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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인 인터뷰

음악을 들을 때 음악을 만든 사람을 존중하면서 듣기를

서정민갑 님을 만났어요

제가 요즘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에 푹 빠져있어요. 그런데 음반을 사서 듣게 된 계기가 서정민갑 님이 쓴 추천글이었습니다. 후원인 인터뷰로 만날 핑계를 만들었습니다. 작년 한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뮤지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여러 활동을 앞서 제안하고 직접 움직여주기도 했는데요, 앞으로도 마주치게 될 곳이 많을 것 같은 예감입니다!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대중음악의견가 서정민갑입니다. 음악을 듣고 음악에 대한 글을 쓰고 공연 기획이나 심사도 하고, 음악과 관련된 잡다한 일을 하며 사는 시민입니다.

설 지나 입춘도 왔는데, 새해 시작하는 마음은 어떤가요?

새해가 되면 목표를 정리하는 습관이 있어요. 올해도 몇 가지 정했어요. 사람들과 나누면서 살자, 또 뭐였더라. 그런데 연초에 공황 증세를 심하게 겪으면서 새해 목표 순서가 바뀌었어요. 느리게 살아야겠다고요. 그리고 2022년은 대선이 있는 해기도 하잖아요? 기후위기나 지역소멸, 불평등 같은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가는 해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대선으로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의견들이 분출하고 모이고 논의가 싹트고 활성화되는 계기요. 지금 흐름을 보면 낙관하기는 어렵지만, 뭘 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에요. 다들 비슷한 마음 아닐까요?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니 음악을 정말 많이 들으실 텐데요, 음악을 듣는다는 게 음악‘만’ 듣는 건 아닐 것 같아요. 듣고 느끼고 사유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점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우선, 다양하게 많이 듣는 게 중요합니다. 케이팝, 포크 등 장르가 많고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지고 각자의 어법과 태도로 산개해 있어요.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더라도 소리를 다루는 방식이나 메시지를 발화하는 태도 같은 게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알고 있어야 제대로 음악평론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편견 없이 듣는 게 중요해요. 좋아하는 장르, 더 친숙한 뮤지션이 있지만 좋아하는 장르의 음악이 늘 좋은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뮤지션의 한 음반이 좋다고 다음 음반도 좋은 건 아니거든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을 존중하면서 듣는 것도 중요합니다. 국내에서 하루에 3천 곡 정도가 만들어진다고 해요. 다 못 듣죠. 그런데 만드는 사람들은 엄청 신경 써서 만들 거잖아요. 싱글이든 정규음반이든 작업이 굉장히 힘들고 한 번 내고 나서 다시 내기도 어려운 거라 만든 사람에게는 정말 소중한 것이고 열심히 만들었을 거예요. 그 노력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듣는 게 중요해요.

멜로디가 얼마나 좋은지, 리듬과 어울리는지, 솔직하고 깊이 있는 메시지를 품었는지, 사운드가 남다른지 등이 예술적으로는 중요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걸 알아차리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음악을 들어야 해요. 사회의 다양한 요소들을 염두에 두는 것도 필요해요.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 음반은 현 시대 청년들과 여성들의 고통, 내몰린 삶의 이야기와 연결되면서 파괴력을 가져요. 정치사회경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부분까지 보면서 해석해야 하죠. 그런 걸 들을 수 있는 안테나를 세우고 잘 닦아서 신호가 잘 들어오게 애쓰고 있어요. 배우는 마음으로 듣고 씁니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인데 인권에 대한 이야기같기도 해요. 표현의 자유를 아는 것과 그걸 빼앗겨 싸우는 사람과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아는 것은 큰 차이가 있거든요. 오래 전 음악과 인권 강의 하는 걸 뵜는데요, 서정민갑 님에게 ‘인권’이 다가온 순간이나 계기가 있다면 어떤 것일지 궁금해지네요.

90년대에 학생운동을 했는데 그때 인권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통일, 반미, 노동해방, 이런 게 중요했고 사회를 한 방에 뒤엎으면 인권은 따라오는 것으로 여겼던 것 같아요. 인권이 확 다가온 건, 2000년 겨울 명동성당 농성이에요. 문화제 진행 맡아달라 해서 두 번 갔는데, 비닐도 안 치고 침낭 하나 들고 밥 굶고 다 드러누웠는데,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나….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국가보안법 폐지 등 얘기하면서 처절하게 싸우던 그때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그 투쟁의 결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생기고 인권위가 시리즈로 영화나 만화를 내면서 인권에 더 관심이 생기기도 했어요. 90년대 후반부터 민중운동의 목소리가 줄어들고 시민운동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도 커졌는데 그 영향도 있겠죠. 예전에 민예총(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에서 활동할 때 매일 새벽에 팩스로 온 <인권하루소식>도 있고요. 매일 챙겨 읽진 못했지만, 매일 뉴스를 발행하다니 중요한 문제겠다 싶었어요. 그 후 인권운동사랑방 활동을 더 보게 된 것 같아요. 2002년 월드컵에 문제제기했던 논평도 기억해요.
하지만 관심이 늘어도 저한테 중요한 의제는 아니었어요. 그러다가 용산참사와 세 모녀 사건(*)을 지나며 좀 달라졌어요. 가난이 얼마나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지, 그때에서야 비로소 생각해본 것 같아요. 2000년대 초반까지도 사람들은 폼 나고 재밌는 운동에 대해서 더 많이 얘기했던 것 같아요. 자기 삶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이야기, 자기 목소리를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가 운동에서도 밀려난 것 같았죠. 누구의 시선으로 세상을 봐야 하나, 나도 모르게 내 곁의 어떤 삶들이 지워지지 않으려면 계속 봐야겠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요즘에는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처럼 좋은 책들도 많이 나와서 더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삶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예전엔 몰랐어요. 매년 후원하는 단체들을 살피고 새로 가입하는데 몇 년 동안 빈곤사회연대처럼 직접 사람들을 만나며 인권을 지키는 단체 쪽으로 관심이 이동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쫓겨나는 삶, 빼앗긴 목소리 같은 데 관심이 있으니 더욱 이번 대선이 갑갑할 것 같아요. 요즘 어떤 고민을 하는지 들려주세요.

무력하죠.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든, 전직 활동가로서든, 글쓰는 사람으로서든,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선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 동안 그랬어요. 얼마 전 미류 님이 쓴 경향신문 칼럼 보면서 공감했어요. 운동이 망했고 당장 이 문제는 풀리지 않을 건데 얼마나 걸릴지 걱정스럽기도 하고요. 조금 상투적일지 몰라도 그람시의 말을 빌자면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로운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할까요. 하지만 뭔가 해보려는 사람들이 있고 새로운 것이 없지 않아요. 다만 힘 있게 헤게모니를 가지고 대처하지 못하는 상황인 거죠. 시간이 필요해요. 절망하되 비관하지 않고 서로 모여서 다독이며 견뎌야 하는 시간. 답답한 상황이지만 서로를 지키고 있으면 온기를 잃지 않을 수 있고, 그러다 보면 계속 갈 수 있고, 가다 보면 수가 생기고 때가 오지 않을까요? 지금은 전환기인데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잘 버티면서 가면 좋겠어요. 대선에 기대가 있고 바라는 게 있어야 말들도 터져 나올 텐데, 이렇게 잠잠한 대선은 처음이에요. 서로 답답하고 궁금한 거라도 얘기 많이 하고,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때 뭘 할지 잘 궁리해보면 좋겠어요.

인권운동사랑방의 활동에서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게 있을까요? 또는 바라는 점이 있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가열차게 하고 있어서 고맙게 생각해요. 작년에 저도 일을 같이 한 적이 있는데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도 당차게 목소리를 내며 할 수 있는 것들 찾아가는 모습이 멋있었어요. 활동하는 분들도 다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 듯해요. 안 되지만 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 현장에 있지 않은 사람들은 그걸 보면서 용기와 믿음을 잃지 않을 수 있어요. 싸움의 최전선에 누군가 있다는 게 매우 중요해요.
이주노동자, 이주민, 난민들과 연대하는 투쟁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한국이 단일민족사회가 더 이상 아닌데 이주민의 인권을 옹호하는 활동이 더 중요해진다고 생각해요. 폼 나거나 스포트라이트 받는 건 아니겠지만 그런 활동이 중요해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활동하던 분들이 여러 단체를 만들면서 영역을 확대하는 모습도 긍정적으로 봤어요.

다시 음악 얘기로 돌아와볼까요? 인권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음악 듣기를 권한다면 추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음악 말고도 좋은 것들이 많으니 모두에게 음악이 제일 좋은 것일 수는 없죠. 음악도 여유가 있어야 듣는 게 현실이죠. 그런데 음악을 들으면,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아요. 흡수가 빠른 매력이랄까. 그래서 음악을 가까이 해주면 좋겠어요. 자기 삶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우리 곁을 바라보며 음악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아요. 그런 음악을 들으며 시야를 넓히고 품을 여는 경험을 하면 좋겠어요. 음악 하는 분들이 관심받아야 계속 음악 할 수 있다는 이유도 있죠.

들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음악도 있나요? 각자의 삶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이런 변화에 관심이 없어보이는 대선 후보들에게.

김동산의 ‘수원 지동 29길’. 제가 자주 추천하는 곡이에요. <서울 수원 이야기>라는 음반도요. 출장작곡가 김동산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로 즉석에서 음악을 만들어요. 삶의 이야기이자 삶에서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죠. 동시대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외면하지 않는 소중한 곡입니다.

이설아의 ‘있지’. 소박한 포크음악이고 사람들이 사랑하는 얘기예요. 위로가 많이 됐어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해요.
이랑의 음반 <늑대가 나타났다>. 같이 들으면 좋겠어요. 대선 후보들도요. 노래 듣고 정신 차리진 않겠지만 느껴보기라도 하면 좋겠어요. 그런데 대선 후보들은 노래보다 사람들의 말을 직접 들으면 좋겠어요. 정치가 팬덤화되면서 다들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분위기예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게 당연시되는 사회는 문제가 있죠. 그리고 대선후보들이 노래는 그냥 평소에 좀 들으면 좋겠어요. 자기 교양이나 취향 자랑하는 게 아니라 음악을 찾아보고 찾아듣는 사람이면 좋잖아요. 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인간 존재를 이해하는 깊이를 만들어줄 테니까요.


*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에 사는 세 모녀가 빈곤의 고통 끝에 집에 번개탄을 피워 생을 마감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전 재산인 현금 70만 원을 집세와 공과금으로 두고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를 남긴 것이 널리 알려지며 사회적 관심이 모였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에서도 죽음 이후 남겨진 고민을 나눴다. https://www.sarangbang.or.kr/oreum/71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