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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안식년이 끝나고 난 뒤~♪

안식년이 끝나고 난 뒤~♪

미류(상임활동가)
안식년을 마치고 사무실에 나온 첫 날, 밤새 눈이 내려 대문 앞 오르막길이 아슬아슬하더군요. 조금 일찍 집을 나섰더니 사무실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어요. 가방을 부리고, 빗자루를 집어 들고 눈을 쓸었습니다. 곧 출근할 사람들을 맞는 설렘이랄까, 그런 기분으로 열심히 쓸었더니, 일주일 넘게 손목부터 어깨까지의 통증으로 고생했어요. 큭. 이런 약간의 ‘과잉’이 복귀 후 한 달의 제 모습인 듯합니다. 오랜만에 사무실에 나왔는데 너무 익숙해서 섭섭하더라고요. 간간히 일이 있어 사무실에 들락날락했지만, 그래도 1년을 떠나 있다가 돌아온 사무실이 익숙하면 곤란하잖아요. 물론 키폰 전화기 사용법을 잊었다거나, 부엌에 소금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거나 하는, 매우 바람직한 증상들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아서요. 책과 파일을 가득 쌓아두었던 책꽂이를 책상 위에 두지 않기로 한다거나, 컴퓨터의 운영체제를 윈도우가 아닌 우분투(독점에 반대하며 오픈소스로 운영되는 체제)로 바꿔본다거나 하는 무모한 도전들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년의 시작부터 끝까지, 어디 여행 다녀오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잘 쉬지 못할까 걱정해주는 마음들이었지요. 그 마음들이 고마워서 악착같이 잘 쉬었습니다. 요령은, 인터넷 안 보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거의 끊고 살았지요. 1년을 지내 보니 자기 일이 아닌 어떤 일들에 관심을 갖는다는 게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어요. 물론 핸드폰을 끊고 사람을 안 만날 정도로 속세와 절연한 것은 아니라, 드문드문 들려오는 소식들을 듣기는 했지요. 그래도 활동을 하는 동안 느끼고 반응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접속해 보려고 애를 썼답니다. 쉬고 있는 중이니 일을 맡고 싶지 않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그동안의 활동이 너무 관성적인 것은 아니었는지 차분히 돌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콜트콜텍 노동자들과 함께 밴드 연습을 한 것도 그 노력 중의 하나입니다. 쉬는 동안 기타를 배우려고 했는데 마땅한 기회가 없던 차에 콜텍 노동자들이 꾸린 ‘콜밴’ 연습에 끼게 되었어요. 콜트와 콜텍은 기타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타 브랜드인데, 사장은 노동자들을 모두 정리해고 하고 2008년에는 공장을 해외로 옮겨버렸지요. 작년 2월 부당해고 판결이 나왔는데, 사장은 그럼 다시 해고하겠다며 법적 절차를 갖추어 해고를 통보했답니다. 2천2백일이 넘도록 노동자들이 해고가 부당하다며 싸움을 벌였지만 사장은 대화에 나서지도 않을 정도로 무시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부평의 콜트공장은 한달여 전 모두 철거되었어요. 노동자들과 함께 하면서 빈 공장을 의미 있는 장소로 가꾸기 위해 들어갔던 예술가들의 작품이 많이 훼손되기도 했고요. 이런 곳에 오직 기타만 치겠다며 일주일에 한 번씩 다녀왔습니다.

안식년이 아니었다면, 같이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집회에 참여하고 연대를 호소하는 글을 쓰고 사람들을 모으고, 또 이런저런 일들을 했겠지요. 하지만 “나는 활동가가 아니야”라고 주문을 걸듯 거리를 두고 콜밴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늘 하게 되는 일은 하지 않겠다, ‘안식년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고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당연하게도, 마음이 많이 부대꼈어요. 도대체 내가 두고 싶어 하는 ‘거리’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지더라고요. 투쟁 계획을 논의하거나, 사법 판결의 결과를 분석하고 대응하거나 하는 자리는 일부러 피했고, 집회나 문화제가 있을 때에도 굳이 찾아 가지는 않았어요. 그냥 기타를 함께 배우면서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 받았고,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였지만 기타를 연주해 본 것은 처음인 사람들이라 이것저것 가르쳐주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지요. 하지만 그게 그리 구분되는 것이 아니었어요. 장기투쟁사업장인 데다가 공장에서 숙식을 함께 하는 농성 중인 분들이니 일상이 곧 치열한 싸움이었을 뿐만 아니라, 콜밴의 공연 자체도 싸움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투쟁하는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우연히도 악독한 사장을 만났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 싸우는 거라고요. 하지만 투쟁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 있는 친구이기도 하고 가족이기도 합니다. 밥 하고 설거지 하는 것이 어색한 사람들, 공연이 있어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르면 부끄러워서 목소리가 떨리는 사람들, 누구보다 아끼는 동료들이지만 매일 24시간을 같이 지내다 보면 짜증도 부리게 되고 싸우게 되기도 하는 사람들, 다 같은 사람들이지요. 다만 어떤 우연의 순간들을 거치며 그 일상이 사회의 부조리와 깊숙이 연관되어 있음이 드러날 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다르게 살아가지만 우리 모두가 서 있는 무대의 배경은 하나의 세상입니다. 그래서 ‘연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무대에 서 있는 사람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박수를 보내는 연대가 아니라 함께 무대에 서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연대가 아닐까 하고요.

‘안식년이니까 할 수 있는 일’ 중 하지 못한 게 하나 있는데, 작년 가을에 있었던 ‘생명평화대행진’이에요. 강정에서 출발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는 현장을 두루 돌아 서울로 오는 긴 행진이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활동을 하는 중에는 긴 행진 일정에 전일 참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답니다. 활동가들마다 맡은 일이 여러 가지다 보니 모두 중단하는 것이 어렵거든요. 그래서 한창 고민을 하다가 결국 안식년 중에 배우기 시작한 기타와 타로카드 일정을 선택했지요. 그래서 아쉬움이 많이 남기도 하는데, 이 역시 ‘연대’의 기쁨을 한껏 나누지 못한 아쉬움입니다. 강정의 할아버지가 밀양의 할머니를 만나, 마치 오래 전부터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처럼 서로 눈물과 웃음을 나누는 자리에 함께 있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더라고요. 강정과 밀양뿐만 아니라, 2011년 희망버스 이후로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연대의 물결이 박근혜 정권 시대 인권운동이 주목해야 할 중요한 흐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힘을 보태는 사람과 힘을 받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만남 자체가 힘이 되어 서로를 북돋고, 우리가 함께 무대에 서 있음을, 그리고 함께 살자고 외칠 때 혼자서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연대. 그 자리가 바로 인권의 외침이 터져 나오는 자리일 것입니다. 인권연구소 ‘창’의 류은숙 활동가가 "인권을 외치다"를 낸 후 ‘연대’에 주목한 "사람인 까닭에"를 내게 된 이유도 그것 아닐까요? (이렇게 은근슬쩍 일독을 권합니다. ^-^)

작년 사랑방은 2013년 인권운동사랑방 20주년을 맞아 앞으로 어떤 인권운동을 펼쳐가야 할까 고민을 나누는 워크숍을 여러 차례 가졌답니다. 안식년이지만 동료들과 고민을 나누기 위해 사무실에 종종 나왔어요. 인권의 목소리가 몽글대는 자리에서 세상을 울릴 외침을 만들기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여러 자리에서 울려 퍼지는 외침들이 따로 또 함께 사는 새로운 세상을 일구는 힘이 되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그 자리들을 이어야 할까, 이런 고민들을 나누었답니다. 어쩌면 그런 자리가 있어 더욱 마음 놓고 여유를 부리며 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사랑방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어 잠시 넋 놓고 딴청을 피워도 곧 쫓아갈 수 있겠다는 여유가 생겼으니까요. 안식년이라는 걸 아는 많은 동료들이 별로 연락을 안 해서 처음엔 조금 서운했어요. 그런데 곧 고마운 배려라는 걸 깨닫게 되었지요. 이제 다시 천천히 걸어가려고요. 안식년에 커피를 직접 갈아서 내려 마시기 시작했어요.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의 여유랄까? 그 여유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도록 슬슬 시동을 겁니다. 다시, 봄이 오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