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활동 이야기

전환의 주체인 '우리'가 만나는 자리

N개의 기후정의선언대회를 마치며

 

 

지난 12월 16일 <N개의 기후정의선언대회>가 열렸습니다. 선언대회가 있기까지 다양한 사회운동들은 <N개의 기후정의선언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지난 1년 자기 운동의 요구를 기후정의의 대안과 전망으로 벼려내기 위한 일련의 활동들을 벌여왔습니다. 선언대회는 다양한 사회운동이 저마다의 기후정의 대안을 선언하고 나아가 전환의 주체로서 ‘우리’의 공동 전망을 밝히는 자리로 기획되었지요. 막상 선언대회 날짜가 다가오자 이런저런 걱정이 많아지더군요. 정신없이 바쁠 ‘연말’이라는 시점에 열리는 행사라니… 도시락을 100개 넘게 시켰는데… 괜히 ‘대회’라고 거창하게 이름을 붙였나… 등등. 게다가 선언대회 당일 날씨가 영하 10도까지 내려갈 거란 기상 예보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리는 철퇴처럼 느껴지기도 했지요. 막상 선언대회 당일, 대회 장소를 가득히 메운 기후정의운동의 동료들을 마주하니 그간의 걱정은 ‘기후정의운동의 전망이 결코 어둡지 않다!’는 들뜬 자신감으로 바꼈습니다. 

선언대회는 총 3부로 구성됐어요. 1부에선 지난 1년 다양한 사회운동이 왜 자기 운동의 요구가 기후정의의 대안일 수 밖에 없는지를 담은 고민과 선언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를 위해 'N개의 선언문'의 구절을 발췌하여 낭독하였고, 그 낭독을 거기 모인 ‘우리’는 숨죽여 들었습니다. N개의 선언을 함께 나누는 일은 단지 ‘기후정의’의 넓어진 외연을 확인하는 것이나 ‘모든 운동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넘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위기를 만든 체제에 저항하기 위해 어디에 전선을 긋고 누구의 투쟁과 어떻게 만나고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명확히 확인하며 스스로를 ‘체제전환운동’으로 조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1부가 개별 선언문을 나누는 자리였다면 2부는 조금 더 큰 틀에서 선언대회에 모인 ‘우리’가 함께 외칠 공동선언문을 놓고 토론하는 시간으로 채워졌습니다.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선언>이라 이름 붙인 공동선언문은 지금의 기후위기가 무엇이든 값싸게 조달하고 수탈하여 이윤을 쌓고 무한 성장을 추구하는 현 체제의 작동한 결과라는 인식과 고민을 나누며, ‘체제전환’이 기후정의운동의 목표일 수밖에 없음을 선언하며 시작했습니다. 이를 위해 자본주의와 기후위기의 연결고리를 세 가지 측면에서 다루었는데 첫 번째로 이 체제가 체계적으로 재생산 위기를 초래한다는 점, 두 번째로 노동자의 삶과 권리를 착취해 이윤을 쌓는다는 점, 마지막으로 차별과 배제를 통해 작동하고 이를 생산한다는 점을 짚으며 우리가 겪는 삶의 위기를 생산하는 체제의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지를 통합적으로 드러내주었습니다. 선언문의 마지막 부분은 그동안 현실에서의 실현가능성 등을 이유로 폄하 당해왔던 사회운동의 요구와 대안이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으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안의 구체성과 현실가능성이 아닌 ‘체제전환의 전망과 대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운동의 조직’이라는 사실을 선언하며 투쟁을 결의했습니다. 공동선언문 발제를 마친 후 열띤 조별 토론을 거쳤고, 큰 틀에서의 수정 없이 선언문을 채택하였습니다. 조별 토론에선 공동선언문에 담긴 대안과 전망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요구나 비인간 동물 착취의 문제, 전쟁이라는 위기와 기후위기를 구체적으로 연결해 전환의 전망을 함께 그려나가야 한다는 유의미한 의견들이 더해졌습니다.

기후정의선언대회를 시작하며 사회자가 우스갯소리로 “‘대회’라고 쓰고 ‘잔치’로 읽어도 무방한 선언대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는데요. 거리의 아티스트,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개막 무대로 시작된 3부 <지금까지 이런 송년회는 없었다>는 대회의 슬로건에 부응하며 현장을 흥분의 도가니로 바꿔놓았습니다. 전환의 전망을 이야기하며 한껏 진지했던 분위기는 어느새 ‘잔칫집’ 그 이상의 열기와 희열로 가득찼답니다. 

 

같은 해 1월 기후정의캠프에서 시작해 414기후정의파업과 923기후정의행진, 기후정의학교, 그리고 선언대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운동은 ‘체제전환’이 사회운동을 엮는 공동의 틀이라는 것을 조금 더 선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다양한 사회운동이 조금 더 자신 있게 자기 운동을 기후정의로 맥락화할 수 있었고, 그렇게 전환의 주체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중입니다. 다가오는 2월에 열리는 <체제전환운동 포럼>과 3월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를 경유해 사회운동의 세력화를 꾀하려는 지금, 여전히 과제는 많은 듯합니다. 다양하게 분출하는 사회운동들의 요구를 어떻게 자본주의 성장체제 비판이라는 흐름으로 조직할 수 있을지,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운동의 대중적 요구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되어야 할지 등 고민이 한가롭지만은 않은 거 같습니다. 그러나 걱정이 앞서지 않는 것은 기후정의선언대회에 모인 전환의 주체인 ‘우리’를 확인했기 때문이려나요? 선언운동으로 빼곡하게 채웠던 지난 한 해의 시간을 이제 한단락 정리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토대 위에서 또다시 새롭게 체제전환을 위한 구체적인 투쟁을 만들어가야 할 거 같네요. 그럼 우린 곧 그 현장에서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