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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아의 인권이야기] 쪽방촌 : ‘관계’없는 사람들의 ‘관계’맺기

단절

쪽방에 사는 60%가량의 주민이 복지수급자(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권자)이듯 한 쪽방 주민 김씨도 수급자였다. 그는 몸이 좋지 못해 40대임에도 수급을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복지수급에서 탈락되었다. 그에게는 전혀 연락조차 하지 않는 가족이 있었는데, 그 가족의 재산이 증가하여 복지수급에서 탈락된 것이다. 그는 당황스러웠다. 몸이 아파 일을 할 수조차 없는데, 갑작스러운 수급탈락. 가족에 의해 수급이 탈락되면서 가족과 다시 연락이 되었다. 하지만 가족과 연락한다고 해서 가족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족과 만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수급탈락으로 인해 더욱 힘겨워졌을 뿐이다. 이런 그가 수급을 다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가족단절’을 증명하는 길밖에 없다. 하지만 수급탈락으로 다시 가족과 연락하게 된 상황에서 (실제로는 가족과 단절되어 있음에도) ‘가족단절’을 증명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많은 쪽방 주민들이 가족단절의 상황에 놓여 있다. 가족과 전혀 왕래가 없을 뿐 아니라 죽어서도 가족들이 외면하여 ‘무연고자’로 화장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쪽방 주민들은 가족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조차 다른 집단에 비해 매우 적다. 이로 인해 심리적, 물질적으로 지지할 관계망이 부재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나마 쪽방 주민이 맺는 관계 중에 가장 접촉빈도가 높은 것은 쪽방 이웃으로 ‘거의 매일 만난다’가 40%에 이른다. 하지만 이 쪽방 주민간의 관계 역시 정서적, 심리적 도움은 될 수 있어도 실질적, 물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관계는 아니다.

가족 혹은 사회와의 관계 단절은 ‘사회적 죽음’을 의미한다. 쪽방 주민의 높은 우울증세, 높은 알콜릭, 사망률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다. ‘아무도 나를 찾아올 사람이 없다. 죽어서도 마찬가지다.’라는 느낌. 흙에서 뿌리가 뽑혀버린 식물이 서서히 말라가듯 관계 단절은 더욱더 사람을 고립시키고 일명 ‘히끼꼬모리’처럼 작은 쪽방 안에 혹은 이 동자동이라는 작은 동네 안에 자신을 가두어버리게 만든다.

연결 : 단절은 새로운 연결의 가능성

사람들은 끊임없이 관계를 맺어간다. 가족, 친구, 회사와 같은 기존의 관계들이 다 무너져 내렸더라도 ‘끝’은 아니다. 그 끝처럼 보이는 밑바닥에서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며 살아간다. 쪽방촌 주민들은 많은 관계적 단절을 경험했지만, 이 쪽방촌 내에서 매일 부딪치는 주민들과 서로서로 관계를 맺고 물질적 도움은 되지 못하더라도 정서적으로 지지하는 관계를 어느 정도 형성한다.

쪽방에 문을 잠그고 누워 버리면 고립되고 혼자인 나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방문 하나만 열면 다시 사람들을 보고 나의 이웃과 만나게 된다. 집을 나서기 위한 좁은 길목에서, 세수를 하거나 쌀을 씻기 위해 들어선 공동세면장에서, 급한 맘에 간 공동화장실 앞에서, 우리는 이웃을 만나고 비슷한 처지를 공감하며 서로서로 친해져 간다.
- <쪽방신문> 발간 취지 글 발췌 -



그래서 (동자동) 쪽방촌 골목골목에서는 주민들이 삼사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술을 같이 먹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다. 한 사람 누울만한 좁디좁은 쪽방 공간에서 여러 주민들이 쪼그리고 앉아 삼겹살을 구워먹는 장면이나 주민들이 힘을 모아 마을행사를 준비해가는 모습을 볼 때는 오히려 삭막한 도시에서 기대하기 힘든 사회적 관계들을 이 도시 한가운데 외딴섬 같은 쪽방촌에서 보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주민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런 관계조차 맺지 않는 쪽방 주민들이 더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쪽방 주민들 서로 간의 관계 맺기마저 멈춰진다면 더욱 절망적인 상황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쪽방 주민들 중에서 사회적 관계가 ‘0(제로)’인 분들을 종종 만나기도 한다. 이 사회에서 사람답게 살기 위한 사회적 관계의 정도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관계(맺기)여야 하는지 알 순 없지만 ‘관계 맺기’는 ‘인권’을 이야기하기 위한 전제일 것이며 ‘관계 단절’은 그 사람의 권리를 보장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의미에서 그 자체로 인권 부재의 상황일 것이다.

튼튼한 연결 : 믿을 구석 만들기

사람들은 서로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관계’가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이며 ‘사회’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존의 사회적 관계들이 무너지고 배제된 결과물처럼 쪽방촌이 상징화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이것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며 어느 정도는 거짓말일 것이다. (단정할 수 없지만) 우리 사회에서 ‘쪽방 주민’ 혹은 ‘홈리스’ 상태라는 것은 관계의 단절-연결의 반복인 한 개인의 역사에서 ‘단절’이 ‘연결’로 넘어가지 못하거나 ‘연결’되더라도 ‘느슨한 연결’ 즉,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개인에게 힘이 되어 주지 못하는 ‘연결’로 이어지는 위기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쪽방에서 종종 발생하는 ‘고독사’는 ‘고독사’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단절’의 결과물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관계의 ‘단절’을 계속 단절의 상태로 두지 않고 어떻게 다시 ‘연결’의 상태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혹은 ‘튼튼한 연결’, 즉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개인에게 힘이 되어 주는 사회적 관계의 상태로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빠르게 해결할 정답은 없다. ‘단절’은 쉬워도 ‘연결’은 부단한 노력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필자 개인의 입장에서는) 사회적 관계 맺기의 새로운 시작, 단절된 관계가 새롭게 연결되기 위해서 단절된 이들의 사회안전망으로서의 그들의 ‘믿을 구석’이라는 것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본다. 믿을 구석? 모두가 나를 버려도 여기만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믿음. 그런 믿을 구석들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이 또한 정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믿을 구석’을 만들기 위한 첫 시작은 우리 사회가 결국 사회적 관계의 단절 위기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에 끊임없이 귀 기울이는 것에서부터라는 것은 분명하다.
덧붙임

슈아 님은 동자동 사랑방 사무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