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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 유의선의 인권이야기 ◑ 한 소녀의 죽음과 빈곤


한 소녀가 생계를 비관하여 자살했다. 거리에서 객사한 아버지와 이름도 제대로 알 수 없는 병으로 이병원 저병원을 떠돌다가 아예 치료를 포기한 어머니, 그리고 어린 두 동생과 살았던 그녀는 '하고싶은 것은 많으나 어떠한 희망도 없다'며 유서를 남겼다. 이 열 여섯 살 소녀의 죽음과 그녀의 가족은 우리사회 빈곤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노숙으로 인한 죽음, 4천 만원이 넘는 빚,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의료의 문제, 교육의 문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권의 문제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녀의 유서처럼 어떠한 미래도 꿈꿀 수 없는 상황이 현재 우리사회의 모습이다. 그녀 이외에도 3월에만 수많은 이들이 생계를 비관하여 목숨을 끊었다. 대부분은 신용불량 문제와 실업으로 인한 고통으로 자살한 가장들이었다. 이들의 죽음은 개인의 무능력이나 나약함 때문이 아니기에 우리는 이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단지 복지제도나 대책의 부족이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일까?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의 수급권 가구였던 소녀의 가족은 한 달에 79만의 현금급여와 교육비를 지급 받고 있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입학금도 없다'고 썼지만, 엄밀히 따지면 수급자 가구 자녀의 입학금과 수업료는 모두 지급되고 있었다. 정부도 안타까운 일이나 제도상으로는 제공할 수 있는 것을 제공했다는 입장이다. 빈곤을 하나 하나의 현상과 이와 관련된 제도만의 문제로 국한시켜 버리기엔 그녀의 절망은 더욱 깊었던 것 같다. 많은 빈곤가정들의 공통적인 문제는 교육비의 부족보다 교육받아서 무엇하겠냐는 절망감이며, 폭력과 무관심 속에서의 가족의 파괴와 삶의 곳곳에서 소외되어 존재감 마저 상실하게 된 상황이다.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찾기 어려운 상황, 이를 벗어날 수 있는 어떠한 희망도 부재한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소녀의 죽음을 통해 대량실업시기의 또 다른 죽음을 떠올렸다. 2000년 3월 즈음, 동대문야구장 공중 전화 부스 옆 쓰레기 더미에 덮여 있던 한 노숙자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 보름 동안 쓰레기더미에 방치되었던 주검의 얼굴과 살점은 쥐들이 갉아먹어 대부분 뜯겨 나간 상태였다. 중3 소녀의 죽음과 노숙인의 죽음이 연결되어 떠오른 것은, 죽음으로 내몰리고 외면되고 방치되는 야만적인 상황에 대한 동일함 때문일 것이다.

생계형 자살이 잇달아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도 정부는 의도적인 외면과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빈곤의 심각성을 인정하면서도, '경제의 어려움'을 강조하며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는 이들의 문제를 외면하는 상황은 이미 이들을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반증한다. 철저하게 가난한 이들을 배제하는 구조 속에서 어떠한 제도도 이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되찾게 할 수는 없다.

도시에서만 하루에 3명 꼴로 생계형 자살이 이어지는 극단적인 상황을 '무능력'의 문제로 치부하며 자본의 구조가 낳은 폭력의 참혹함을 참혹함으로 느끼지 조차 못하는 사회.

매월 20일은 수급권자에게 생계급여가 지급되는 날이다. 4인 가구 평균 30만원도 안 되는 금액을 '권리'로 받아든 이들은 또 어떤 생각을 할까.

◎유의선 님은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준) 사무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