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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무력감을 강요하는 예비군 제도(20150520)

집 근처에 예비군 훈련장이 있어 매주 두세 번은 예비군 훈련을 끝낸 사람들을 마주친다. 풀어헤친 군복과 느슨한 고무링(군복 바지를 고정하기 위한)은 이들이 예비역임을 보여준다. 군대에서 질병으로 전역하며 예비군 훈련을 받지 않고 민방위로 넘어갔지만, 예비역인 저들이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주변 친구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조교나 교관들이 뭐라고 말을 하던 간에 대충 시간만 때우다 오는 것, 적당히 따라주다가 오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그렇게 시간만 때우면 되던 예비군 훈련에서 지난 5월 13일 총기사건으로 3명이 사망했다. 잠깐 가서 시간만 때우면 되던 곳에서 설마 그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예비군 훈련의 관리 부실은 모두 알고 있기에 곧 가야 할 예비군 훈련에 대한 두려움도 생겼을 것이다. 그렇다고 참석하지 않을 수는 없다. 예비군 훈련에 불참하면 처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 이후 예상대로 국방부는 빠르게 대책을 내놓았다. 일대일 조교 운용, 안전 고리 운용, 사선 요원에 대한 신형 헬멧과 방탄복 지급 방안 등을 통해 안전한 사격장을 만들겠다는 발표이다. 이것으로 사격장은 조금 안전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격장만 안전하면 다 괜찮아지는 걸까? 예비군 훈련이 위협하는 것이 오직 사격장에서의 위험일 뿐일까? 예비군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계속 의문이다. 

1968년 시작된 예비군 제도

예비군 제도는 5.16 군사쿠데타 직후 1961년 12월 향토예비군 설치법(아래 향군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되었지만, 소요 예산 등의 문제로 부대편성까진 이르지 않았다. 예비군이 본격 부대편성에 이른 것은 1968년 4월 1일이다. 1968년은 김신조 등 북한 특수공작원 31명이 청와대 뒷산까지 접근한 ‘1.21사태’와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으로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감돌던 때다.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은 향토예비군 무장에 반대의견을 내놨고, 1968년 6월 17일 김영삼 의원 등 의원 41명은 향군법 폐지안을 내놨다. 예비군 제도는 사회를 비민주적 전체주의로 몰아넣어 위기의식과 전쟁의 공포감을 조성하고, 국민의 의무를 지나치게 확대한 것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여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한 국가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며, 기존 군경의 강화 및 장비개선 등으로 침략도발을 방어할 수 있다는 것 등이 폐지안의 이유였다. 이후 1971년 당시 대통령 후보 김대중은 대선 공약으로 향토예비군 폐지를 내걸었지만 당선되지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 예비군 폐지를 주장했던 두 사람이 이후 대통령이 되었어도 예비군 제도는 유지되었다. 

예비군 폐지에 대한 입장은 그 이후에도 몇 차례 표명되어 왔다. 2007년 당시 열린우리당 대선후보 정동영은 평화체제와 모병제를 기반으로 일괄적 예비군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2012년 통합진보당은 ‘냉전과 군부독재의 유산을 청산하고 20~30대에게 사회적․사상적 자유 등 국민 기본권을 돌려주기 위해’ 예비군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별다른 논쟁으로 이어지지 못하였다.

예비군 제도, 도대체 왜 필요한 걸까?


향군법에 따르면, 향토예비군의 임무는 1)전시(戰時), 사변, 그밖에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하에서 현역 군부대의 편성이나 작전에 필요한 동원을 위한 대비, 2)적(敵) 또는 반국가단체의 지령을 받아 무기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하 "무장공비")이 침투하거나 침투할 우려가 있는 지역에서 적이나 무장공비의 소멸(掃滅, 3)무장 소요(騷擾)가 있거나 소요의 우려가 있는 지역에서 무장 소요 진압(경찰력만으로 그 소요를 진압하거나 대처할 수 없는 경우만 해당), 4)제2호 및 제3호의 지역에 있는 중요시설·무기고 및 병참선(兵站線) 등의 경비이다. 예비군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향토예비군 이념을 보면 향토예비군을 호국의 투사로서, 군경의 동지로서, 국민의 자제로서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는’ 범국민적인 자유방위의 역군이라 말한다. 

이러한 예비군의 임무와 이념은 남과 북의 군사적 대립 속에서 우리는 전쟁을 준비해야 하고, 항상 무장공비나 무장 소요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60만 명에 이르는 현역군인과 35조 4560억 원에 달하는 국방예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300만에 이르는 시민들이 예비군으로 훈련을 받으며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현재의 국방정책도 논쟁거리가 많지만 여기서 다루지는 않는다.) 2년 동안 권리가 박탈된 채로 복무한 것을 넘어 이후 7년 동안 권리 박탈의 시간들을 경험해야 하는 것, 평화롭게 살기 위함이 아닌 전쟁에 대한 구체적 대비, 사상적 강압을 요구받는 예비군 훈련은 문제가 있다. 

예비군 훈련은 자신이 무력해지는 순간

사실상 예비군 훈련이라는 건 시간 때우면서 땅바닥에 발 비비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는, 그래서 그저 시간이 가길 견뎌야 하는 순간들의 연속이다. 2년 동안 군 생활을 하면서도 하기 싫었던 걸, 다시 일정 시간 사회와 단절해서 버텨야 하니 그걸 누가 좋아할까?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알 수 있는 사회문제를 그저 반공교육으로 덧씌우면서 여전히 고집하는 걸 듣고 있는 것 자체가 곤혹일 것이다.

그렇지만 예비군 훈련을 거부할 수는 없다. 예비군 훈련을 가지 않으면 향군법 제15조 8항의 규정에 의하여 1년 이하의 징역, 2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 처분을 받게 된다. 단지 한번만이 아니다.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 하는 6년 동안 이는 반복된다. 결국 답은 예비군 훈련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이 시간들을 버티는 것뿐이다. 

이와 같은 예비군 훈련의 강제성은 결국 훈련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권리가 짧게는 1일, 길게는 4박 5일 박탈되는 과정이다.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예비군 훈련에서 사람 모형을 향해 총을 발사하고, 누군가를 죽이는 훈련을 받는다. 자신의 정치적․양심적 지향과 무관한 안보교육을 받고, 북을 우리의 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또한 집회에 참여하고 사회의 변화를 외치는 사람들이 국가를 혼란스럽게 하는 존재라는 것을 강요받아야 한다. 듣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예비군은 소집기간 동안 군법에 적용을 받고, 괜히 훈련을 다시 받아야 하는 등 불이익이 생길지도 모른다. 다른 소리를 내봤자 피곤해질 뿐이다. 결국 방법은 단 하나다. 멍 때리거나, 대충 눈치 보며 슬렁슬렁 움직이며 버티는 것. 그렇게 체념할 수밖에 없다. 아주 조금만 눈감고 시간을 흘리면 나갈 수 있는 곳에서 굳이 저항할 이유는 없다.

바로 여기서 예비군 제도가 가진 문제는 드러난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누군가의 지시만을 따라야 하는 무력화 되어지는 경험을 평균 300만 명의 사람들이 느껴야 한다. 2년이라는 군대에서 느낀 무력감을 매년 다시 한 번 경험한다. 누구도 이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훈련장에서 예비군이 조교들에게 반말을 하거나 퉁퉁거리는 건 당연하다. 훈련기간 동안 느끼는 무력감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게 '너넨 여기서 나가려면 아직도 멀었지만, 나는 몇 시간만, 며칠만 버티면 벗어난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무력감과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인권은 함께 존재할 수 없다. 무력한 개인으로서의 나를 넘어 함께 모이고 지키고 외치고 싸우는 우리로 인권의 현장은 움직인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권력은 언제나 이들을 무력화시키려 한다. 너희가 외쳐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물리력을 동원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억누른다. 이는 투쟁하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소모품처럼 노동자들을 다루려는 자본가들,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을 밀어내며 배제하는 방식을 취하는 권력자들, '너네는 거대한 권력 앞에 작은 존재에 불과해' 라는 방식은 도처에 존재한다. 그리고 예비군 제도는 이와 같은 방식의 한 갈래에 있다.

예비군 제도 폐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보자

예비군 제도 폐지는 쉽지 않은 논쟁이다. 1968년 만들어져 2015년인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시대상이 바뀌었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평화체제가 만들어진다면 예비군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했던 주장도 있지만, 그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해 예비군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논의에 지금 예비군 제도가 박탈하고 있는 인권이 무엇인지 보태고자 한다. 그리고 그 권리가 박탈되어야 하는 이유를 되묻고자 한다. 전시와 국가변란을 막기 위한다는 목적이 과연 평화를 위함인지 그렇지 않은지, 그리고 그 목적이 존엄한 인간으로 살기 위함을 어떻게 가로막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면서 예비군 제도 폐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