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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인 인터뷰

“인권 운동이 좀 더 많은 이들의 일상적 실천이 되길 바라며”

인권의 정치를 고민하는 진태원 님을 만났어요

너도나도 정치에 대해 말하게 되는 선거 시기에 과연 우리는 정치를 말하고 있는 걸까요? 월드컵이나 올림픽 기사가 언론을 도배하듯 선거 결과에 대한 예측과 정치인들의 말말말들로 도배되고 있을 뿐인 것은 아닐까요? 테러방지법도 … 일단 멈추고 선거 끝나면 다시 싸우자? 이렇게 복잡한 마음에 문득! ‘인권의 정치’를 말해온 진태원 님이 떠올랐답니다. 깊은 고민 나눠주신 진태원 님께 감사드려요. 

◇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진태원이라고 합니다.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및 후원인들께 인사를 드리게 돼서 반갑기도 하지만 쑥스럽기도 합니다.^^; 저는 서양철학을 전공했고, 특히 스피노자를 비롯한 서양근대철학과 현대 프랑스철학 및 사회철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 HK연구교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 ‘인권’을 사유의 주요한 열쇳말 중 하나로 삼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인권운동사랑방 후원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도 궁금합니다.

제가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프랑스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의 사상을 공부하면서부터였습니다. 저는 학부 시절 처음 발리바르의 『역사유물론 연구』나 『민주주의와 독재』 같은 책을 접하면서 그의 사상에 큰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발리바르의 책을 지금까지 4권 번역했고(『스피노자와 정치』, 『우리, 유럽의 시민들?』, 『정치체에 대한 권리』, 『폭력과 시민다움』) 지금도 두 권의 책을 더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발리바르가 지난 2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사상의 주제 중 하나가 ‘인권의 정치’라는 것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인권은 개인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권리이자 가치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정치의 핵심적인 기초라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그는 특히 평등과 자유라는 두 가지 가치가 서로 뗄 수 없게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평등자유”(equaliberty)라는 신조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현재 제 문제의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인권의 정치를 한국의 맥락에서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런 만큼 인권운동사랑방 후원은 당연한 일입니다.^^ 구체적으로 후원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약 7~8년 전에 인권연구소 창에서 개최한 세미나에 강사로 참여하면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여력이 되는 대로 조금 더 많이 후원을 하고 싶습니다.

 

◇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라는 제목으로 일련의 학술활동이 진행되고 있는데, 어떤 고민에서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주제는 제가 근무하는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의 여러 선생님들이 함께 기획하고 추진하는 공동 기획입니다. 일차적으로는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세월호 유가족들이 표현했듯이, 세월호와 더불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도 침몰하고 있다”는 자각을 민연의 여러 연구자들도 공유하고 있고, 이러한 ‘대한민국의 침몰’은 지난 70여년 간의 한국 현대사(어쩌면 그보다 훨씬 오래 된 한국 역사)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의 증상적인 표현이라는 점 역시 공감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사용하는 표현대로 하자면 그것은 해방 70년, 건국 67년의 역사 동안 ‘대한민국’이라는 정치 공동체에는 먹고사는 것 하나를 제외한다면 공동의 가치라고 할 만한 것을 실제로는 찾기 어려웠던, 따라서 ‘공적인 것’(res publica)이 부재했던 것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가 이제는 세계 10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좋아졌다고 하기는 어렵고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의 연대보다는 각자도생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로 변모된 것입니다. 이 상황은 지난 70여 년 동안 평범한 한국의 시민들이 애써 이룩해놓은 번영의 성과를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지난 1987년 이후 진행된 민주화의 과정 자체를 되돌려놓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를 그냥 지켜보았던 우리가 역시 침몰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은 그 공동체의 한 시민으로서, 그리고 인문사회과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들로서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책임의 방기라는 점이 저희가 공유하는 문제의식입니다. 이에 따라 저희는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인 시민들 스스로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를 구상하고 구현해보자는 기획을 감히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 기획은 앞으로 계속 진행할 예정이며, 가능한 한 학술활동에 그치지 않고 시민대중과 함께 하는 사회 운동으로 확장해보고 싶습니다.

 

 

◇ 최근 열린 워크숍에서 ‘정치의 조건이 부재한 가운데 어떻게 정치를 시작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셨네요. 한국사회에서 정치를 시작하기 위해 주목해야 할 지점들에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것은 위에서 말한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의 문제의식과 긴밀히 연결된 주제 같습니다. 사실 정치는 늘 우리 곁에 존재하고, 매일같이 신문방송 또는 인터넷 포털이나 SNS 등을 통해서 우리는 정치를 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늘 우리 가까이에 존재하는 이 정치가 과연 우리가 원하는 정치인가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이 들게 됩니다. 이는 참 역설적인 현상입니다.

지난 1990년대 초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난 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표방하고 그 기본 원칙과 제도, 절차를 준수한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어원상으로 보면, 민중의 권력, 시민의 권력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민주주의 국가에서, 특히 한국에서 나타나는 정치는 원래 의미의 민주주의라기보다는 소수의 힘 있는 이들끼리 즐기는 게임이 되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용어대로 하면 소수의 갑(甲), 더욱이 슈퍼갑들이 서로 권력을 공유하고, 평범한 사람들, 곧 을(乙)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정치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통로를 구조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이죠. 이 때문에 프랑스의 철학자인 자크 랑시에르는 현재의 민주주의 체제는 사실은 ‘과두제 체제’라고 부른 바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은 이것이 비극적으로 표출된 증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는 바로 이러한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개입의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기성의 정치와 다른 새로운 정치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사회를 구성하는 다수의 평범한 을들이 자신이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를 구성하는 시민들이 공동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어떤 것인지 스스로 생각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욕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위의 평범한 사람들을 보면 현실에 불만이 있고 또 현실에서 당하는 착취와 고통에 분개하면서도, 일시적으로 분노하거나 불만을 표출하면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현실의 부조리를 경험하면서도 그것을 원래 그런 것으로, 정치라는 것, 사회라는 것, 인생이라는 것을 원래 부조리하고 불평등하고 더러운 것으로 간주하곤 합니다. 이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을 부조리한 것으로 볼 수 있게 해주고, 또한 그것과 다른 식의 삶이나 정치, 사회를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공동의 이상이나 가치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도 인권 운동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인권에 담긴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가치를 지키고 그것을 우리의 공동의 가치로 세우려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 인권의 정치를 모색할 때 최근 한국 사회에 만연하는 ‘혐오’라는 현상을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길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혐오 담론이 꽤 널리 확산되는 현상 역시 앞의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작년에 군사 전문가 한 분이 저희 민연에 오셔서 강연을 하신 적이 있는데, 과거의 병영생활과 최근의 병영생활의 차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과거에 군대에서 얼차려를 줄 때에는 선임 병사가 후임 병사 전체에 대해 얼차려를 주었지만, 요즘은 내무반 병사들 전체가 특정한 한 개인을 괴롭히거나 왕따를 시키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가장 약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집단적인 모욕과 학대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 단순한 사례를 지나치게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는 그만큼 우리 사회에 경쟁과 적자생존의 논리가 확산되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누군가를 혐오한다는 것은, 그가 나와는 무관하고 또 나와 경쟁 상대인 존재라고 생각한다는 것이고, 특히 그가 나와 경쟁 상대가 되지 않을 때 내가 그를 마음 놓고 무시하거나 조롱할 수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혐오 대상이 되고 조롱과 학대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나보다 더 약하고 못난 상대방, 희생양이 될 수 있는 누군가를 계속 찾아내야 합니다.

세월호 사건에서 제가 놀란 것은, 한편으로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많은 대중들의 놀라운 공감과 애도의 능력입니다. 사실 세월호와 유사한 대형 해상 조난 사고가 이전에도 있었음에도 세월호 사건이 이처럼 중요한 정치적 사건으로 부각된 데에는 이 사건의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그들을 기억하려는 많은 대중들의 정서적 연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세월호를 둘러싼 혐오와 비난의 움직임도 상당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 생각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정서적 유대의 힘을 어떻게 공동의 가치를 형성하기 위한 동력으로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생각과 기획, 실천입니다.

 

 

◇ 격변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과 후원인들이 서로 응원할 수 있도록 한 마디 전해주세요~

우리 사회의 많은 활동가들과 마찬가지로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분들에게 우리가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 워크숍에 참석해서 류은숙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에 인권활동가들이 마치 동네축구하듯 활동한다는 말이 기억납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모두 우르르 여기저기로 바쁘게 몰려간다는 뜻이죠. 그만큼 인력과 재원, 여건이 열악하다는 이야기로 들었습니다. 의례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인권운동이 소수의 활동가들의 운동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실천이 되기를 바랍니다. 늘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