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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나의 수련 일기

9월 초부터 목요일 오전 3시간동안 ‘마음 갈무리’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가 힘들 때 가끔 찾던 상담자의 간곡한 권유가 한 몫을 했고, 집행조정 업무의 스트레스를 잠시 잊고 다른 세상으로 진입을 꿈꾸고 싶었던 마음이 두 몫을 했다. 진작부터 활동가들과 함께 수련 과정에서 있었던 마음의 변화와 혼란을 나누고 싶었다. 다행히 지면을 얻을 수 있어서 몇 자 남긴다. 매우 개인적인 체험이라 사실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질러보겠다.

◆ 9월 **일 감정이입 명상
P와 싸워서 마음이 불편하다. 이럴 땐 사무실에 오기 싫고 인권운동도 때려치우고 싶다. 미운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은 너무나 많은 정신 에너지가 빠져나간다. 그렇다고 모른 척 할 수도 없다. 내 위치에서 적당히 얼버무릴 수도 없다. 상담자에게 SOS를 보낸다. 상담자의 조언 “네가 P의 마음으로 들어가 봐.” 정말 단순한 조언이다. 눈 딱 감고 내가 P인 것처럼 P의 마음으로 들어가려했으나 힘들다. 그렇더라도 내 마음의 불편함보다는 P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이 낫겠다 싶어 계속 시도한다. …… (시간이 흘러) P의 마음이 조금은 보인다. 판단하지 않고 P의 감정을 깊게 느껴본다. 이제 P의 의도를 알겠다. 이런 게 공감일까?

◐ 9월 **일 죽음 명상
오늘은 죽음 명상을 했다. 그동안 ‘나의 죽음’에 관해 상상한 적이 없다. 죽음은 피해야할 그 무엇이지 적극적으로 받아 안는 것은 성인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죽음 명상의 언저리에서 기웃거리기만 했다. 어찌나 자아가 강하던지 명상에서 조금도 내가 죽어지지 않는다. 죽어있다가도 강시처럼 벌떡 일어나기도 하고, 예수님처럼 부활하기도 한다. 고층빌딩이나 절벽에서 떨어지는 상상을 해도 나는 불사조가 된다. 나는 참 강한(?) 나를 가졌다. (얼마간 시간이 흘러) …… 관 속에 누워있는 나를 본다. 눈, 코, 입, 팔, 다리를 차례로 본다. 나는 육체를 버리고 영혼이 되어 지나온 날들을 차례로 가본다. 각각 시기에서 느낀 내 감정을 다시 느껴본다. 그 감정 가운데 어떤 감정은 왜곡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 9월 **일 몸 명상

요즘 어깨가 아프다. 왜일까? 교육실 독립을 앞두고 내 삶에 무게가 더해진 까닭일까? 감기 후유증이 3주째를 넘어가고 있다. 목의 통증은 사라지지 않고, 마치 비행기를 탄 것처럼 귀가 멍멍하고 아프다. 내 몸에게 원하는 것을 줄 수 없는 내 조건이 싫다. 바꿔야지!!! 내 몸이 필요한 것은 첫째, 휴식 둘째, 휴식 셋째, 휴식.
오늘은 몸 수련을 했다. 우리 몸은 기억을 저장하고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 폐는 슬픔과 우울, 간은 화, 위장은 근심과 불안, 장은 명예와 지배욕, 신장은 두려움과 공포...... 지금 감기 후유증은 폐와 신장에게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메시지. 먼저 눈을 감고 나는 북극곰이 되어 내 몸 속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북극곰은 청소도구를 잘 챙겨들고 폐와 신장에게로 가서 먼지를 떨어 쓸어내고 걸레로 잘 닦아준다. 그런 후에 따뜻한 햇볕에 폐와 간을 말린다. 이렇게 하고 나니 내 몸이 좋아한다.

◐ 9월 **일 참회 명상
윽~ T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T와 나를 가로막는 이 장벽은 뭘까? 딱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장벽을 두고 얘기하고 장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하겠는데...... 투명한데 투명해서 보이지 않는다. 내가 유리 안에 갇혀서 유리되는 걸까? 오늘 천 배를 했다. 엄마가 절에 다녀서 가끔 곁눈질로 보던 절을 상세히 배웠다. 두 손을 모아 목례를 하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닿도록 내린다. 두어 시간 하고 나니 땀이 주르륵 흐른다. 윽!!! 내 마음에 있던 장벽이 스스로 내려가면서 T에 걸려 있던 마음도 내려갔다. 내려간 마음을 단전에 묶어둔다. 음 …… 마음이여~ 올라오지 말거라!!!

◐마치며
명상을 권유했던 분이 내게 보내온 편지를 인용하면서 글을 맺는다.
“…… 사람들이 세상을 좋게 만들려고 다양한 방법으로 무척 애쓰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그간 운동권에서 주력했던 사회 제도의 개혁과 함께 시간이 갈수록 그 외의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도우려 애쓰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또한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서 사람 마음이 정화되어야 할 필요를 깊이 느끼는 것은 기대가 아니라 그게 과정에 있어서나 목적에 있어서 중요한 핵심이라 그런 것 같다.
평화운동을 하는 사람과 더 나아가 모든 사람들 마음이 꼬이지 않고, 어둡지 않고, 절망적이지 않고, 화에 절어있지 않고, 경쟁하지 않고, 자만심으로 가득 차지 않고, 세상살이에 있으되 찌들지 않고, 오히려 그 어려움을 마음을 정화하는 수행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 속 평화를 놓지 않는 정화된 상태라면 그동안 운동하는 사람들의 헌신과 바람은 가속도를 더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좀 더 빨리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찾아올 것 같다.
…… 내 마음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노예로 살면서 세상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 지구 위에 전쟁의 포성이 들리지 않는 포근한 잠자리, 부족하지 않은 식사,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들볶이지 않는 마음이 준비된 저녁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너에게 그런 축복이 있기를 빈다. 행복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