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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쌀 관세율은 수입 쌀 전면 개방이다

[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한국 사회는 ‘안전’이 화두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한국사회를 어떻게 만들어야할지는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평소 먹는 것을 좋아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나에게 안전한 세상은 ‘안전하게 먹을 권리’와 무엇보다도 연결된다. 도시에 사는 내가 안전한 먹거리를 얻기 위해서는 농민들이 농사를 지어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하고, 농민들에게 적절한 소득이 분배되며, 도시에 사는 나에게도 적절한 가격으로 먹거리를 구입할 수 있는 분배구조가 필요하다. 이런 순환을 통해 농민은 자신의 노동으로 일구어온 생산물로 생존을 유지할 수 있고 그래야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다. 국가는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지난 9월 18일 정부는 쌀 관세화 및 쌀산업발전대책 관계부처 합동발표문을 통해 수입쌀 관세율을 513%로 정하고 특별긴급과세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쌀 관세율을 발표한 것은 사실상 쌀을 전면적으로 국내외 ‘무역시장’ 질서에 ‘상품’으로 던지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수입쌀에 대해 513%라는 관세율을 매기고 필요에 따라서 특별긴급과세를 매기면 수입쌀로부터 국내산 쌀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논리이다. 아울러 정부는 영세하고 노령화된 농업을 번듯한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2014년 9월 정부가 이토록 ‘긴급하게’ 혹은 ‘급작스럽게’ 쌀을 시장에 던져버린 이유는 뭘까.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과정에서 한국정부는 쌀 시장 개방을 2004년까지 유예 받아 2004년 재협상하기로 하였다. 2004년 한국정부는 쌀 재협상을 통해 쌀관세화를 다시 10년동안 유예했다. 10년이 지난 2014년 현재, 한국정부는 다시 한번 이 문제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상대국들과 논의할 시점에 서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마치 쌀을 ‘자동관세화 해야 하는 것’으로 전제하고, 쌀 수입 개방을 서두르고 있다. 2015년부터 수입쌀 전면개방을 위해 정부는 올해 9월까지 세계무역기구(WTO)에 쌀 관세율 513%을 통보하고, 협상 후 10월 국회를 거쳐 내년에 시행하겠다고 한다. 참으로 속전속결이다.

쌀 관세화에 숨은 의도

정부는 ‘쌀 관세화율’로 포장하고 있지만, 이러한 조치는 사실상 ‘수입쌀 전면개방’이다. 수입쌀 전면개방은 현재 한반도 이남에서 벼농사를 경작하고 있는 농민들과 쌀을 주식으로 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존과 연결된 문제이다. ‘수입쌀 전면개방’이 가지는 함의는 그나마 쌀자급률 80%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의 벼농사 기반이 위태로울 것이란 전망이고 결국 농민들이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는 환경으로 내몰린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권리는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의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농촌빈곤율 9.7%는 도시빈곤율 3~4%보다 2배 이상 높다. 2011년 기준으로 농민들은 평균 3,014만8000원의 빚을 안고 있다. 빚을 내어 농사를 짓고 또 빚을 진다.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조건에서 누가 더 이상 농사를 지을까?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조건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스스로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의미한다. 9월 18일 정부의 쌀 관세화 발표이후 쌀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이제 곧 햅쌀이 나오는데 쌀 가격 하락으로 농민들의 생존이 더 위협받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은 아닌지. 쌀시장 전면 개방 논의가 공교롭게도 갑오농민혁명 120년을 맞이하는 해에 이루어지다니. 역사의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사진 출처] 전국농민회총연맹

▲ [사진 출처] 전국농민회총연맹


식량은 공산품과 다르다

2007년~2008년 세계적인 곡물파동, 2010년 국내 배추파동이 있었다.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는 2030년부터 본격적인 식량위기가 올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국내 식량자급률 24%. 쌀을 제외한 밀, 옥수수, 콩 등 한국사회는 대부분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2011년에는 쌀 자급율도 80%로 떨어졌다. 한국은 국제개발협력기구(OECD) 중에서도 식량자급율이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한다. 식량자급율이 떨어지면 핸드폰이나 자동차 팔아서 식량을 사오면 된다는 관료들의 생각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불러일으켰다. 식량은 공산품과 동등한 생산물이 될 수 없다. 시장에서 가격은 언제든 변화무쌍하다. 그것이 곡물이라고 예외가 있지는 않다. 지금 정부는 수입쌀 관세율로 513%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협상과정에서 언제든 변할 수밖에 없다. 세계 그리고 국내 곡물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초국적기업은 이윤을 위해라면 무슨 짓이든 못할 것이 없다. 이런 행태를 수없이 봐왔어도 아직 우리는 돈의 힘에 농락당할 준비를 하고 있나보다.

현재 이미 식당 등에서 수입쌀이 쓰이고 있고, 쌀 시장 개방으로 우리는 '먹고 싶은' 쌀을 먹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쌀'을 먹게 될 것 같다. 아마도 자주 가는 식당에서 버젓이 ‘중국산 쌀, 미국산 쌀’이라는 안내문을 쉽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주위에 이미 수입산 고기들이 불티나게 판매되고 넘쳐나는 것처럼, 선택을 가정하지만, 실재로는 시장의 힘이 내가 지금 먹는 한끼 식사에 고스란히 담기게 된다. 현재 쌀 시장 개방을 유예하는 조건으로 들여오는 의무수입 쌀이 주식용과 가공용을 통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식탁을 점령하고 있다면, 전면적인 쌀 시장개방은 점령의 양과 질이 넓고 깊어질 것 같다. 생존을 위해 먹는 밥의 변화는 뿌리부터 나의 삶을 흔들 것이다. 시장의 법칙에 따라 사람들은 싼 가격의 쌀을 먹을 것이고 그것은 나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지금으로선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통제력이라는 것이 국가정책을 벗어나 강대국이 힘의 우위에 놓이고 초국적 자본의 이해에 좌지우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분배할 수 있는 구조는 농민의 생존이 우선으로 보장되는 정책과 구조를 통해서 가능하다. 그래야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생존을 안전하게 이어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이 별개 있겠는가! 농민들이 생존을 이어갈 수 있도록 농사지을 수 있게 하면 되는데, 지금 정부와 여당은 앞장서서 쌀 수입 개방을 서두른다. 게다가 직접적인 당사자인 농민은 물론이고 국민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야기조차 꺼내지 않은 채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형국이다. 농민들은 쌀 관세유예 조치가 아직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호소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식탁의 안전을 묻고 있다.

공공재는 시장의 질서와 돈의 힘으로부터 가능한 멀리 있어야

시장과 돈에 휘둘리지 않고 인간의 존엄과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아프면 치료받고, 배고프지 않고, 적절한 교육과 주거가 보장되는 사회질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우리가 식량, 의료, 교육, 주거에 관해 미약하나마 공공재라고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가 쌀을 전량 수매하고, 전 국민 의료보험을 시행하고, 초중등 의무교육을 책임지며 부동산 투기 근절을 공언해왔던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이제 정부는 의료영리화, 주택담보증권 활성화(가계대출), 교육시장 활성화(개방, 서열화)에 이어 쌀시장 개방으로 삶의 근간을 시장에게 모두 맡겨버리려고 한다. 우리의 삶을 보듬고 있는 의료, 식량, 주거, 교육 등 공공재는 시장의 질서와 돈의 힘으로부터 가능한 멀리 있는 것이 좋다. 그래야 지구기후변화가 급변한 시대에 글로벌화된 자본의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삶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덧붙임

최은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