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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아픔이 소란을 피우는 곳에서 또 뵙겠습니다

나의 아픔을 남에게 보이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픔이 약함의 증거라며 물어뜯기 일쑤니, 숨을 죽이며 들키지 않기만을 바라게 되는 거겠죠. 문제는 나의 아픔이 나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아픔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입니다. 지난 날, 저는 아픔을 보이는 걸 주저하다가 끝내 포기하고선 저조차도 그 아픔을 잊고 살아가려고 했습니다. 살기 위해선 잊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잊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님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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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것으로부터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집이 철거될 위기에 처한 옆 동네 철거민, 고급 아파트가 밀어내려고 하는 노점상 상인, 거대 재단을 낀 대학 본부로부터 갑질을 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깨끗한 국가 이미지를 위해 모퉁이에서 모퉁이로 몰리는 홈리스. 뉴스나 기사에서, 길거리에서, 그도 아니면 버스 창가 너머에서라도 본 적이 있어야 하는 삶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가 그들의 풍경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제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고, 팔로 스크럼을 짜고, 시원한 땀과 따뜻한 입김을 나누었습니다. 살아있는 몸이 말하는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어쩐지 익숙한 아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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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한동안은 제가 아닌 누군가를 돕는다는 지극히 시혜적인 감각으로 거기를 찾아가는 줄 알았습니다. 아픔으로 소란스러운 그들의 풍경이 왠지 모르게 무서워질 때면 거기로부터 도망쳐 나와 여기, 잔잔한 저의 풍경에서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거기 풍경이 저의 동네로, 학교로, 집으로, 방으로 자꾸만 들어왔습니다. 횡단보도 너머 아파트 대단지의 영향으로 동네에 재건축 논의가 이루어지며 이웃과 다투고, 발목을 채찍질하는 학교의 속도에 몇 번이고 넘어지며, 연락이 이미 끊긴 혈육의 재산으로 국가 보조가 끊길 위기에 처하고, 예쁘고 착하고 똑똑해야 하는 트로피 딸이 되길 강요받는 여기 풍경에서 그들을, 그리고 그토록 보지 않으려고 했던 저를 보았습니다.

누군가 저와 눈을 마주치고, 팔로 스크럼을 짜고, 땀과 입김을 섞어주기를 처음으로 바랐습니다. 동시에, 기꺼이 그래 주리라는 믿음을 느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온몸으로 아픔을 기억하고 말하며, 마음껏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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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에도 저는 많이 아팠습니다. 5년 치의 아픔이 예약된 현실이라니, 하면서요. 하지만 솔직하고 당당한 또 다른 아픔들과 만나 외롭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아픔을 안고 내일을 만들어가는 우리는 강합니다.

아픔과 아픔이 만난 자리에 단단한 딱지가 앉는다는 걸 지금의 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 살이 돋기까지의 길고도 길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웃으며 맞이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약속했거든요. 바로 여기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 서로의 아픔을 돌보기로.

그럼,
아픔이 소란을 피우는 곳에서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