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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 내 해결’을 둘러싼 고민과 질문을 나누다

올 초부터 이어진 미투운동의 흐름 속에서 인권운동 안에서 공유된 성폭력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인권운동은 성폭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안전하다고 생각해왔었기에 사건을 접하며 여러 생각과 고민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 이야기를 꺼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어떤 침묵일지부터 헤아려보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몇몇 인권활동가들이 모여 상반기 동안 몇 차례 준비모임을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8월의 마지막 날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 내 해결’을 둘러싼 고민과 질문을 나누는 워크숍> 자리가 열려 인권운동더하기 소속단체 활동가들이 모였어요.

물론 이전에도 운동사회 내 성폭력 사건은 있었습니다만, 이전과는 ‘다른 위치’에서 고민하게 된 것 같아요. 미투운동이 제기한 일상 권력의 문제가 인권운동 내 성폭력 사건들에도 겹쳐졌습니다. 사건 해결절차를 진행해가는 단체를 넘어 인권을 기치로 함께 관계 맺고 활동하는 공동체로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성찰과 변화의 몫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위치로 거리를 뒀지만, 그 거리가 분명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사건화라는 것은 그로 인한 여파를 직간접적으로 함께 겪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 시간이 우리에게 던지는 몫이 무엇인지 함께 모여 이야기하는 게 필요했어요.

운동사회 안에서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적 해결이 강조됐었지만, 이는 일차적으로는 사건의 피해자 또는 가해자가 속한 조직의 몫으로 여겨졌던 것 같아요. 많은 단체들에서 반성폭력 내규를 만들었고,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해결을 위한 절차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매뉴얼화된 흐름도 있고, 피해자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방향성이 자리를 잡고 언어화된 것은 오랜 시간 이어져온 반성폭력 운동의 결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 내 해결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들은 여전히 많은 것 같습니다. 가해자가 속한 단체가 ‘가해 단체’로 낙인찍혀 위축되기도 하고, 2차 가해가 제기되면서 사건이 또 다른 사건으로 점화되기도 하고, 사건해결 절차가 매뉴얼로서만 형식화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성폭력 사건에서 공동체-조직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서부터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보기로 했어요. 그 역할과 책임은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 내 해결과정에서 조직/단체가 겪는 어려움을 확인하면서 구체화될 수 있다고 보고, 그 양상으로 조직과 피해자의 ‘소통’과 ‘관계맺기’에 주목하면서 고민을 정리해봤습니다. 반성폭력 운동의 성과였던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가 어떤 맥락과 문제의식에서 언어화됐던 것인지 돌아보면서 사결해결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부딪히는 어려움으로 이 키워드들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조직은 어떻게 해야 할지. 사건이 공론화되는 방식, 최근 들어 사건이 SNS를 통해 공론화되는 경향성을 살펴보면서 이를 어떻게 봐야 할지, 그리고 조직은 어떻게 소통구조를 가져가야 할지. 조직과 피해자 간 관계맺기가 어디서 어떻게 어긋나는지, 실패의 경험들을 통해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성은 어떤 것일지. 준비모임에서 먼저 풀어낸 고민들에 답이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여기에 함께 모인 활동가들이 저마다 가진 경험과 고민을 보태주었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면서 많은 분들이 어려운 주제이지만 그러므로 더더욱 ‘솔직하고 안전하게’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기대한다고 얘기해주셨거든요. 각자 경험과 고민이 다르기에 이야기가 잘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서로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면서 적어도 저는 우리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는 안전망 같은 것을 확인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를 기약하는데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로 이어집니다.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사람은 피해 이후에도 인간으로서 다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마찬가지로, 성폭력 사건을 경험한 공동체는 균열이 드러난 관계, 무너진 신뢰, 입장의 엄청난 차이, 상할 대로 상하고 지친 감정들을 다스리고 공동체를 ‘다시 만드는’(re-building) 법을 배워야만 한다.”* 워크숍 준비과정에서 참고자료를 보던 중에 접한 인상적인 문구였는데요, 사건해결을 위한 절차가 완료되는 것이 공동체적 해결의 ‘끝’은 아니라는 고민을 하던 중에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았어요. 공동체적 해결이라는 것은 사건 ‘이후’를 공동체에서 재구성해나가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가 앞으로 더 이어져야 한다는 것은 확인된 것 같아요. 논의과제가 무엇이라고 딱 정리가 되지는 않지만, 사건 과정과 그 이후 우리들에게 필요한 과제와 역량을 구체화하고 재구축해나가는 계기를 더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 전희경, <공동체 성폭력 ‘이후’ 새로운 관계를 상상하다>, 민우회 토론회 자료집(2012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