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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잡지 않으려고 ‘각’을 세운다

감옥에서 마주친 국가주의와 군사주의

12월 1일 WRI(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가 정한 평화수감자의 날을 맞아서 많은 분들이 병역거부자인 내게 편지를 써주셨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외국에서도 여러 통이 왔는데, 그쪽에서 늦게 부친 건지 어떤 이유에선지 1월이 되어서야 받게 된 편지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전쟁과 군사주의에 맞서는 활동을 베트남전 때부터 해왔다는 뉴욕 사는 분의 카드였는데, 거기에 답장을 쓰다가 무심결에 하소연 비슷한 얘길 써버렸다. "한국은 (남한뿐 아니라 북한도 마찬가지일 텐데), 국가주의와 군사주의가 아주 일반적이고 대중적입니다. 한국 감옥도 그렇습니다. ㅜㅜ" (영어로 쓴 거라서 의미가 잘 전해질지는 확신할 수 없다.)

병역거부로 감옥생활이 9개월째다. 서울구치소에 처음 들어갔다가 여주교도소로 보내져서 6개월 좀 넘게 종이봉투 만드는 일을 했고, 이번에 '식품조리' 직업훈련에 선정돼서 서울 남부교도소로 다시 이감을 오게 됐다. 그런데 요즘 부쩍 짜증이 머리꼭대기를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듯한 기분이다. 낯선 환경에 낯선 사람들을 접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전체 형기 1년 6개월 중 반 정도를 넘기고 있는 시점이라는 것도 원인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것 이상으로, 이 교도소가 훈련생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날 짜증나게 하는 원인인 것 같다.

제복을 입었으니 거수경례를 하라고?

1월 4일 직업훈련생 입교식을 했다. 교도소 측에서는 훈련생 수용자들에게 소장에게 인사할 때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도 거수경례를 하도록 시켰다. 뭔 거수경례인지 절로 눈썹이 찌푸려졌다. 직원은 "여러분이 제복을 입고 있으니까..." 라는 이유를 댔는데,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다 거수경례를 하는 건 아니기에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였다. 서울구치소나 여주교도소에선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고 말이다. 소장이나 간부들 중 군사문화를 애호하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 등을 할 때 언제나 그랬듯 꼼짝도 않고 거부를 하고 있었기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혹시 직원이 뭐라고 하면 문제제기를 하고 말리라 다짐했다.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지적하는 직원은 없었다.

일과 시작 전 확인하는 나라 사랑?

하나 더 내 짜증지수를 매일같이 올려주는 게 있다. 아마도 직업훈련생들만 하는 것 같은데, 교도소에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항상 ‘애국가 제창’을 시킨다. 나를 포함하여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가두는 나라가 전혀 사랑스러울 리 없는 나는 물론 입을 굳게 다문다. 애국가를 부르는 수용자들도 부르길 즐기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귀찮지만 시키니까 한다는 것뿐이다. 매일같이 애국가 제창을 시키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저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 같은 군사독재 정부 때를 연상시키는 국가주의적, 군사주의적 풍습인 것 같다.

이불은 이불일 뿐, 각은 왜 잡나?

또한, 계속 이해도 안 가고 불쾌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불 갤 때 “각을 잡아라.”라고 하는 것이다. 감옥에선 이불을 갠 후 감옥에서 지급한 파란 담요로 덮어 정리하도록 하고 있다. 거기까지는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그렇게 담요를 덮을 때 각을 잡으라고 지시하는 것이었다. 네모 반듯하게, 직각으로 ‘모서리’가 생기게 하란 거였다. 대체 왜? 사실 이불은 개면 끝 부분은 둥글둥글하기 마련이고, 그 위를 담요로 감싸면 둥그스름해지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놈의 ‘각’을 만들어야 한다니 수용자들은 두꺼운 박스 종이를 넣어서 ‘각’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방에 있는 탁자를 넣으라고 조언까지 한다. 깔끔하고 편리한 생활을 위해 정리정돈을 하는 게 아니라, 외관을 위해 더 지저분하고 불편하게 박스 종이니 탁자니 넣으니 그야말로 심각한 본말전도다.

남부교도소는 이불 각 잡으라고 유난 떠는 게 (훈련생들에게만 그러는지 알 수 없으나) 더 심하다. 그걸로 경고를 주거나 징벌을 받을 수 있다고 협박한다. 며칠 전에는 10여 명 이상이 그 일로 경고를 받았다. 이불을 한구석에 잘 개어서 담요로 잘 덮어놔도 둥그스름하고 좀 비뚤어졌단 게 경고를 주는 이유의 전부다. 이렇게 이불에 각 잡으라고 하는 것도 도무지 합리적 이유를 찾아볼 수 없는 군사주의 문화로 보인다. 이불이야 가지런히 개면 그만이지 이불이 무슨 조형작품도 아니고 웬 각 타령이란 말인가? 그런 걸로 경고를 주고 징벌을 줄 수 있다니 이 무슨 해괴한 행정이란 말인가? 형 집행법과 그 시행령, 시행규칙 등에서 징벌 관련 조항을 샅샅이 뒤져봐도 이 사안에 적용될 수 있는 건 “교도관의 직무상 지시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하는 행위”라는 포괄적인 조항 말곤 없다. 이불 각 잡으란 게 교도관의 직무상 지시라면, 한국 교도소의 직무란 게 대체 뭔지 심각한 회의가 들 지경이다.

'각‘ 잡지 않기 위해 ’각‘을 세워야

10대 때부터 내게 심어져 당연한 것인 양 존재하던 국가주의와 군사주의를 버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다 보니 국기에 대한 경례가 끔찍해졌고, 별 목적 없이 줄 맞춰서는 훈련들이 싫어졌다. 그런 국가주의와 군사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병역거부를 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감옥에서도 국가주의와 군사주의를 피할 수가 없다. 매일 애국가 제창이니 각 잡기니 참 쓸데없는 짓들이 내 삶을 위협해온다. 남부교도소에선 특히 직업훈련생 ‘군기’를 잡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훈련생이라고 특별히 ‘군기 잡혀야’ 할 이유도 모르겠고, 애국가 제창, 거수경례, 이불 각 잡기 그런 것들이 직업훈련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국가주의와 군사주의는 아마 감옥을 나간 뒤에도 내내 마주치게 될 것이다. 내가 만나본 적도 없는 뉴욕사람에게 투덜거렸듯이 한국사회는 국가주의와 군사주의가 아주 일반적이고 대중적이니까.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나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거기에 ‘각’을 세우는 수밖에 없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부터 말이다. 이렇게 기록하는 일 하나하나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이다.
덧붙임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이고, 병역거부로 현재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수감 중입니다. (지지와 응원 편지를 보내실 분은_ 서울시 구로구 금천우체국 사서함 165호 489번 유윤종_ cafe.daum.net/gongh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