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세상을 향해 크게 호흡하기

‘실지렁이, 종벌레, 모기붙이 유충...’ 
어느 일정 지역의 환경이나 오염정도를 알 수 있는데 이용되는 생물들을 ‘지표생물’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들은 독특한 환경조건에서만 살 수 있는 생물들이라는 것이다. 가령 어느 계곡을 놀러갔는데 그 물에 열목어나 산천어가 노닐고 있으면, 손 바가지로 한 움큼 떠 마셔도 좋을 깨끗한 물이라는 지표가 된다. 유감스럽게도 앞에 열거한 생물들은 4급수에나 해당되는 지표생물이다. 이들이 살고 있는 물은 제 아무리 정수처리를 해도 마실 수 없으며, 물놀이를 한답시고 뛰어들었다가는 피부병을 옮아가기에 딱 좋은 그런 곳이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생태계에는 ‘국가보안법’이라는 대표적인 지표생물이 살고 있다. 일제 하 ‘치안유지법’으로 이 땅에 태어나 세계인권선언이 태동한 그 해에 ‘국가보안법’으로 또다시 진화하여 그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아주 지긋지긋한 녀석. 국가보안법은 그 존재 자체가 우리 사회의 인권의 척도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이다. 마찬가지로 국가보안법이 상존하는 환경에서 제 마음대로 뛰놀았다가는 무시무시한 공포를 경험해야만 한다.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인권에 대한 담론이 많은 고민 없이 쉽게 남용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 저마다가 가지고 있는 자기권리를 행사할 때도 ‘인권’을 남발한다. 다른 환경, 다른 조건을 가진 사회 내부에 개입하고자 할 때도 쓰여 지는 무기는 ‘인권’이다. 또한 과거의 군사독재 시절에 비견해보아 상대적,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립되었다는 단순비교로 우리의 ‘인권’이 향상되었다고 믿어버린다. 그러나 단언컨대 국가보안법이 이 땅에서 숨쉬고 있는 한 우리에게 ‘인권’이란 죽은 목숨과 다를 바 없다. 그동안 우리는 삶을 옥죄어 온 것들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였다 라는 생각도 든다. 90년대 후반 이후 어느 정도 당장의 피해나 일상적 억압이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던 상황에서 현저하게 나타나는 다른 사회적 문제에 우선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안보를 위해 개인과 사회전체의 일상적 자유를 통제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는 국가보안법과 이 모든 나열들과 정반대의 방향성을 담보한 ‘인권’과는 함께 마주할 수 없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이라는 생각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지난 56년, 아니 그 이상을 국가보안법 체제 하에 살아온 우리들은 스스로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철저하게 그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국가보안법의 조항 하나하나 자체도 당연히 문제가 되지만, 그 법 조항들이 만들어 낸 사회적 흐름들이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위험한 폐해이다. 여전히 한 개인이 북한에 대해 선뜻 다가서기 어려운 현실이라든지, 사회적 약자들이 자본주의 각종 모순들을 타도하자고 외치는 것이 불경하다고 느낀다든지, 마르크스나 레닌, 트로츠키나 그람시가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 왜 좋게 서술되어서는 안되는 것인지 등등의 문제들은 국가보안법의 종식 없이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우리 안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얼마 전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를 외치며 집회에서 할복을 하신 분이 있었다. 평범한 개인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내화시키고 그것을 절대적인 개인의지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불행한 일이다. 국가보안법이 폐지가 되면, 사람들이 사회주의 사상을 가지게 되면 세상이 당장이라도 망할 것 같이 여기시는 그 분들도 사실상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다.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체제가 강요하는 이념을 철저하게 믿고 따랐다는 것일 뿐이다. 빨간색을 보면 무조건적으로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도록 길들여진 또 다른 ‘파블로프의 개’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반공냉전체제의 모든 피해자들을 보듬어 안고 가는 새로운 진보의 길이다.

우리는 살아가다 보면 많은 상처들을 입게 된다. 그런데 상처를 치유하는데 있어서 그 깊이나 위급함보다는 눈에 보이는 상처에 더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손가락이 조금 찢어져서 피가 흐르게 되면 급히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이면서도, 몸 안에서 종양이 자라나고 있어도 아프지만 않으면 그냥 무시해버리기 일쑤다. 조그만 상처에도 호들갑스럽게 구는데 안으로 곪는 종양에는 왜 무관심한가? 결국 그것들은 우리의 생명을 천천히 갉아먹고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의 ‘인권’은 우리의 ‘무기’가 되어 지난 세월 이어온 비상식적인 흐름들, 우리의 생명을 단절시키는 흐름들에 대해 단호히 맞서야 한다. 

사랑방에서 자원활동을 하면서 또 다시 활동을 어떻게 하면 그만두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한다. 우리 국가보안법팀은 역설적으로 우리 스스로가 빨리 없어져야 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조금만 더 힘을 내어 모든 사람들의 일상에 평화가 찾아든 그 길에 하나의 징검다리 한 돌을 놓아두어야겠다. 그리고 마음껏 숨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