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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선(線) 위에 선(立)

- 장기수 붓글씨 전시회를 준비하며

인권재단 사람과 함께 장기수 붓글씨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90년대 중반 인권운동사랑방이 여러 장기수 선생님들로부터 받았던 서예작품들이 전시된다. 그 동안 사랑방이 숙대입구에서 대학로, 중림동, 홍대입구를 거쳐 영등포까지 이사에 이사를 거듭하는 동안에도 함께 했던 작품들이다. 사무실 한 켠에 20여 년 동안 켜켜이 쌓여있던 작품들을 하나씩 펼쳐서 한자를 찾아보면서 뜻풀이를 하고, 표구를 하기 위해 일일이 치수를 재는 작업부터 시작됐다. 작품을 쓴 장기수 선생님들의 약력을 찾아보면서 이 분들의 삶을 감히 상상해보게 된다. 이 모든 일들이 나에게는, 아니 사랑방에게는 90년대 내내 중요한 인권운동의 이슈였던 장기수 석방과 송환운동을 다시 만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2004년 개봉한 영화 ‘송환’으로 장기수를 만났다. 분명 그 전에 이곳저곳에서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이야기, 북송 소식 등을 들었을 테지만 ‘송환’을 보기 전까지 내게 장기수는 먼 과거의 유산처럼만 여겨졌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에 손에 땀을 쥐고 봤던 기억이 난다. 영화를 보고나서, 운동 언저리에 있으면서도 장기수들의 삶에 대해서 이리도 무심할 수 있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되묻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었다. 그렇게 잊혀진 장기수들의 삶이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내게 다시 왔다.

 

류낙진 선생님의 약력을 찾아본다. 구글에 류낙진을 치면 연관검색어로 문근영이 나온다. 문근영의 외할아버지로 더 유명한 장기수 선생님이다. 1928년에 남원에서 태어났지만 5살 때 부모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해방 후 18살의 나이로 남원에 돌아온다. 남로당에 입당하고 전쟁 때는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한다. 이후 통일혁명당 사건 등으로 20년 넘게 수감생활을 한다. 한참 어린 동생 류영선은 1980년 광주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단지 약력을 찾아 적었을 뿐인데, 일제 강점기부터 80년 광주까지 한반도의 현대사가 삶에 깊이 새겨져 있다. 이구영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1920년 연안 이씨 집안에서 태어나 부친은 구한 말 의병활동에 투신했다. 유학자 집안에서 한학교육을 받던 그가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면서 항일운동을 시작한다. 전쟁 때 월북했고 이후 대남공작원으로 남파되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 그를 고문했던 경찰에게 곧바로 잡히고 만다. 22년 수감생활 끝에 80년 5월 석방된다. 전근대 조선 양반 문화부터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 사회, 수감 생활, 20여 년의 남한 자본주의 사회까지 경험한 이구영 선생님의 삶을 신영복은 “자신의 일생에 시대를 담아낸 정직한 삶”이었다고 평가한다. 선생님들의 이런 약력을 찾다보니 시대의 무게에 짓눌리는 느낌이다. 지난 100여 년 한반도의 역사가 만들어낸 시대의 무게뿐만 아니라 정직한 삶을 살고자 했던 장기수 선생님들의 삶에 깊이 각인된 시대의 무게다.

 

하지만 ‘시대’라는 말은 조심히 사용해야 한다. ‘그 땐 그랬지, 다들 그랬지’라는 의미로 ‘시대’를 사용하는 이들이 있다. 장기수들은 단지 오랫동안 갇혀있기만 한 게 아니다. 수감 기간 내내 사상전향을 위한 ‘빨갱이’ 사냥이 계속됐다. 끔찍한 폭력과 고문이 일상이었다. 석방되면 끝이었을까? 아니다. 영화 ‘송환’은 출소 후 갈 곳 없던 장기수를 봉천동에 모시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반공사회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남한사회는 장기수들에게 더 큰 감옥이었을 뿐이다. 감옥에서도 밖에 나와서도 붓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수감된 장기수는 없을지 몰라도 남한 사회가 이 분들에게 가했던 폭력은 다른 방식으로 지금도 재현되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장기수 선생님 아홉 분의 작품 50여 점을 전시한다. 남파된 간첩, 조작된 간첩, 통일혁명당 사건까지 각기 이유는 다르지만 남한 사회가 ‘빨갱이’ 낙인으로 인권을 유린했던 분들이다. 이 분들이 겪었던 끔찍한 고통과 아픔은 ‘시대’ 탓이 아니다. 남한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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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의 글]

 

분단체제 남한에서 때로는 조작간첩 사건으로 때로는 사회 변혁운동에 동참 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북에서 넘어왔다 잡혀 형기를 다 살고도 0.75평 독방에 갇혔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갈라진 땅 위의 경계와 그보다 더 시린 이념의 경계 위에 ‘선’ 사람들이 분단이라는 ‘선’이 만들어낸 참혹한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붓으로 써내려간 ‘선’. 오랜 시간 창고에 잠들어 있던 붓글들이 판문점 공동선언 1년을 맞아 세상과 마주하려 합니다.

류낙진 님, 박성준 님, 석달윤 님, 신영복 님, 안승억 님, 오병철 님, 이구영 님, 이명직 님, 이준태 님. 9분의 50여점 작품들을 전시하지만, 이구영, 이명직, 류낙진, 신영복 선생님은 고인이 되셨고, 몇 분은 거동조차 힘든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를, 장기수 선생님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전시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일 시 : 2019. 4. 17 – 2019. 4. 30, 11:00~19:00 (월요일 휴관)

장 소 : 라이프러리 아카이브 3층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72,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개막행사 : 4. 17. 수.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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