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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공단노동자에게 멀기만 한 쉴 권리, 공동휴게실 마련에서부터

작년 여름 월담노조에서 <공단노동자 쉴 권리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을 때다. 공단 골목 식당 주변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나오는 분들에게 조사 참여를 요청했다. 남은 점심시간에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야 한다며 서둘러 조사에 함께 해주곤 다급하게 걸음을 옮기는 분이 있었다. 사업장 내 휴게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던 그분은 어디에서 어떻게 쉬었을까. 그해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하는 174명이 답해준 조사 결과, 사업장 내 휴게실이 없는 경우가 1/3에 달했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생산직 노동자의 경우 오전과 오후 작업시간 중간 10분 정도의 휴식시간이 있는 편인데, 이러한 휴식시간이나 남는 점심시간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는지 물었다. 휴게실이 없는 경우 작업장에 그냥 머무른다는 답변이 가장 높았지만, 회사 마당이나 도로변 걸터앉을 곳을 찾는다거나 개인 차 안에서 쉰다는 다양한 답변이 있었다. 휴게실이 있더라도 말만 휴게실일 뿐 열악하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여러분이 쉬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그래서 올봄 <일터에 쉼표를> 캠페인으로 <내가 쉬는 공간 사진>을 모아보았다. 휴게실이 있는 곳이라면 휴게실 사진을, 휴게실이 없거나 있어도 마땅치가 않다면 어디에서 쉬는지 사진을 찍어 짧은 사연과 함께 보내주기를 요청했다. 캠페인을 하며 나눠드리는 선전물을 보고 보내준 문자의 사진에는 작업대 옆 등을 기댈 수 없는 의자 하나가 달랑 있을 뿐이었다. 사진 아래 “커피 한잔과 함께 지친 몸을 달래며 쉬고 소중한 이와 이야기 나누며 힘을 얻는다”는 문자를 보며 작은 자리에 스며있는 의미가 참 크게 느껴졌다. 여름까지 하나둘 모여 50여 분이 자신이 쉬는 공간 사진을 보내주었다. 버려진 판자를 이용해 직접 만든 의자로 회사 밖 담벼락 아래 흡연공간을 만들어 쉰다는 분도 있고, 점심시간 빈 현장의 책상을 붙여 그곳에서 누워 한숨 자며 쉰다는 분도 있었다. 회사 앞 주차하지 못하도록 둔 타이어, 작업장 안 돌돌 말린 발포지처럼 그저 엉덩이 붙일 수 있는 곳을 찾아 쉰다는 분들도 많았다.

몇몇 분에게 요청해 심층인터뷰도 함께 진행했다. 현장의 기계소음이 너무 커서 잠깐 쉬더라도 무조건 바깥으로 나온다던 분에게 비가 오면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고철 폐기물 모아두는 공간에는 처마가 있어 그곳을 이용한다며, “폐기물을 비 안 맞힐 공간은 있는데 사람이 안 맞힐 공간은 없다”고 했다. 쉬는 시간에도 기계를 계속 돌리는 현장에서 일하는 분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문제가 생길까봐 눈치 보며 화장실만 후닥 다녀오고 휴식시간이 남았어도 맘 편히 쉴 수 없다고 했다. 쉴 권리가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사업장 내 휴게공간 설치가 의무화되는 등 변화가 있지만 공단노동자의 현실과는 아직 거리가 멀기만 하다. 입주업체의 87.5%가 20인 미만인 중소영세사업장이 밀집한 반월시화공단에서 20인 이상 사업장만을 휴게공간 설치 의무 대상으로 규정한 현행법은 대부분의 사업장을 빗겨난다.

공동휴게실 설치로부터 작은사업장 노동자 쉴 권리 보장을 고민하자

노동자의 쉴 권리를 내세우지만 정작 작은사업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는 배제하고 차별하는 문제를 알리며 대안을 찾기 위해 월담노조와 함께 안산시흥지역 노동조합과 단체들이 모여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휴게권 실현을 위한 사업단’을 구성했다. 공단노동자들이 보내준 사진으로 ‘작은사업장 노동자 휴게실태 사진전’을 진행하고, 지난 10월 26일에는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민주노총이 전국산업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휴게실/복지실태 조사 중 반월시화산업단지 결과, 월담노조가 진행한 실태조사와 심층인터뷰를 토대로 제언에 대한 발제, 지자체인 안산시와 시흥시, 고용노동부 안산지청, 산업단지관리공단 경기지역본부, 반월시화공단 경영자협회의 토론으로 준비됐다.

민주노총 조사 결과 발제에서 인상적인 몇 가지가 있었다. 우선 20인 미만의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경우 그리고 저임금인 경우 휴게실을 매일 이용한다는 비중이 더 높다는 것이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싸온 도시락을 먹고 커피를 타마시며 동료들과 함께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하는 휴게실이 영세하고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더더욱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였다. 그리고 ‘회사가 왜 휴게실을 설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묻는 질문에 좁은 공간(35.9%)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무관심(26.3%)과 의무아님(20.2%)이 이유로 꼽혔다. 이에 비해 비용(9.6%) 때문이라는 답은 적었는데, 이는 “휴게실 문제가 비용보다는 사업주의 관심이 더 크게 좌우하는 것으로 작업공간을 어떻게 배치할지, 입주할 때부터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사업장 규모 따라 노동자의 권리가 달라져서는 안 되지만, 사업장이 영세해서 어쩔 수 없는 것처럼 핑계를 댄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기에, 그리고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 쉴 권리가 모든 노동자에게 보장되어야 하지만, 작은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제외되는 상황에서 우선 시도하는 방안으로 ‘공동휴게실’이 토론회에서 주요하게 제기되었다. 휴게권 보장을 위한 노력을 모든 사업장이 해야 하지만, 협소한 규모 때문에 설치가 어려운 사업장이라면 일하는 노동자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동휴게실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공간 확보와 관리가 수월한 아파트형 공장의 경우 당장 추진이 가능하고, 공단 골목 매점으로 운영되다가 페업해 비어있는 컨테이너를 활용하거나 부스형 쉼터 설치와 같은 방식으로 시범 운영을 해보자는 제안이다.

이날 토론자로 공단을 어떻게 운영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할 것인지 책임 있는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했다. 산업단지관리공단에서 노후된 산단의 환경을 바꾸겠다며 여러 사업을 펼치지만 어떻게 기업 유치를 잘할지만 골몰할 뿐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려는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펼쳐야 할 지자체는 예산 부족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말만 반복하고, 고용노동부는 앞으로 관리 감독을 잘하겠다고만 강조했다. 경영자협회는 불참해서 휴게권을 보장해야 할 사업주의 책임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월담 활동을 하며 공단을 오간 수년 동안 이렇게 책임 있는 주체들이 한자리에 모인 토론회를 한 적이 손에 꼽을 만큼 없다는 점을 떠올리며 아쉬움보다는 앞으로의 대한 기대를 더 품고 싶어진다. 사업단은 토론회에 함께 한 주체들과 함께 공동휴게실 마련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논의해가고 시범사업을 추진해가자는 제안이다. 이날 공동휴게실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한 만큼, 이후 실질화 하는 과정에서 지자체, 고용노동부, 산업단지관리공단, 경영자협회가 책임 있게 함께 할 것을 계속 요구하고 추동해가려고 한다. 그렇게 공단에, 일터에 쉼터를 새기는 여정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