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듣고 싶은 이야기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사이에서

11월이라, 벌써 올해도 다가는구나 싶은 데다 날씨도 추워지니 마음도 몸도 녹초가 됩니다. 그런데 상임활동가 편지를 쓰려고 하니 도무지 뭘 써야 할지 모르겠네요. 요즘의 내 상태? 아니면 최근 활동? 후원인들과 활동가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하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마음의 갈피가 잡히지 않네요. 아마도 그건 ‘상임활동가’로서 ‘편지’에 맞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겠죠. (물론 아무도 저에게 그런 부담을 주지는 않았습니다만^^)

해야 하는 이야기?

올해는 제가 사랑방에서 월담 코디를 맡아서 몸과 마음이 분주했던 한 해였어요. 월담이 안산에서 더 많은 비정규 영세사업장 노동자들과 만날 수 있기 위해선 더 많은 상상력과 발품이 필요했으니까요. 그래서 반월시화공단 인권침해 심층면접 조사도 월담이 기획사업으로 10월과 11월에 걸쳐서 하고 있어요. 그리고 작년에 이어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대안을 만들어가는 활동을 합니다. 정부정책 자료도 많이 읽어야 분석을 할 수 있어 할 일이 조금 많았어요. 지금은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발의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고, 안전대안팀도 416연대의 안전사회위원회로 활동하고 있어요.

게다가 작년에 이어 ‘KT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에 이어 ‘사무금융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를 하고 있어요. KT보다 사무금융노조가 규모도 크고 괴롭힌 정도나 양상이 다르다 보니 조사활동이 쉽지 않아 보고서 작업이 차일피일 미루다가 안식월인 11월에 최종 보고서를 작성하기로 했어요. 그래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국가인권위 관련 일은 많지 않네요. 물론 우리가 그토록 노력했던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후보인선위원회를 새정치민주연합과 함께 만들었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쳐 추천한 인권위원 후보를 국회가 부결시키는 황당한 경험으로 저를 포함한 인권활동가들은 충격이 크답니다. 그나마 올해는 농성을 하지 않고 넘어가 다행이라 여기며 2015년을 보내고 있어요.

요즘 이렇게 살아요~

요즘 제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아요. 9월에 교통사고를 당한 후 운동을 두 달 이상 중단해서인지, 생활비가 들어가는 살림살이 변동이 많아서인지 일에 의욕이 없어요. 아니면 가을을 타는 것일까요? 특히 안식월이지만 이어지는 사업이 마무리단계라 해야 할 일이 중요해 집에서 쉬는 게 아니라 일을 하고 있다 보니 마음이 더 좋지 않은 거 같아요. 하여간 제 상태가 별로 안 좋아서 ‘환기’를 시키고 싶은데 여력이 나지를 않네요. 그래도 안식월이니 7시간 이상은 자고 운동은 주 2회 하려고 합니다. 가진 게 몸뚱이밖에 없는 활동가에게 건강은 정말 소중하니까요.

듣고 싶은 이야기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사이

그런데 정말 후원인들과 다른 활동가들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걸까요? 사실 모릅니다. 그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네요. 사랑방이 그동안 후원인들과 관계를 구체적으로 맺지 못한 탓이겠죠. 활동가들이 활동 외에 서로의 삶에 대해 깊이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탓이겠지요. 그래서 공통된 것이 무엇인지 아직 어렴풋할 뿐이랍니다.

어렴풋하나마 제가 찾은 공통점은 우리는 모두 타인에 대한 무관심만으로 유지되는 세상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존재가 아닐까 싶네요. 어떤 식이든 고통받는 사람들과 손을 잡겠다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겠지요. 바쁜 일상생활 중에도 사랑방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봐 주는 일, 사랑방이 전화 한 통 없지만, 비인간적 사회와 맞서 싸우라며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후원금을 내주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아니까요. 저희에게 손 내밀었을 때의 그 용기와 따뜻함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런데도 후원인을 추천해달라며 떼를 쓰지만 잘 응해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주변에 사랑방 후원인 좀 되어주시라고 해 주세요^^)

좋은 세상을 만들 거라는 약속은 못 드리지만,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걸음은 멈추지 않을 거라는 약속은 드립니다. 그게 여러분의 마음을 잇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이렇게 연결된 존재들입니다. 모두들 고맙고 감사합니다.

2015년 11월 안식월에 명숙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