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꿈을 ‘다시’ 마주하기까지의 기록

안녕하세요! 노란리본인권모임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글을 쓰는 과제(?)를 받았네요. 글 솜씨가 많이 미숙해요. 주제를 어떤 것으로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아직 모임에 세 번 밖에 나가지 못했고 뒤풀이도 아쉽게 참석을 못해 저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풀어 나가는 게 조금 힘들어 소제목을 달겠습니다! 그냥 사람 하나 안다 생각하고 편히 읽어주세요~

 

1. 방황과 후회

 

저는 올 해 세 번째 수능을 봅니다. 중학생 때부터 변호사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중간에 연기와 밴드 악기에 빠졌습니다. 처음엔 취미였지만, 갈수록 하는 것이 더 많아지더군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꿈은 연기자도 아니고, 뮤지션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단순히 매료된 것뿐이었어요. 언젠간 다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연기와 악기에 투자한 시간은 약 5년 정도인데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좋은 경험도 많이 쌓았기에 정말 후회는 없습니다. 그 때의 저는 행복했으니까요!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뒤늦게 다시 펜을 잡았습니다. 다행히 성적은 폭발적으로 올랐습니다. 그럼에도 로스쿨 진학을 위해 그나마 조금 더 유리하다는 대학들을 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성적이었습니다. 애초에 수능을 보기 전부터 재수를 생각하고 있었죠. 이것이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후회하는 행동입니다. ‘실패’라는 소중한 기회를 미리 놓아버리는 것을 두 번이나 반복 했으니까요. ‘포기 없이 정당히 노력하고 실패하는 경험을 했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합니다.

 

2. 꿈과의 재회와 회의감

 

사실 3학년 때 다시 공부를 시작한 계기가 좀 있습니다. 정치에 관심이 많던 저는 참여연대라는 시민단체에서 개최하는 시위에 많이 나가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지체 장애인이 이동하기에 어려움이 많은 이 세상에서, 꾸준히 시위에 나와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정의를 외치던 분이셨습니다. 언젠가 그 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불의한 세상임을 인지하고 계셨지만 이 세상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셨습니다. 그 때부터 인권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약자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중학생 때의 저의 모습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아, 시선의 주체는 조금 바뀌었습니다. ‘약자’에서 ‘사람’으로. 약자로 규정짓는 것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의 각기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공감하고 싶어졌습니다. 작년에는 혼자 뉴스나 책, 시사 프로그램을 보고 블로그에다 글을 쓰고 있던 저의 행위에 대해 회의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쥐뿔도 없는 내 글을 통해 과연 세상이 0.0001프로라도 바뀌긴 할까?’, ‘이게 과연 내가 바라던 정의구현을 위한 일일까?’ …… 심지어는 알 수 없는 죄책감도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그냥 일단 더 제대로 공부하고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전엔 차라리 직접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자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부터는 봉사활동을 시작합니다. 초등학교에서 장애 학급을 보조로 지도하며 부끄럽지만 ‘선생님’소리도 듣다가, 다른 곳에서는 친근하게 ‘언니’, ‘누나’ 소리도 들으며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3. 영향력

 

제가 작년에 재수하며 다산 정약용 다음으로 제 인생의 롤모델이 되는 분이 생겼습니다. 국어 선생님이신데, 1년 내내 매주 3시간 수업 중 1시간이 넘게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가령 ‘최순실이 왜 싫으냐? 너에게 무슨 영향이 끼쳤는데?’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절대 최순실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신 게 아니라 많은 것을 알아보고, 깊게 생각을 해보라는 취지셨습니다!) 라는 질문을 던지신다거나, 영화 ‘그 날,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동안 해주시고 저희에게 많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세월호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역시도 그 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또한 저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현장 강의를 듣는 학생 뿐 아니라 수천 명이 되는 인강생들의 고민 카톡과 전화까지도 새벽에 받아주시고, 제 이야기 역시도 들어주시고 공감 해주시는, 제겐 롤모델이자 버팀목이셨습니다. 선생님이 수능 이후 하신 토크 콘서트에서 인권 운동을 하는 한 학생을 데려와 그 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 때 결정적으로 ‘인권 운동을 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이 노란리본인권모임이 저의 첫걸음이고요! ㅎㅎ

 

여러모로 그 선생님은 제게 영향력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되고 싶은 사람도 한 명에게라도 좋으니, 영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4. 마무리하며 – 살아있는 정신에게

 

쓰고 보니 뭔가 자소서 같은데, 이렇게나 미숙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ㅜㅜ

 

노란리본인권모임에 들어와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뜻 깊은 활동, 같이 열심히 해보아요! 정의를 외치는 사람은 우리가 처음도 아니지만, 끝도 아니기에 이 세상은 상당히 희망적인 것 같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제가 좋아하는 김윤식 교수님의 글이 있는데 그대로 옮겨 봅니다. 1994년에 서울대 입학생들을 대상으로 쓰신 글인데, 저의 수험생활, 그리고 지금을 대변할 수 있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대학을 떠나 실존과 자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글입니다. 특히나 마지막 문단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살아있는 정신에게 – 자유인의 표상에 부쳐

 

군은 돼지였다. 군의 입학이 유독 축복을 받아야할 이유가 있을까. 조금 생각해보기로 하자. 군의 입학이란 한갖 우연성의 일종이라 볼 수 없겠는가. 군보다 머리 좋지 않은 자, 이 세상에 혹시라도 있을까. 어림도 없는 일이다. 당초부터 단춧구멍 뚫는 데로 간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우연히도 군은 밥술이나 먹는 집에서 태어났고 그 때문에 고액의 과외 또는 재수도 할 수 있었고 혹은 튼튼한 육질과 맑은 귀를 유지할 수 있지 않았던가. 밥은 잘 먹었느냐, 잘 잤느냐, 내복 입었느냐, 공부했느냐고 묻는 보살핌 속에 군이 놓여있지 않았을까. 심지어 기르는 강아지조차도 군의 안색을 살피는 그런 속에서 군은 살았다. 무슨 대학을 가야 된다든가. 무엇을 전공해야 된다는 것도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갈 데 없는 돼지였다.

 

군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 그들은 아마도 사랑이란 위선의 이름으로 그렇게 했던 것이리라. 군이 돼지 또는 노예였음이란 물론 군의 잘못이 아니리라. 군이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닌 까닭이다. 군은 다만 태어나졌을 따름. 던져진 존재였던 것. 어디에 던져졌던가.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이 아니겠는가. 거기 군은 혼자 던져졌고 따라서 불안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혼자 있음, 불안, 무서움. 이 삼각형의 도식이 군의 본래의 모습이었다. 이 조건을 철저히 은폐시킨 자 누구였던가. 다름 아닌 지금까지의 군을 에워싼 아비 어미이고 환경이었다. 군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 그들은 아마도 사랑이란 위선의 이름으로 그렇게 했던 것이리라.

 

그러나 어느 순간 군은 마침내 운명이 순간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계기에 직면하게 된다. 그들의 간교한 전략을 간파하는 순간이 오고 만다. 그 계기란 도처에서 예감처럼 온다. 군이 창공의 별을 응시할 때 온다. 헤겔을 읽을 때 온다. '무진기행'을 읽을 때 온다. 릴케를 읽을 때 온다. '태백산맥'을 읽을 때 온다. 들판에 외로이 핀 이름 없는 꽃을 볼 때 온다. 가차 없이 오되 예감처럼 온다.

 

어떤 역사적 사회적 조건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나' 자신의 세상에서의 있음의 의미란 무엇인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하는 것인가. 어떤 방향성도 해답도 없음을 서서히 군은 알아차릴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지금 여기 '나'가 있다는 것. 이것만은 절대로 의심할 수 없다. 여기 '나'가 있되 혼자 있다는 것. 불안하다는 것. 무섭다는 것. 이 엄청난 짐을 지고 있다는 것.

 

이 짐은 아무도 벗어날 수 없다. 차라리 의무라 불려야 마땅하리라. 의무는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다. 의무니까. 이 의무를 수행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있다. 권리가 그것. 혼자 있음으로 말미암아 감당해야 될 불안과 공포를 대가로 하여 비로소 얻어진 권리, 이를 두고 자유라 부를 것이다. 자유이되, 무한한 자유가 아닐 수 없는데 그것은 던져진 존재로서의 그 의무의 정비례하는 것, 이를 결단 혹은 계획이라 부를 것이다. '나'는 무엇이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그 아무도 궁극적으로는 관여할 수 없기에 그 계획은 저주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의무 그것만큼 권리의 처절함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지 않겠는가. 돼지에서 벗어나 이 저주스러운 자유인으로 변신하는 장대한 장면의 입구에 작은 팻말이 하나 서 있지 않겠는가. 거기 적힌 글씨를 군은 이제 똑똑히 읽을 수 있으리라. '대학'이라는 두 글자가 그것.

 

군은 아는가. 훔볼트가 세운 저 베를린 대학 창립이념을. '혼자 있음'과 '자유'로 그 이념이 요약되어 있음을. 대학의 주체는 학생도 선생도 건물도 아님을. 이념 그것이 이곳의 주체임을 '살아있는 정신'이라 부르는 이 자유 앞에 군은 지금 서 있다. 군의 입학이 축복받아야 할 이유가 혹시 있다면 바로 이 장면에서이리라.

 

김윤식 (인문대 교수, 국문학) 대학신문(199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