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이야기

[인권하루소식] 힘들고 긴 싸움에 지치지 않기를…

16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한번도 장애인 친구와 함께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 그때까지만 해도 장애인들은 기껏해야 기관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가야지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서른 살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하늘을 볼 수 있었다”는 한 장애인의 얘기는 나의 경험이 특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동안 장애인들은 인간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박탈당한 채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이들에게 ‘지체장애인의 자립과 권리보호’를 위한 사업을 목표로 해온 정립회관은 장애인들이 의존성에서 벗어나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준 소중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정립회관에서는 중증 장애인 30여명과 정립회관 노조 10여명 등 70여명이 사무실을 점거하고 50일이 넘게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 6월 이완수 관장이 정년퇴임을 10여일 앞두고 이사회를 통해 정년제를 임기제로 바꿔, 11년 동안의 장기 재직에 이어 또다시 2년 연임을 결정하면서 회관 이용 장애인들과 노조가 관장의 연임 철회와 민주적인 운영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길을 묻다
10일 늦은 8시 취재를 위해 정립회관으로 향했다. 정립회관 지부장님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정립회관이 있는 근처까지 쉽게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비장애인이 다녀도 위험하게 보이는 경사길이 정립회관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150미터 정도를 올라가자 경사가 더 심해지지 시작했고 결국 앞서 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봐야 했다.

    “이 길이 정립회관 가는 길 맞나요?”
    “네. 위로 주욱 올라가세요”

하지만 50미터를 더 가서 언덕의 정상에 올랐을 때에도 정립회관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번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정립회관이 어디 있냐고 물어볼 수밖에...

    “바로 옆이에요”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어디 길이 있을까 싶은 곳에 좁은 경사로 길을 통과해 드디어 정립회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애인들 스스로 나서다
정립회관 농성장에서 만난 최진영 씨는 뇌병변장애인이다. 장애인들과 의사소통이 서툰 나에게 진영 씨의 말을 알아듣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진영 씨는 이런 나를 배려해주면서 내가 못 알아듣는 것 같으면 핸드폰으로 대신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2년 전까지 한 달에 한 번 복지관의 도움을 받아 외출하는 것이 다였던 진영 씨에게 정립회관은 특별한 곳이다. 정립회관을 통해 자립생활을 꿈꿀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농성을 하냐’고 묻자 진영 씨는 핸드폰을 열어 뭔가를 열심히 찍더니 나에게 보여줬다. “자립생활은 사회변혁이고 정립회관에서 교육을 받았어요. 그런데 (관장은)자기 이익만 챙기고 안전은 생각 안하고 이용자들을 무시하고 우롱해요” 사회복지 시설이 민간위탁 구조에서 한 사람에 의해 장기 운영될 경우 장애인들의 권리보다는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싸움에 결합하게 된 것이다.

농성을 시작하고 집에 두 번밖에 다녀오지 못했다는 은영 씨도 중증장애인이다. 올라오면서 너무 경사가 심해서 장애인들이 잘 다닐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하자 은영 씨는 “장애인들이 내려가다가 사고가 나는 일이 종종 있었다”며 “관장에게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해봤지만 자기가 직접 이용해 보고 위험하면 그때 얘기하자”고 했단다. 매일 기사 딸린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어떻게 목숨을 걸고 길을 다녀야 하는 장애인들의 두려움을 알까? 은영 씨는 노조가 사주해서 중증장애인들이 들어와 있다는 말이 가장 화가 난다고 했다. “회관 쪽에서 (직원들이나 다른 단체 사람들을 시켜) 농성장에 들어와 때려부시고 하는 거 보면서 독해졌다. 관장의 폭력에 지지 않기 위해서 끝까지 싸우겠다”며 “(취재에) 도움이 되었냐”고 오히려 걱정을 해준다. 힘들고 긴 싸움을 하고 있는 진영, 은영 씨가. 그리고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지치지 않기를, 그래서 장애인들도 사람답게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며 정립회관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g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