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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체념에 관한 이야기

개인적으로 ‘체념’하는 속도는 광속보다 빨라 남부럽지 않다 못해 오히려 남이 부러워할 정도입니다. 일이 막혔다 싶으면 담배 한 개비 물며 ‘세상이 뭐 다 그렇지...’라며 바로 손을 놔버립니다. 굳이 장점이라면 ‘인생 날로 먹는 기분’으로 정신건강이 좋아지는 거겠지요. 이렇게 ‘체념’하는 방법은 오랜 ‘수련’이 필요할 것 같지만 사실 알고 보면 간단합니다.

심장이 죽어버리면 됩니다.

‘당연한’ 권리가 ‘당연하게’ 묵살되고 빼앗기는 현실 앞에 뜨거워진 심장을, 눈을 감고 귀를 닫은 채 차갑게 식히면 어느새 심장은 죽어버리고 삶은 편안해 집니다.

작년 10회 인권영화제 마지막날 ‘황새울영화제’를 위해 평택 대추리에 ‘단 하루’ 머물렀습니다. 아침 일찍 헬기소리와 헬기에서 울려 퍼지는 ‘애국가’와 경찰들의 군화소리에 잠을 깨 일어났습니다. 마침(?) 도로가 봉쇄 되어있어 아무도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한 채, 대추리 마을 주민들의 시위는 어차피 방송하지 않을 방송국의 카메라만이 담고 있었습니다. 제겐 아이들 웃음으로 기억되던, 대추분교는 무너진 채 폐허가 되어있고, 답답한 마음에 들판을 바라보니 푸른 벼 대신 검은 경찰이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전 하루도 못 버티겠는데,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어떻게 버티고 계셨던 걸까요.

눈을 감고 귀를 닫았습니다. 편안해집니다.
‘에헤라~ 올해는 산이고 들이고 경찰 풍년이로구나~’ 생각하니 남의 일이 되었습니다.

대추리를 떠나오니 바쁜 일상들에 둘러쌓였습니다.
그렇게 도시처럼 살아갔습니다.
남의 일이 되었습니다.
심장은 죽어버렸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활동가’가 아닌 ‘기술자’로서 영화제를 준비하려 다시 사랑방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마주친 한편 한편의 영화들, 그리고 이야기들 속에서 미약하지만 조금씩 제 심장은 다시 호흡을 시작하려 하는 것 같습니다.
“‘당연한’권리가 ‘당연하게’ 묵살되고 빼앗기는 분노를 연대하여 축제로 만들자. 그것이 시작이요 뿌리” 심장은 조용히 제게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심장은 다시 호흡을 시작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