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인권’에 반대하는 사람들

최근 울산의 인권단체들은 곤혹스러운 상황을 겪었습니다. 「청소년 의회구성조례」,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조례」, 「학교민주시민교육조례」 등 시민사회와 울산시의회가 추진하던 각종 조례들에 대해서 결사반대하는 세력이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입니다. ‘나라사랑 운동본부’나 ‘동성애 대책본부’ 등 익숙한 이름을 내건 이들은 위 조례를 “나쁜 3대 조례”라 지칭하며,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공청회에 난입하는 등 익숙한 행태를 보였습니다.

이러한 세력의 등장은 더 이상 놀랍거나 낯설지 않습니다. 올해만 해도 부천 문화다양성 조례, 경기도 성평등 기본조례 등이 유사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이들은 작년 충남인권조례를 공격한 끝에 결국 이미 시행중이던 조례를 폐지시키기도 했죠.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2011년 당시 서울학생인권조례도 비슷한 공격을 받았습니다. 조례의 내용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서 성소수자 단체들과 인권 단체들이 서울시의회에서 농성을 진행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 10년간 지역 인권조례들은 평등과 혐오가 서로 겨루는 전장이 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울산 조례를 둘러싼 상황에서 유독 저를 놀라게 만든 사진 한 장이 있었습니다. 조례에 반대하는 세력이 피켓을 들고 있는 사진이었는데요. 피켓에는 “민주시민인권교육조례 반대한다” 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원래의 조례 이름에는 들어가지도 않은 ‘인권’이라는 단어를 굳이 가져다 붙인 뒤, 거기에 반대한다고 외치는 사진이었습니다.

 

인권의 규범성과 영향력

과거 인권운동은 국제 인권 규범과 그 권위를 한국에 소개하기 위해 노력했다 들었습니다. 이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며, 전 세계에서 그러하듯이 한국 사회에서도 인권은 확실한 규범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뿐 아니라 경찰과 국정원 등 국가 기관도 ‘인권’을 입에 올리는 등, 그 누구도 대놓고 인권을 부정할 수는 없을 정도의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졌습니다. 90년대 인권운동을 경험한 사람들이 종종 “예전에는 ‘인권’이라고 하면 다 통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곤 합니다. 분명 인권이 이러한 권위와 영향력을 가졌던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이후 인권운동의 고민은 인권이 형식적인 규범성을 넘어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권이 그저 규범으로만, 도덕책에 나올법한 허울 좋은 말로만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뛰어넘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이 노력은 때로는 사회권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반차별과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사회에 등장했습니다.

 

인권에 반대하는 사람들

물론 평등에 반대하는 세력은 언제나 존재해왔습니다. 지금까지 이들 세력의 프로파간다는 주로 나쁜 인권과 좋은 인권, 가짜 인권과 진짜 인권을 구분하던 방식이었습니다. “성평등은 나쁜 인권이고 양성평등이 좋은 인권이다”, “동성애는 가짜 인권이고 이성애가 진짜 인권이다” 라는 식이었죠. 그들의 편협한 기준에서 ‘나쁜 가짜 인권’의 범위는 점점 넓어졌습니다. 2007년 누더기 차별금지법 사태 이래로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이 그들의 주된 타겟이었다면, 이후에는 젠더나 다양성, 민주주의 등으로 확대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혐오 선동에 대해서 인권운동은 주로 “인권은 자격을 묻지 않는다”, “누군가를 배제하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등 인권의 원칙과 그 가치를 환기시키며 대항해왔습니다. 일부가 아닌 모두의 권리와 존엄을 외쳐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9년 지금, ‘인권’에 반대한다는 피켓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여러 가지 말을 덧붙이며 인권을 구분하던 사람들이, 앞뒤 말은 다 떼버리고 인권에 반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충격이었습니다. 이번 학기부터 젠더 강좌를 필수 과목으로 포함시킨 연세대학교 앞에는 지금도 “젠더 OUT”, “인권 OUT” 등의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습니다. 인권의 규범성이 합의된 사회에서 어떻게 실질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아예 인권의 규범성 자체가 힘을 잃어버리는 시대가 된 것일까요.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

각종 조례안과 정책에 반대하던 이들은 점점 스스로를 결집시키고 있습니다. 울산에서는 이러한 혐오세력이 모여 체계적인 조직까지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울산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인권운동은 이러한 세력에 대항해서 “혐오와 차별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함께 내왔습니다. 분명 과거 혐오세력은 주로 성소수자와 난민 등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로 결집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들은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인권’이나 ‘젠더’ 혹은 ‘다양성’ 등 가치에 대한 혐오로 집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들과 어떤 방식으로 맞설 수 있을지, 사진 한 장에서 출발한 고민이 저를 어렵게 만드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