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오름 > 웰컴투, 여덟살 구역

[웰컴투, 여덟살 구역] 편견이 없을 거라는 편견

책언니를 처음 시작할 무렵 나는 머리를 짧게 잘랐다. 몇 년간 귀찮아서 기르던 머리를 귀가 드러날 정도로 짧게 잘라버렸다. 내 머리를 잘라주던 미용실 언니는 계속해서 이 아까운 머리를 왜 자르냐며 슬퍼했다. 소년 같은 머리를 원한다는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꽤 만족했다. 주변의 또래 친구들은 대체로 잘 어울린다거나 괜찮다고 말했지만, 청소년들은 나에게 왜 그런 짓을 했냐며 혀를 찼다. 여자는 긴 머리라는 공식이 얼마나 확고한지 그때 처음 알았다. 이 머리가 책언니를 하는 데는 별로 좋은 효과를 내진 못 했다. 책언니에서 만난 여덟 살들은 모두 나에게 못생겼다며 손가락질을 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머리가 남자 같다며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때면 ‘내 머리가 어때서’ 하고 당당히 외쳤지만, 그래도 긴 머리가 좋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쩡열은 남자야, 여자야?

나의 성별을 의심했던 사람들과 함께~

▲ 나의 성별을 의심했던 사람들과 함께~


짧은 머리 때문에 생긴 이야기가 한 학기 동안 계속되기도 했다. 여덟 살이었던 지우(가명)는 내가 도착하면 달려와서 나를 살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쩡열은 남자야, 여자야?”
처음에는 깔깔 웃으며 ‘나 여자야!’ 하고 말했다. 그러자 나에게 되물었다.
“근데 왜 머리가 짧아?”
“머리가 짧은 여자도 있어~”
“아니야, 이상해!"
내가 여잔 건 알고 있지만 해보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질문은 매주 반복됐다.
“쩡열은 남자야, 여자야?”
나는 대답을 매번 바꿨다. 남자라고 대답하니 의심하는 눈빛으로 진짜냐고 물었다. 그래서 사실 여자라고 말하면 ‘아니잖아!’ 라고 소리쳤다. 처음부터 ‘나는 여자다!’ 라고 말하면 ‘머리가 짧잖아!’ 라는 말이 돌아왔고, 치마를 입고 있던 내가 ‘나 치마 입었는데?’ 말하니 갑자기 엄청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
“남자도 치마 입을 수 있어!”
여자는 죽어도 머리가 짧으면 이상하지만 남자는 치마를 입을 수 있다는 이 갑작스러운 이야기는 뭘까. 그래서 털이 많은 내 팔을 보여주며 ‘맞아. 난 남자야. 털이 많잖아.’ 하고 말했더니 의심하는 눈초리로 돌아갔다. 난 그때까지도 지우의 놀이라고 생각했는데 지우의 반복되는 질문에 나의 성별에 대한 의문이 진지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인형에 기대앉아있는데 옆에 앉아있던 다현이가 갑자기 당황한 듯 입을 가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곤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내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쩡열, 왜 가슴이 있어…? 진짜 여자야?”
당황스럽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던 이 시리즈의 마지막 사건은 학기가 끝나고 학부모들과의 간담회였다.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각보다 강하더라며 이 일들을 이야기하니 한 엄마가 말했다.
“우리 애가 차를 타고 가는데 저한테 묻더라고요. ‘엄마, 머리가 짧은 여자도 있어?’ 마침 옆차에 아주머니가 짧은 숏컷에 화장을 진하게 하고 귀걸이를 하고 지나가길래 ‘그럼, 저 아줌마 봐 봐. 여잔데 머리가 짧잖아.’ 하니 ‘그러게.’ 하더라고요.”
그런 의문을 가졌는지도 몰랐던 이마저 그랬다니. 다들 진심으로 궁금해할 줄 몰랐다. 나의 성별이 한 학기 동안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였다니.

물들인다고 물들일 수 있을 리가

형이 둘이나 있던 지우는 자신이 남자답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많아 했다. 남자와 여자의 경계가 분명하고, 남자/여자의 놀이, 남자/여자의 모습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했다. 여자는 이래야 하고, 남자는 이래야만 하는 지우의 눈에는 나는 어디에 넣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수지는 예쁘고 좋은 것, 오나미는 못생기고 웃긴 것’
‘뚱뚱하면 돼지, 돼지는 욕’
여덟 살의 머리에 깊숙하게 박힌 생각들은 이밖에도 많았다. 계속 ‘넌 오나미같이 생겼거든!’ 하며 깔깔거리는 애들에게 ‘왜 오나미는 못생겼다고 생각하냐?’ 물으니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텔레비전에서 오나미 나오면 못생겼다고 놀리잖아.”

처음 여덟 살에 대해서 생각할 때 학교에서 제도교육과 사회화의 과정을 밟기 전이라면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적지 않을까 싶었던 건 착각이었다. 세상은 툭하면 ‘순수한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마음’을 찾곤 한다. 하지만 결코 아동의 생각과 태도는 세상이 말하는 기준에서 자유롭지 않다. 태어나서 세상을 만날 때마다 주변 어른들이 됐건, 미디어가 되었건 같은 기준을 가지고 말해왔다. 사람의 생각은 세상과 무관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어떻게든 세계와 교류하며 나의 생각은 변하고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너흰 아직 어리니까 그런 거 모르겠지?’ 하는 이야기야말로 참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8년간 텔레비전과 만화, 어른들의 말을 통해 접했던 그 말과 태도, 생각들에 무지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책언니를 하며 교육이라는 게 대체 뭘까 하는 고민을 할 때,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걸 이렇게 이야기해도 되는 걸까? 혹시 또 다른 주입이 되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헷갈렸다.
나도 모르게 여덟 살을 백지라고, 내가 물들이면 물들 수 있는 하얀 종이인 양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사실 이들의 안에는 이미 어떤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다. 그 세계관이 만들어지는 동안 약한 사람보단 강한 사람에게 유리한, 누군가를 차별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훨씬 더 많이 제시되어 왔다. 이미 잔뜩 편향된 이야기만을 접할 수 있었을 때, 그에 맞서는 이야기를 강제로 집어넣는 게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대신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할 기회를 조금이라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책언니가 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세상에서 낯선 이야기, 이상한 이야기를 나누고 질문을 던져도 그들이 쉽게 받아들이게 되진 않는다. 결국, 판단과 이해 속에서 자신들의 것을 선택하게 될 테니까.
그럼에도 바라는 것은 있다. 자신을, 옆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세계관이 아닌 나/우리에게 유리한 세계관을 선택하게 되길 바란다. 당신들이 백지가 아니기 때문에, 이미 우리가 하는 이야기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진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책언니는 더 열심히 이야기하고, 관계를 통해 우리가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보여주려고 애쓰는 수밖에 없다. 혹시나 우리의 이야기가 맘에 들어서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길 바라며 말이다.
덧붙임

쩡열 님은 '교육공동체 나다'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