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상임활동가의 편지 - 하나] “또 다른 인권교육 10년을 상상하며”

1994년 12월 23일 유엔총회는 1995년부터 2004년까지의 10년간을 ‘인권교육을 위한 10년’으로 선포하고 구체적인 행동 계획의 수립과 실천을 권장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내년이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아시아 지역에서 인권교육을 하고 있는 60여명의 활동가들이 지난 11월 10일부터 12일까지 방콕에 모여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인권교육 : 도전과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회의를 가졌습니다.

인권교육, 10년을 말한다
워크샵은 크게 4가지의 주제로 나뉘어서 진행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워크샵에 참가한 42개 단체 중 일부가 자신의 지역에서 해온 인권교육의 사례를 발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인신매매 되는 여성들, 이주노동자, 아동, 소수민족, 난민, 농부,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서로 공유하고 나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연극을 통해 여성들을 권리의 주체로 세워내는 과정을 발표한 필리핀의 페타의 사례는 일방적인 교육을 넘어 참가자들 스스로가 연극의 과정을 통해 서로 배울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중에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발표를 한 단체들 중 일부의 종교단체들은 종교가 가지고 있는 인권 침해적인 요소들을 극복하지 못한 채 인권교육을 실시하고 있어 종교를 인권보다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워크샵의 두 번째 시간에는 각 지역과 나라에서 정규, 비정규적으로 이루어지는 인권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3개의 모둠으로 나눠 이야기했습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인권교육이 비정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같이 정부의 주도 아래 정규적으로 인권교육이 실시되는 지역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주도하는 인권교육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힘이 되기보다는 지식을 전달하는 체계로 전락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이어서 인권교육의 힘과 취약한 점은 무엇인지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토론을 통해 나온 과제들은 인권교육을 어떻게 대중화시킬 것인지, 여전히 풀뿌리 단계에 있는 인권교육 시스템을 어떻게 효과적이고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지, 인권교육을 위한 자원을 어떻게 동원할 것인지, 인권교육 활동가들에 대한 훈련과 교육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등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진행된 논의들을 기초로 인권교육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전략과 도전과제들을 모아냈습니다.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에서부터 시작해 지역 포럼과 네트워크를 통한 국제적 연대, 인권교육을 제대로 된 정규 교육과정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 유엔 시스템의 적극적인 활용 등이 이번 워크샵에서 중요한 과제로 제출되었습니다.

방콕에서 ‘방콕’하다
2박 3일 동안 아침 9시부터 저녁 늦게까지 인권교육 활동가들의 인권교육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모르고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권교육 대한 열기가 높아질수록 저를 괴롭히는 것은 바로 ‘영어’였습니다. 10년 넘게 영어교육을 받아왔지만 정작 실전에 약한 것이 한국사람들이라고 저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간략하게 자기소개를 하는 것으로 워크샵이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미리 준비한 내용을 영어로 달달 외워 무사히 소개를 마쳤지만 이제부터 시작될 영어 세례를 생각하자 머리가 지끈 지끈 아파 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번 회의에 참여한다고 결정을 하고 나서도 언어에 대한 공포로 인해 참여를 포기할까도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인권운동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류은숙 씨가 함께 참여해 기본적인 내용은 요약 설명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어려움은 따로 있었습니다. 인권교육에 대한 열기가 더해지자 활동가들은 쉬는 시간, 식사시간에도 옹기종기 모여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고 싶어했습니다. 음식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차를 어떻게 마시고 있는지 항상 초긴장 상태에서 쉬는 시간을 보내야 했지요. 이런 때면 방콕까지 가서 정말 방에서 콕 쳐 박혀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정말 간절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둘째 날 점심, 먹을 것 대신 영어를 듣지도, 얘기하지 않아도 되는 방에 콕 박혀서 한 시간 반의 여유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좀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대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런 경험이 하나하나 쌓이면 언젠가는 언어를 넘어 소통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입은 즐겁다
하루 중 공식 일정을 마치고 나면 그래도 즐거운 것 한 가지. 바로 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한국에서는 너무 비싸서 도저히 사먹을 수 없는 새우부터 시작해서, 태국 국수인 누들, 청량함은 없지만 나름대로 달콤함을 주는 과일 등을 먹는 순간만큼은 입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사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침이 꼴깍 삼켜지네요)

10년 후의 인권교육을 상상하다
2박 3일--인권교육의 10년을 이야기하기란 너무 짧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길었던 시간--동안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앞으로 진행될 인권교육에 대한 전략을 이야기하면서 소중한 경험을 하나 만들고 돌아왔습니다. 많은 지역단체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러면서 국제적인 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인권교육이 단지 지식만을 전달하는 체계나 신화나 이상적인 인권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서, 그리고 현실로부터 출발하는 인권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인권교육을 위한 10년의 마무리가 아니라 또 다시 시작될 인권교육 10년을 다시 한번 상상해 봅니다. 2014년, 그때는 인권교육이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심에 서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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