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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6호> '납북자' 문제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준비 6호 | 2007년 11월 9일
지난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개최되었던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남한사회는 또 한 차례 ‘북한문제’와 관련한 첨예한 입장 차이를 보여주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어떤 문제를 가지고 논의할 것인지의 ‘의제선정’을 놓고 좌우로 대변되는 사회세력들의 갑론을박이 이루어진 것이다. 남한정부와 일부 진보세력들은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를 정상회담의 핵심의제로 삼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는 반면, 수구·보수세력들은 북핵문제를 제1의제로 삼아야 하는 것은 물론, 소위 ‘납북자’문제를 포함한 ‘북한인권’문제를 반드시 정상회담의 의제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반도의 전쟁가능성 배제, 비핵화 등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사항으로 어느 하나만 이루어진다고 해서 한반도의 평화와 민중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납북자’문제는 북한정권에 대한 책임추궁, 조건 없는 송환 요구, ‘납북자’에 대한 용어와 규모에 대한 논란 등 기존의 일방적인 문제인식을 넘어서서 ‘한반도인권’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납북자’ 개념과 규모에 대한 논란

남과 북은 공히 전 세계적인 냉전과 분단, 그 결과인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고향을 등진 실향민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이산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분단과 전쟁을 겪으면서 자발적으로 고향을 떠난 ‘이산가족’과는 달리, 자신의 의사에 따라 혹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고향을 떠나게 되었고, 이후에도 자신의 의사에 따라 혹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가 존재한다. 일부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소위 ‘납북자’라고 하는 반면, 일부에서는 이들을 ‘전쟁시기 및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남한사회에서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납북자’ 또는 ‘전쟁시기 및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으로 소위 ‘납북자’문제에 대한 첨예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납북자’ 가족단체들과 수구·보수세력들은 ‘납북자’문제를 ‘납치’와 ‘억류’라는 비인도적 인권유린 상황으로 파악하고 남과 북 양측정부에 공히 그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 즉, ‘납북자’문제는 세계인권선언 및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등 국제인권장전에서 규정하고 있는 인권규정을 위반한 반인권적인 행위라고 하여 생사확인과 송환 등 조속한 문제해결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다른 정치·경제적 이슈가 국가적 이익에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이 문제에 적극 개입하지 않고 ‘북한’에 끌려다니기만 하는 등 자기국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는 정부의 무책임과 무능력을 비난하기도 한다. 이처럼 ‘납북자’는 ‘이산가족’들과는 달리 자기 의사에 반해 끌려가서 이산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인권유린의 피해자이고, 입북 이후에도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북한’에 ‘억류’되고 있어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들 ‘납북자’에 대한 통계는 주장하는 주체와 조사주체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정부는 대체로 전시 납북자, 전후 납북자, 국군포로 등으로 ‘납북자’를 분류하여 10만여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납북자’에 대한 통계는 정확한 실상을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한의 일방적 주장에 머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전쟁시기 및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의 문제는 한반도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필연적 결과

그러나, ‘북한’으로 가서(가게 되어) 머물고 있는(머물 수밖에 없는) 사람 모두를 ‘납북’과 ‘억류’된 사람들이라고 장담할 수만도 없다. 김귀옥 교수에 따르면, 38선 이남 남성에 대한 ‘인민의용군’ 징집과 38선 이북 남성에 대한 ‘국민방위군’ 징집처럼 남과 북에 의한 구조적·강제적 이동으로서의 납치, 남북 각 군경이 후퇴 당시 지원을 이유로 끌고 간 형태나 공작원에 의한 비계획적 납치 등의 비구조적·강제적 이동으로서의 납치는 남북 어느 한쪽에 의한 일방적인 행위가 아닌 남북 쌍방에서 서로 발생하였던 문제이다. 그리고 ‘북한’에 의한 ‘납치’와 ‘억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실제에 있어서는 자원 월북 이산가족이건, 납북 이산가족이건 대개는 ‘납북’이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이 존재하였다. 즉, 남한의 법적·사회적 연좌제에 의해 이들 한국전쟁 전후 피학살자 유족, 공작원 관련 가족, ‘납북’·‘납남’ 가족들은 그 이유를 불문하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온갖 인권침해와 차별을 겪어야만 했다. 지난 10월 24일 발표된 국정원 진실위 종합보고서는 월북자 가족, 납북귀환 어부, 일본 취업, 위장 귀순자로서 정권의 간첩죄 남용으로 피해를 본 사례를 포함하고 있다. ‘북한’에서도 ‘월남’이든 ‘납남’이든 그 이유를 불문하고 정치범수용소에 격리·수용되어 생활해야 하며, 이러한 불이익을 피하고자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숨겨야 한다고 한다.

이처럼 ‘납북’이든 ‘납남’이든 납치문제는 남북 양측에게 짐 지워진 역사의 부채인 것이다. 즉, 남북은 이들을 자기 정권의 정당성과 체제우월성을 내세우기 위한 냉전의 도구와 정당성의 기제로 사용하여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 이데올로기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강화하는데 이용하였다. 실제 1957년 제19차 국제적십자대회 때부터 남과 북은 서로 자기중심에서 상대방에게만 ‘납치’와 ‘강제’를 주장해오고 있다. 그러므로 납치문제는 단순히 행위의 수준에서 강제수단을 동원했는가, 아닌가의 인식을 넘어 한반도 전쟁과 냉전 상황에서 오는 구조적 모순에서 발생된 문제로의 인식전환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들 ‘납북자’, ‘납남자’를 지칭하는 용어도 ‘전쟁시기 및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으로 규정하여 일방에 대한 책임추궁과 용어 및 규모 등의 논란을 넘어 근원적이고 실질적인 해결방안을 찾는 것에 무게중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다만, 이러한 논리로 납치의 진실을 외면하거나 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또는 이산으로 인한 이들 가족의 고통을 감추기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근원적이고 실질적인 해결방안

이와 같이, ‘전쟁시기 및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의 문제는 단순히 일방에 의한 인권침해문제로 접근하여 이를 비난하거나 해결하려고 할 사안이 아닌, 전 세계적인 냉전과 분단, 그 결과인 한국전쟁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한반도 분단극복과 냉전해체를 통한 평화체제의 구축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이들의 인권문제는 물론, 이들과 가족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남과 북의 관련자들의 인권문제도 아울러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가족관계를 형성하는 남과 북의 관련자들은 일방에 남겨진 가족은 물론이고 정착해서 살고 있는 일방에서도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고 관계를 맺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송환’을 주장하는 것은 새로운 이산가족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현재 ‘북한’의 태도, ‘북한’ 내 상황, 새로이 형성된 가족관계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무조건적인 송환은 매우 어려운 주장이므로, 생사확인과 상봉, 자유로운 왕래, 정례적 상봉 등 현실적인 의미에서 다양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해야 할 것이다. 이들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해결하여야 할 상대방으로서의 ‘북한’의 태도를 고려해 볼 때, 이들 문제를 ‘광의의 이산가족’의 틀 속에서 접근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이들 ‘전쟁시기 및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의 문제는 지극히 인권의 현안임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 등과의 조화 속에서 근원적이고도 현실적인 인식과 접근이 요구되는 사안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남한 내 수구·보수세력들의 주장과 달리 ‘납북자’문제는 정치적?경제적 현안과 분리하여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제의 발생 및 미해결에 대한 책임 소재를 추궁하고 비난하기 보다는, 이 문제로 인해 발행한 당사자 및 가족들이 겪은 오랜 기간의 고통에 인권적 관심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이들 문제는 전 세계적인 냉전과 분단, 그 결과인 한국전쟁이라고 하는 역사적 비극 속에서 개인의 인권이 공공연하게 침해당한 것으로 ‘북한’ 일방만의 문제가 아닌 한반도 전역에서 발생한 남북 모두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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