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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다른 세계로 길을 내기 위해 모인 사람들

사랑방에서 ‘인권’ 못지않게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단어는 ‘변혁’입니다. 사랑방 내부 워크숍이나 각종 회의에서 ‘변혁’은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2013년 사랑방 창립 20주년을 맞아, 그간 사랑방 운동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과제를 가늠하는 작업을 하면서부터였습니다. 2000년대에는 ‘진보적 인권운동’이 사랑방 운동을 규정하는 말이었다면, 적어도 사랑방 활동가들에게는 ‘변혁’이 2010년대 사랑방 운동을 규정하는 단어였습니다. 사랑방은 그렇게 우리 운동을 ‘인권활동’에 가두는 게 아니라, 체제변혁운동의 일부로서 스스로를 규정하고 힘을 모아나가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조직사업에 뛰어들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반차별 운동의 세력화를 도모하고 여러 현안과 투쟁들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면서 바쁘게 뛰어다녔습니다. 하지만 ‘변혁’은 작은 인권단체가 홀로 마음에 품고 열심히 활동한다고 쉽게 잡히거나 가늠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의 여러 투쟁들을 민주당은 자기들 방식으로 포섭했습니다. 문재인 정권 시기 터져 나왔던 분노는 갈 길을 찾지 못한 채 역대 최악의 대선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로 체제의 위기가 가시화되고 있지만, 사회운동 역시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습니다. 마음에 품는 ‘변혁’이 아니라, 운동의 목표와 질서 속에서 ‘변혁’을 공론화하기 위해 올해 초 사랑방은 주변단체들에게 사회운동 집담회를 제안했습니다. 두어 차례의 집담회와 워크숍을 통해 현재 운동이 처한 곤경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이렇게 모인 활동가들이 이 이야기들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 ‘다른 세계로 길을 내기 위한 사회운동 토론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120여 명의 활동가, 3시간의 토론

비슷한 고민과 답답함을 느끼는 활동가들이 많았나 봅니다. 온라인 토론회 참가신청은 160명이 넘었고, 당일 3시간의 토론회를 함께 한 활동가들은 120여 명이나 됐습니다. 온라인 토론회/회의에 대해서 늘 아쉬움만 토로했었는데, 곳곳의 활동가들과 이런 자리를 나눌 수 있었던 데는 온라인의 힘도 컸던 것 같습니다.

토론회는 체제가 할당한 구조를 벗어나서, 체제를 가로지르고 그 구조와 질서를 넘어서기 위한 전망과 실천을 조직하는 사회운동의 필요성을 여러 운동의 관점과 영역에서 확인하고 해석하는 발제와 토론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체제전환의 관점에서 제기되는 재생산 정의운동, 모두가 이야기하는 노동자 건강이 아니라 자본에 대항하는 운동으로서 노동자 건강권 운동, 취약계층 배려와 보호가 아닌 체제전환의 깃발로서 기후정의운동, 비리와 폭력 사례를 넘어 반차별과 평등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탈시설 운동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종합토론에서는 기조발제에서 제기되었던 새로운 활동가층 형성의 어려움과 전문가 중심의 운동 구도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87년 이후 사회운동이 시민운동을 표방하며 대중성보다는 전문성을 더욱 지향하게 되면서 동시에 여러 영역을 아우르며 전망을 모색하는 일은 점차 사라져갔다는 진단이 이어졌습니다. 이는 단지 운동 전망의 한계에 그치는 걸 넘어서, 새로운 활동가층 형성의 어려움으로도 이어지는데 다양한 문제에 대해 입장만 보이고 운동이 보이지 않을 때, 사회문제에 비판적 의식을 지닌 이들이 대중을 조직하기보다는 정책을 입안하고 개입하는 전문가가 되려고 한다는 분석이었습니다.

이는 전문가와 활동가의 대립이나 구분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의 근본적 질서를 새롭게 만들어가려는 체제변혁의 흐름과 운동의 힘이 쌓이는 구조가 보이지 않을 때, 각 분야의 전문가나 활동가들이 체제가 할당한 자리에 갇혀 각자의 역할만 반복하게 된다는 진단에 더 가까웠습니다. 학생운동을 하고 있다는 참가자는 함께 활동하는 동료들이 졸업 이후에 전망을 대부분 대학원 진학이나 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으로 잡고 있다면서, 왜 그런 고민을 하게 되는지 운동의 관점에서 새롭게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른 세계로 길을 내는 첫발을 떼다

3시간의 토론으로 입장이 모이고 전망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확인했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함께 발걸음을 떼자는 공감대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사랑방도 ‘변혁’을 가슴에 품고 열심히 활동하는 게 아니라, 저희의 고민과 경험을 이렇게 모인 활동가들과 함께 나누고 쌓아가려고 합니다. 사랑방 20주년 자료집의 여는 글이 ‘다시 변혁을 꿈꾸며’ 였는데, 이제 ‘변혁의 발걸음, 한 걸음부터’ 정도는 되지 않았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