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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4·16을 우리 자신의 역사로 만든다는 것

올해 봄 『비판적 4·3연구』라는 책을 샀습니다. 물론 바로 읽어보려던 생각이었죠. 제주가 고향이라 괜히 더 읽어야 할 것 같은 마음도 들었고, 최근 몇 년 간 4·3이 남긴 과제 해결에 여러 진전이 있었던 만큼 ‘비판적’ 목소리도 잘 들어야 할 때 같아서요. 물론 모든 책의 운명과 비슷하게 바로 읽지는 못했습니다.

가을이 되어 책을 펼치게 됐습니다. 홍범도 장군과 함께 해방 전후의 시간대가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때문입니다. 제주 4·3은 48년의 남한 단독 총선거를 거부한 저항이자 선거로 수립된 정부에 의해 잔혹하게 진압된 역사라는 점에서, 오랜 기간 발설이 금기시되었고 진실보다 화해가 앞서는 시간을 지나와야 했습니다. 여전히 ‘제주4·3’ 뒤에 붙을 이름을 찾지 못한 채 역사에 열려있기도 하지요. 대한민국의 역사 쓰기가 끝없이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지점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정작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하게 된 것은 4·16세월호참사였습니다.

“4·3을 단순히 밝혀지거나 정리, 청산되는 피동적인 대상이 아닌,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창이자 경험례로서, 또한 현대사회의 부조리, 그리고 미래의 과제와 연결고리를 만들어 긴장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매개로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비판적 4·3연구』)

2014년 말 한겨레 여론조사에서 ‘광복 이후 일어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주관식으로 물었을 때, 한국전쟁이 15.5%, 세월호참사가 13.9%, 5.18광주민주화운동이 6.5%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1년도 채 안 된 시점이라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지만 세월호 참사가 사람들에게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된다는 점은 더 깊이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그건 ‘국가’에 대한 질문이 던져지는 사건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세월호참사 이후 ‘국가는 없었다’거나 ‘이게 나라냐’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온 데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끊임없는 해석을 통해 역사화됩니다. 4·16세월호참사를 역사적 사건으로 해석하는 일은 4·16을 ‘국가’가 달라지는 변곡점으로 위치시키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세월호 참사는 무엇이었나 하는 질문에 충분히 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있을까요? 10주기가 다가오는 시간을 보내며 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입니다.

세월호참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은 너무 분명해보입니다. 우리는 재난이 사회적 문제이며, 조사해야 하며,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등의 감각을 자연스럽게 익혔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에는 구조적 원인이 있으며, 존엄과 생명의 안전을 위해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인식은 구의역 김군, 강남역 여성혐오살인사건,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사건 등을 통해 변화를 만드는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재난으로부터의 회복은 망각이 아니라 기억할 수 있는 힘으로부터 가능해지며, 그 힘을 만드는 건 사회적 연대라는 것도 우리는 잘 알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세월호참사 이후 달라진 것이 없음을 번번이 깨달으며 좌절하게 되기도 합니다. 세월호참사 직후 쏟아져나온 시대 진단들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습니다. 신자유주의 규제완화가 문제다, 기업과 정부의 무책임이 문제다, 민주주의는 부실하고, 교육과 언론이 망가졌다, 분단폭력도 혐오도 심각하다 등등. 달라지기도 했으나 달라지지 않기도 했다면 아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달라졌으나 ‘국가’는 달라지지 않았다고요.

문제는 달라진 ‘우리’가 다른 ‘국가’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수많은 분투들이 4·16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헤아리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데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박근혜 퇴진 촛불만 보더라도 4·16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정치공동체의 성원으로서 행동하게 된 변화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만 바뀌고 국가는 달라지지 않은 조건에서 변화의 힘을 우리 스스로의 연대보다 국가의 기능에 의탁하고 만 것은 아닐까요?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투쟁의 어려움도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진상규명은 사실관계를 밝히자는 건조한 요구가 아니라 사건의 의미와 성격을 규정하며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할지 밝히는 과정입니다. 민주화운동에서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이 주요한 구호였던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월호참사가 선박이 침몰하는데 해경이 구조하지 않아 발생한 참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특조위와 사참위의 조사 결과로 구체적인 사실관계들이 상당히 많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책임져야 할 이들이 누구인지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책임을 어떻게 묻고 처벌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여전히 막연합니다. 지금의 국가가 가진 사법체계에서 이와 같은 조직범죄를 처벌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범죄는 법에 의해 구성됩니다. 잘잘못에 대한 사회적 감각과는 괴리되기도 합니다. 특히나 기업이나 정부 등 권력과 지위가 있는 조직과 그 구성원들에 의해 발생하는 인권침해는 법으로 처벌되기 어렵습니다. 감정적 동기나 비윤리적 판단으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보다 오히려 조직의 활동 목표나 정책을 통해 발생한다는 점에서 원인을 국소화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당장의 처벌을 목표로 책임을 묻다 보면 기존의 법 체계에 맞춰서 책임을 설명해야 하는 곤란함에 빠집니다. 참사 당시 청와대의 무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지침을 변조하거나 국회에 허위 답변서를 제출하는 등의 행위를 ‘거짓말’이라는 잘못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참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빠뜨리고 사회와 국가에 대한 신뢰까지 무너뜨린 책임을 ‘공문서위조죄’로만 묻는 건 터무니없이 부족해보입니다.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에 아무런 진전이 없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이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임을 어떻게 묻고 처벌해야 할지 막연하다 보니 지금의 법체계에서 처벌 가능한 사실을 찾아낼 때까지 진상규명이 미완이라고 느끼게 되는 상황. 그래서 재난조사라는 측면에서 필요한 진상규명, 즉 여러 사회조직들의 제도와 관행, 위험에 대비하거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기술의 배치와 작동, 조직 구성원들의 역량과 판단 등이 어떻게 맞물렸는지 살피는 일은 오히려 제자리걸음인 듯도 합니다. 우리가 바라던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잘 살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5·18이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기원(참조점으로서의 기원)이 되었던 것처럼, 4·16이 재난의 시대 존엄과 생명을 지키고 돌보는 사회로 나아간 분기점이 될 수 있으려면. 참사를 낳은 국가, 거기에 연루된 수많은 문제들을 지금의 국가가 당장 단죄하거나 처벌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계속 말하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지 묻기를 멈추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떤 이야기들이 필요할까요? 4·16을 어떤 시점에 종료되는 사건이기보다, 지금의 한국사회가 어디에 멈춰서있는지,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이을지 살피는 창으로 삼아본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