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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와 함께 보낸 시간들

경내 언니로부터 ‘자원활동가의 편지’를 써보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선뜻 그러마고 응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저는 그런 거 못해요.
죄송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의뢰하면 안 될까요?’라며 극구 거절했을 텐데 말이다. 이런 순간 나는 변화된 나를 느낀다. 하기는 내가 ‘자원활동’이라는 걸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그 순간부터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었던 것이다.

운명의 그 순간!
처음 사랑방의 문을 두드리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새벽을 깨우는 A4 한 장>,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하워드 진)는 두 권의 책이었다. 대학 시절 이후 나는 내내 뭔가 빚진 기분에 시달렸지만, ‘끝까지 하지 못할 일이라면 시작하지 말자. 나는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야. 결국 허영심에 조금 시늉만 하다 접을 텐데, 그럼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울 거야.’라는 말로 변명하며 애써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그러다 이 두 권의 책을 읽게 되면서 심화된 의식의 불편함은 끝내 내 몸을 밀어냈고, ‘그래, 여전히 부끄럽고 분열적이고 부족하지만,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하면서 끝내 부끄럽더라도 부끄러움을 핑계로 더 부끄러워지지는 말자.’고 다분히 의도적인 큰소리를 치며 사랑방을 찾았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 순간이 내게는 운명!이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책
그래서 시작된 청소년 노동인권 네트워크의 활동…. 그 속에서 나는 정말 잊지 못할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지속된 야근으로 심신이 지쳐 있던 어느 날, 쌓여 있는 일거리들을 젖혀 두고 허정거리며 모임에 나간 어느 다음 날의 날적이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어제 오랜만에 모임에 참석했다. 사람들 얼굴도 보고 앞으로의 계획도 세우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이제야 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아침에 눈뜰 때 행복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얻는 활력은 생의 의지를 고양시킨다.’
늘 피곤에 찌들어 ‘그래 오늘은 뒷풀이 가지 말고 일찍 일어서자’고 다짐하며 들어섰지만 결국 나는 사람이 좋아, 그 사람들과 나누는 많은 이야기들이 좋아 ‘한 병 더 먹어요!’를 외치다가 얼큰하게 취해 콧노래를 부르며 새벽에야 집에 들어오곤 했던 것이다.
흐음... 지금도 우리 팀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면 나는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과 관련된 주제들에 대한 9차례의 세미나,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 프로그램과 읽을거리에 대한 논의, 자료 수집, 집필을 거치는 동안, 애초에 계획된 기간을 훌쩍 뛰어넘어 1년 6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8월에 <똑똑, 노동인권교육 하실래요?>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얼마나 고대했던 책의 출간이었던지……. 나 자신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이때처럼 책이 기다려졌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
이후 여기저기 책을 알리고 강매(?)하고. 그건 그만큼 이 책에 대한 애착이 크고 또 함께 공유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기 때문이리라. 안 읽어 보신 분들은 꼭 사서 읽어 보시길.

생애 처음으로 진행팀으로 참여한 워크숍
우리 팀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사건 또 하나. 8월 19일부터 1박 2일의 일정으로 진행된 ‘교사를 위한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워크숍’. 내 생애 처음으로 진행팀이 되어 참여한 이번 워크숍은 내게는 평생 잊지 못할 하나의 기억으로, 하나의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워크숍에 참여하신 분들이 대체로 적극적인 성격에 뛰어난 감수성을 갖춘 분들이어서, 워크숍은 내내 ‘서로의 경험과 느낌과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나누는’ ‘역동적’이고 ‘참여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특히 ‘잃어버린 권리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상황극은 노동자와 사용자의 역할을 맡은 참여자들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워크숍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의 뇌리에 강인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워크숍 참가자 중 한 분은 ‘자신이 참가한 워크숍 중 최고!’라고 칭찬해 주셨다는데, 나 또한 다음 워크숍이 기다려진다.
개인적으로 이번 워크숍은 나 자신의 태도에 대해 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거나 상황극을 선보이는 데 있어서 지극히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인 다른 참여자들에 비해 나는 왜 지나치게 긴장하고 초조해하는가 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나의 고민은, 자신을 보이는 데만-그것도 ‘휼륭한 모습만’- 치중했을 뿐 마음을 충분히 열어 소통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반성적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는 데 있어서도 마음을 열어 경청하고 생각을 재구성하려 하기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답에 따라 다른 사람들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려 했으며, 또 참가자가 아닌 평가자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평가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데 급급했음을, 형식적인 경청의 제스처를 취했을 뿐 실제적인 경청의 자세는 갖지 못했음을 깨닫게 했다. 결국 나는 이번 워크숍에서 인권 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망각했던 것이다. 마음을 열어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또 함께 구성해 가는 그런 경험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적어두면서, 이번의 경험과 깨달음이 다음 번 워크숍에서는 어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지를 기대해 본다.

실업계고 학생들과 손 맞잡고 싶다
워크숍을 다녀온 뒤 이어서 진행되고 있는 현장실습 실태 조사. 내가 맡은 부분은 실업계고 취업게시판을 분석하는 것이었는데, 취업게시판의 게시물들을 훑어보는 내내 내 입에서는 한숨과 탄식이 새어 나왔다. 어느 정도 막연히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구체적이고 실감적으로 실업계고 학생들이 처한 현실을 접하고 보니 도무지 할 말을 잃어 버렸던 것이다. 현장실습과 취업 의뢰서의 거의 대부분은 인력회사를 통한 불법파견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인력파견 회사가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이 정도로 광범위할 줄이야. ‘청소년’이라고 하면 앞으로 대학에 진학할 학생들만을 떠올리고, 청년 실업이라고 해야 대졸 출신 실업자 문제만을 떠올리는 사이에, 공공의 시선으로부터 소외된 실업계고 학생들의 노동조건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어 있었다.
학교와 학부모, 기업의 은밀한(?) 공모 속에 사실상 값싼 노동력 제공의 창구가 되어 버린 현장실습. 그 속에서 고통받는 실업계고 학생들의 감추어진 목소리. 나는 지하철에서 ‘현장실습 일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학생의 손을 잡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앞으로 우리 팀은 현장실습 현황에 관한 자료 분석과 현장실습 참여자에 대한 면접 조사 등 현장실습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들을 계속 해 나갈 것이다. 이제까지 실업계고 학생들의 존재조차 망각한 채 살아온 나 자신의 빚갚음과 자기 구제를 위해서라도 나는 많이 고민하고 발로 뛰면서 때로 웃고 때로 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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