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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소원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얼마 전 새해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소원이라... 새해가 되고 그 해에 목표로 했음 하는 것들을 새 다이어리 첫 장에 몇 자 적어본 적이 있지만, 그것도 참 오래 전 일이거든요. 소원이란 단어가 참 아득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언가 바라는 일이 성취되기 보다는 좌절되는 게 더 당연하다고 코웃음 치는 것 같은 현실과 마주하면서 무력감을 느낄 때가 참 많았어요. 슬럼프 같은 것이 활동하면서도 몇 차례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랑방에서 상임활동을 시작했던 2008년 여름, 곳곳에서 ‘투쟁’하고 ‘규탄’하는 기자회견과 집회 등의 일정들을 쫓아다니다보니 어느새 3개월이 훌쩍 가더라고요. 사랑방 활동을 해보니 어떠냐는 질문들은 절 괴롭게 했습니다. 뭔가 바삐 움직였던 것 같은데 별로 기억에 남는 게 없는 거에요. 이런 속내를 이야기하니 누군가 이렇게 말해줬어요. 적어도 1년 이상은 해봐야 뭐든 보이는 것 같다고. 어느새 5년을 사랑방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네요.

2009년 여름이었던 것 같아요. 1월 20일 용산에서 사람이 죽었지만, 누구도 그 죽음에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에서 비가 엄청 쏟아졌던 어떤 날 시청광장에서부터 청와대까지 삼보일배를 했어요. 푹 젖어서 물기 가득한 바닥에 엎드려 유족들도, 함께 하는 사람들도 온몸으로 절박함을 말하고 있는데 시청광장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막는 경찰들과 싸우며 몸이 바들바들 떨려왔습니다. 참 잔인하구나. 너무도 정당한 싸움이지만 이 힘겨운 싸움을 어떻게 이어가고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답답했어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운동을 해야겠다 생각했지만, 어떤 균열도 나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함 앞에 막혀있다는 느낌, 그래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주변에서 열심히 끈질기게 싸우고 살아가는, 다시 살아가고 싸우는 이들과 비교하면서 자격지심 같은 게 있었어요.

그 자격지심은 지금도 가끔씩 스물스물 올라와 절 붙들곤 해요. 근데 지금은 그때보다는 조금은 더 툭툭 털어 넘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잘 못해도 든든히 백업해줄 수 있는 울타리 같은 사랑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회피, 인정, 포기라는 세 단어로 저를 설명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했지만, 솔직한 말이기도 했어요. 회피를 잘하고, 인정과 포기가 빠른 제가 여전히 그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지난 경험들을 통해 배운 게 있는 것 같아요. 순간순간 회피를 하더라도 결국 마주해야 할 몫이 내게 있다는 것, 인정과 포기를 쉽게 한다고 했지만 찝찝함이 계속 날 붙들기에 어떤 고민들, 어떤 상황들을 끝까지 밀어붙여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뭐 이런 작은 깨달음을 몹쓸 습성으로 놓고 살 때가 많지만, 그런 저를 다시 곧추세워주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다시 소원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그러한 사람들에게 나 또한 있어서 다행인 사람이 되는 것이라 말하고 싶네요. 소박한 건지, 거창한 건지 모를 이 소원을 2014년의 나날을 적어갈 다이어리 첫 장에 적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