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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아의 인권이야기] 쪽방과 죽음 사이의 간격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 지난 8월 나는 한 쪽방 주민에게 서명을 부탁했는데 그 쪽방 주민이 적은 글이다. 그는 내가 잘 알고 지내는 이웃이며 내가 ‘영창이 형’이라 부르기도 했다. 나는 그 당시 이 글을 그냥 지나쳤다. 자주 보는 이웃 주민이기도 했고... 영창이 형은 이 글귀를 적은지 꼭 한 달 후 병원에 입원을 했고 2주 후 폐결핵으로 돌아가셨다. 얼마 전 나는 우연히 이 글귀를 발견하고는 죽기 한 달 전부터 영창이 형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아셨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미안하고 안타까운 맘이 들었다.


40대 젊은 나이, 술을 몹시 좋아했지만, 성격이 밝아 싫어하는 주민이 없었다. 동네 공원에 가면 형이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술에 몹시 취해 털털하게 웃던 모습도 기억난다. 형은 몸이 마른 편이였지만 어느 날부턴가 더욱 말라가 병원에 가기 직전에는 뼈밖에 없을 정도가 되었다. 어느 날 술을 먹고 있는 형에게 ‘몸이 아픈 것 같은데 병원 가야 하지 않냐’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형은 병원 가기를 거절했었다. ‘자기는 죽을 병이라 병원에 가도 소용없다.’ 하시며. 이웃의 얘기로는 오랫동안 밥도 전혀 먹지 않고 술만 먹었다고 한다. 나중에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때를 놓친 상황이었고 그렇게 돌아가셨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 라는 형의 말은 누군가에게 하는 호소라기보다는 그냥 객관적인 자기 상태를 얘기하는 말일지 모른다. 죽어가고 있는 자신의 상태. 이런 자신의 상태를 얘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얘기한들 해결해 줄 이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냥 맞이해야 하는 죽음이었을 것이다.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외로이 맞이한다는 것. 아직 어린 나로서는 그게 어떤 기분일지 이해하긴 힘들다.

여기서 죽음은 흔한 일이다.

이것이 쪽방 주민의 죽음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갑작스러운 게 아니라 죽음이 자신들의 눈앞에 보이고 그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 지난 한 달 동안만 해도 한 주민이 간암으로 돌아가셨고 또 얼마 후 그 건물 위층 한 주민이 고독사로 발견됐다. 쪽방에서의 고독사. 쪽방 안에서 외로이 누구에게 도움도 청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고서 며칠이 지난 후 이웃 주민들이 악취가 나서 발견되는 안타까운 죽음. 고독사하신 이 주민도 마찬가지였다. 쪽방촌에서도 아무하고도 대화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회와 가족과 단절하고 쪽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셨다. 어느 날 복지관 노인 돌보미가 찾아와 문을 열었더니 피를 토하고 죽어 계셨다. 안타까운 죽음이다. 하지만 이런 죽음이 너무나도 흔히 일어나는 동네이다. 그래서 주민들도 크게 놀라지도 않는다.


실제로 2006년~2010년 서울시의 사망자 연령대 비율을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동자동 쪽방촌의 사망 나이는 60대 안팎이 매우 높게 나타나며 사망률도 부자동네보다 2배나 높은 걸로 나타난다. 또한, 동자동 쪽방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건강권 실태조사를 보면 최근 1년 동안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61.5%가 그렇다고 답했으며, 이 중 21.9%는 최근 1년 동안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자살을 생각했다고 응답한 주민 5명 중 1명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또한, 죽음에 대해 그다지 거부감이 없다고 응답한 주민이 77.8%이다. 이렇듯 쪽방 주민에게 죽음은 단지 이웃 쪽방 주민의 문제만도 아니다. 쪽방 주민 자신과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어 거리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 정도의 거리에 ‘죽음’이 있다. 이처럼 죽음과의 거리감이 없거나 적은 것은 빈곤 그리고 빈곤이 만든 질병들, 알콜릭, 심리적 불안, 사회적 단절 등과 관련되며 아마도 건강하게 살 권리뿐만 아니라 삶의 권리 목록들 모두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쪽방촌에 작은 빈소를 차리다.

영창이 형은 돌아가신 이후에도 살았을 때 가족과의 단절을 경험했듯이 다시 한 번 가족과의 단절을 경험했다. 영창이 형이 돌아가셨지만 그를 찾아오는 가족은 없었다. 이런 경우 무연고 처리되어 장례도 못 치르고 시신은 몇 달 동안 냉동고에 있어야 한다. 그 후에도 고인의 가족들이 끝내 찾아오지 않으면 시신은 화장터로 가게 된다. 형이 돌아가시고 형과 친분 있는 주민들은 안절부절했다. 가족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인데, 우리라도 장례를 치러줘야 하지 않느냐며. 이리저리 알아봤다. 그러나 가족이 없는 한, 병원에서 공식적 장례를 치를 순 없기에 쪽방촌 가운데 있는 공원에 임시적으로 분향소를 차렸다. 영정사진이 필요해 동네행사 사진들을 다 뒤져서 영창이 형이 주민노래자랑에서 춤추고 있는 사진의 얼굴을 확대해 만들고 때마침 얼마 전 들어온 후원물품 중 제기가 있어 과일과 음식을 장만해 준비하고 손님 대접할 육개장을 끊이고 고기도 준비하고. 그렇게 조촐한 하루짜리 장례를 열었다. 쪽방 주민들이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빌고 서로를 위로했다.
이런 죽음은 비단 이 작은 동자동 쪽방촌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서울에 있는 전국의 쪽방촌에서, 홀로 외로이 사는 독거노인, 단신가구들의 삶이 있는 곳곳마다 그리고 거리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노숙의 현장에서 지금도 아무런 대책 없이 외로이 안타까운 죽음은 이어지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 글을 마무리할 수 없다. 나는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라는 결론의 글을 적으려 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중에 다시 하나의 부고를 들었다.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쪽방 주민 한 분의 부고이다. 50대로, 알콜릭이었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매일 골골 되었지만 아픈 데는 없다며 웃으며 얘기하시던 주민이었다. 더 얼마나 많은 죽음과 마주쳐야 이 외롭고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먹먹하기만 하다.
덧붙임

슈아 님은 동자동 사랑방 사무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