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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쪼그라든 마음을 돌(아)보려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이렇게까지 어렵다니, 조금 어색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는 것도 같은데요. 글 쓸 일이 많은 사랑방 활동 중에서도 사람사랑에 쓰는 활동가의 편지는 저에게 작은 쉼터 같은 곳이었거든요. 부담이나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편안하게, 약간은 응석 부리는 마음으로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글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활동가의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까지 고민하는 지금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해요. 열심히 말과 마음을 가다듬으며, 마지막 상임활동가 편지를 씁니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사랑방 상임활동을 마무리합니다. “왜 그만두는 거야? 무슨 일 있었어?”, “그만두고 나서 하고 싶은 일이나 갈 곳이 있어?” 가장 많이 듣게 될 질문일 텐데요. 아쉽게도 두 가지 질문 다 지금으로써는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중차대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따로 하고 싶은 일이나 가고 싶은 곳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계속하기보다는 멈춰 서보려 합니다.

갑작스러운 결정은 아닙니다. 제가 사랑방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어떤 시간을 보내왔는지, 잘 모르겠다고 느껴지는 나날이 꽤 오랫동안 이어져 왔거든요. 뭘 했거나 하지 않았거나, 뭘 이뤘거나 실패했거나, 분명히 어떠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아쉬움이 너무 커서 뿌듯함이 잘 보이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요. 내가 한없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스스로가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처럼 생각되는 시간이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한 일도 앞으로 할 일도 막막하게 다가오기만 했습니다.

마음이 너무 쪼그라들어서 시야도 감각도 같이 쪼그라든 느낌이에요. 자꾸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니 과도하게 방어적이거나 취약한 모습을 보이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함께하는 사랑방과 다른 단체의 동료 활동가들에게도 미안할 지경이에요. 대부분의 활동이 당장 성과나 변화를 확인하기 어려울 텐데, 그 안에서 조급함과 무력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저를 발견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이렇게나 쪼그라든 마음을 돌아보고 또 돌보기 위해서, 조금 거리를 가져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상임활동을 마무리하기로 마음을 먹은 뒤 다른 상임활동가들을 한 명씩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말이 잘 정리되지 않아서, 예상했던 것보다도 눈물이 많이 나서 조금 놀랐어요. 후회, 미련, 아쉬움, 미안함… 그 많은 감정 중에서도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이 애정이라는 점에는 더 크게 놀랐습니다. 놀라운 마음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호들갑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했죠. “내가 사랑방을 생각보다 더 많이 사랑했나봐!” 뿌듯함과 보람을 잘 느끼기 어려운 시간을 돌아보면서도 이러하니, 더더욱 제가 사랑방에서 보낸 시간을 잘 정리하고 싶어졌습니다. 차분히 돌아보며 제가 했던 활동, 제가 했던 기여, 제가 끼친 민폐까지 잘 곱씹어보겠습니다.

마무리를 앞두고 사랑방 상임활동가들, 다른 단체의 동료 활동가들, 이 편지를 받아보실 사랑방 후원인 여러분께도 꼭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덕분에 든든하게 활동했습니다.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또 반갑게 만나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