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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안식년이다!

안식년이다!
미류(상임활동가) 거의 다르지 않은 하루들이 지나고 있어 안식년이 아직 실감 나지는 않아요. 밥 당번이 언제인지, 설거지는 언제 해야 할지 칠판의 당번표를 보며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것, 사랑방 활동가보다는 사랑방 밖의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는 것, 이런 작은 차이들이 있네요. 그런데 또 이 작은 차이가 이상하게도 큰 여유를 줍니다. 여기에 숨은 ‘불편한 진실’은 무엇일까요? 헤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안식년 계획을 3년 전부터 세우고 있었습니다. 총회에서 안식년 제도를 만든 후, 안식년에 무엇을 할까 가끔씩 궁리해뒀지요. 처음에 하고 싶었던 건, 중림동 우리동네 르뽀였어요. 골목 초입에서 세상을 호령하는 슈퍼 아주머니, 항상 웃는 얼굴이지만 언제나 묵직한 삶의 무게감이 웃음의 한 귀퉁이를 떠나지 않는 세탁소 아저씨, 노랗게 머리를 염색하기도 하고 가게보다는 가게와 떨어진 골목에서 더 자주 마주치는 간판집 아저씨와 가게를 지키는 꽁이, 뭐 이런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할수록, 인권이 감히 품을 수 있는 세상도 넓어질 거라는 기대가 있었던 거죠.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 이건 여전히 올해 안식년의 큰 목표로 생각하고 있는데, 목표와 상관이 있을지 없을지, 그냥 인권연구소 ‘창’에서 놀기로 했습니다. 안식년이라고 말하면 탄식을 하며 부러워하던 사람들이, 이 얘기를 하면, “그게 무슨 안식년이야?” 하나같이 이런 반응이에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게 무슨 안식년일지. 큭. 하지만 같은 사람을 다른 방식으로 만나는 것도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어요. 그게 요즘 막 꽂혀서 고민이 뭉게뭉게 번져가는 ‘공간/장소와 인권’이라는 주제이기도 한데, 인권운동사랑방 사무실이 아니라, 인권연구소 ‘창’에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다르게 살 수 있을 거라고요! (여기에서 약간의 결의에 찬 비장함을 읽어주세요! ^^;;;)

인권활동을 하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사실은 그리 다르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사랑방 사무실에 있으면, 어찌나 다 성격도 제각각이고 기호와 취향과 말투도 제각각인지 모르지만, 밖에 나가면 “사랑방 활동가들은 뭔가 다른 비슷한 느낌이 있어.” 이런 얘기를 많이 듣는답니다. 아, 물론 이건 살짝 자랑질이기도 하지요. 사랑방 활동가들도 스스로 모르고, 이야기해주는 사람도 뭐가 다르다고 꼭 집어 말하지는 않지만, 뭔가가 있기는 있지요. 사랑방뿐만 아니라, 인권활동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운동들, 예를 들어 노동운동, 반빈곤운동, 지역운동, 여성운동 등등과 함께 하는 일이 있을 때, ‘인권활동가’들은 늘 독특한 무언가를 공유한 사람들로 호칭되죠. “인권활동가들이 그렇게 말하면 이해되지만, 어떻게 당신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한 활동가가 자신이 ‘인권활동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걸 억울해했다는 소문도 있어요.

그런데 사실 거기서 더 넓혀도 그래요. 다양한 운동들, 인권운동 안에서도, 청소년, 성소수자, 장애인, 홈리스, HIV/AIDS 감염인들 등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구분되는 운동이 있고, 노동조합, 노동운동단체, 정치운동단체들 등 단체들도 엄청 다양하죠. 물론 이들과 만날 때 서로 다른 결의 고민이나 말하기, 이런 것들로 유리벽이 생길 때도 있고, 엉뚱하게 어긋나기도 하죠. 하지만 더 넓게 보면, 이 세상에서, 이 세상이 뭔가 문제가 있고 우리가 이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크게 나누면 다 한 부류의 사람들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조금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늘 한편에 있답니다.

며칠 전 한 친구를 만났어요. 직장을 다니는 친구인데, 직장에서 겪는 여러 가지 일들과 자신의 마음들을 얘기해주더라고요. 그러면서 “직장 얘기하면 재미 없지?”라고 묻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런 이야기들이 정말 궁금하거든요. 제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그리고 앞으로도 경험해보기는 어려운 이야기들, 하지만 세상의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끙끙 앓는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들 속에 ‘인권’이 숨어 있을 테니까요. 사실 그 이야기들은 우리가 전혀 모르거나 아주 새로운 사실을 전해주지는 않을지도 몰라요. 세상의 수많은 책과 매체들을 통해서도 전해지는 이야기들일 테고, 결국 그런 이야기들을 읽어내는 몫은 각자에게 남겠지요. 다만, 그렇게 읽어낼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아지는 만큼, 인권/운동도 더욱 풍성해지고, 더욱 근본적인 변화를 꿈꿀 수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연대의 가능성이 더욱 열리지 않을까 싶어 설레요.

느끼셨어요? 저는 요즘 엄청 들떠 있어요. 큭. 사무실에 앉아 원고마감에 쫓기고 부대끼는 감정들에 애타고 이런저런 모임을 준비하며 후달려도, ‘안식년’의 힘이 막 샘솟는 중이지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벌써 포기한 것들과 포기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을 느끼는 것들 등등이 마구 흩어져 있고, 일단 인권연구소 ‘창’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지만,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 1년 동안 열심히 쉬겠습니다! 그리고, 사랑방이 안식년 제도를 도입할 수 있었던 데에는 후원인 분들의 지지와 격려가 적지 않은 힘이 되었지요. 감사하다는 인사도 함께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