굴 건데, 그 때 면이 수축해서 꼬들해 지거든요. (3) 면이 끓을 동안 야채 손질을 해줘요. 상추 썰어주고, 생양파도 얇게 썰어서 넣으면 맛있더라구요. 다만 입에서 양파 냄새가 좀 오래 가니 조심하세요. (4) 국물도 쉬워요. 종이컵 2(240ml 정도)에 스프도 풀어주세요. 저는 뜨거운 물 살짝만 받아서 거기에 스프를 녹이고 냉수를 넣어요. (5) 이 냉라면의 별미는 식초 2숟갈, 참기름 2숟갈, 약간의 설탕이에요. 마지막엔 찬물에 면 헹구고 국물에 넣어서 먹어주면 완성입니다. 참 쉽지요. 더운 여름에 딱입니다. 근 한 달 동안 벌써 네 번을 먹었어요. 하하. 매워서 속이 시끄러울 수 있으니 잘 조절해서 한번 드셔보세요.

<3>

사랑방에 온 지 어느덧 3년을 꽉 채워갑니다. 조만간 큰 변화가 하나 생길 것 같은데요, 바로 저의 자리입니다. 아마 아시겠지만 사랑방에 아마 새로운 활동가가 들어올 예정입니다. 새로운 활동가는 아마도 9월부터 함께하게 될 거예요. 공교롭게도 2022년 9월, 제가 입방한 지 딱! 3년이 되는 때네요. 새로운 사람이 들어온다는 건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사랑방에 어떤 새로운 흐름이 흐를지도 기대되기도 하는데… 저에겐 무엇보다도 ‘가장 늦게 입방한 활동가’라는 자리를 더 이상 고수(?)할 수 없게 된 상황이 가장 크게 다가옵니다. 제게 요구되는 새로운 모습과 역할이 있을테니까요. 가령 사랑방에 조금 먼저 익숙해진 이로서 새로운 사람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기도 할 테고, 어떤 때는 먼저 손을 내밀기도 해야 하고요. 그런 걸 할 마음의 준비를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백날 천날 저연차 활동가로 남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찌 저찌 잘 해봐야겠죠. 그래서 긴장되는 마음입니다. (다른 사랑방 활동가들도 이런 순간이 있었겠지요?)

분주하게 돌아가는 사랑방 활동 속, (덕질로 대표되는) 일상도 붙잡고, 새로운 이들과 잘 만나고, 기존의 이들과도 만남을 잘 이어가야하는 소위 ‘인생 과업’을 잘 이어가야 할텐데요. 사람 사는 거 왜 이리 복잡하고 할 일도 많나 싶지만, 반대로 제가 그런 걸 너무 안 챙기면서 쉽게(?) 살아왔다는 성찰도 하게 됩니다. 기초 체력이 중요하겠다 생각이 번뜩 드네요. 왜, ‘친절과 다정은 체력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잖아요. 조만간 운동을 시작할까 하는데, 세상에, 생각해보면 이 친구도 ‘인생 과업’ 리스트에 또 추가되는 거네요.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나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더 잘 지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듭니다. 과연 저는 남은 반년동안 워덕밸을 지킬 수 있을까요? 다정과 관심을 위한 체력을 기를 수 있을까요? 정답은 다음 활동가 편지에. 그때까지 여러분, 폭염과 폭우 한가운데에서 건강을 잘 지키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