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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대행진을 할까

생명평화대행진이 10월 5일 강정마을을 출발해 어느덧 수도권을 향해 가고 있다. 매일 아침 짐을 싸서 길을 떠나길 20여 일. 고통받는 현장과의 연대, 그리고 함께 꿈꾸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달려온 이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 매일 달라지는 새로운 환경들은 깊은 피로감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매일매일이 새롭게 다시 시작된다는 마음을 갖게 하기도 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깊어질수록 우리들이 왜 이 길을 떠났는지 근본적인 물음들도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이 서민을 위한 정치를 이야기하는 대선이 코앞에 있지만 우리들이 만났던 현장은 정치가 실종되어 있었다. 삶을 정돈해야 할 할머니들이 투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밀양과 청도, 기본적인 노동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 개발의 광풍에 휩쓸리는 산과 강은 소스라치게 흐느끼고 있었다. 정치가 외면하는 현장에선 인간도 자연도 모두 폭력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폭력의 시간이 지루하게 지나가는 삶의 터전을 두고 떠나오는 길목에선 강정마을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친구들이 생각났다. 우리들의 행진이 이 모든 폭력을 끝내는 바람이 될 수 있을까? 이런 불합리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사람들은 이런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는 있을까? 끝없는 물음들이 다가왔지만, 그 무엇도 확실한 답을 주진 않았다.


지난 10월 20일에는 지리산에 모여 우리들이 원하는 세상, 우리들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했다. 너른 평상에 앉아 나누는 이야기는 조금은 어수선했지만, 사람들이 의견을 교환하고 나누는 장이 되었다. 전국각지에서 모인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에 대해 고민하고 함께 이야기 나눴다. 고압송전탑을 막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 부도임대주택 때문에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 골프장 때문에 고향땅에서 쫓겨나는 사람들, 불법파견이 인정되었음에도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이 자리에 함께했다. 미처 가보지 못했던 현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참여자들은 진지했고 큰 박수로 환호했다. 그저 일상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서글펐지만 그들의 표정만큼은 시종일관 밝았다. 그 밝은 얼굴을 보니 우리들이 떠나온 길이 헛수고는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양한 사람들은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에서부터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요구하는 사람, 학벌 없는 세상을 원하는 청소년들, 농사를 짓고 싶다는 농민들, 제주 평화의 섬을 위한 계획도 제출됐다. 다양한 삶의 모습만큼 다양한 요구들이 터져 나왔다. 아직은 정돈되지 않은 거친 언어들이었지만 그것은 누군가 다듬지 않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말들이었다. 우리의 말들은 10월 28일 평택에서 두 번째 민회를 통해 더욱 구체화될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의 하늘인 우리의 요구는 대리인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들의 입으로 온 세상에 선언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선언을 통해서 우리들은 더 이상 쫓겨나지 않고 더 이상 해고되지 않고 더 이상 빼앗기지 않기 위한 행동에 돌입할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싸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 우리의 어머니 자연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행진이 우리들 스스로를 깨우는 자극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풍요로운 사회의 뒤편엔 산골 할머니들의 눈물이, 노동자들의 한숨이, 농민들의 탄식이, 소스라치게 눈물 흘리는 자연이 있다는 것을 이제 우리 모두 알아차려야 할 때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다른 이들의 희생 속에서 유지되는 이 사회구조를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을지 진지한 고민과 행동이 필요하다.

단 한 번의 행진으로 모든 것이 바뀔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의 행진이 사람들 사이에 작은 바람이라도 일으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흘러가는 사회에 단 하루만이라도 이렇게 울부짖는 많은 이웃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한다면, 그리고 그들과 연대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10월 28일 평택에서 있을 두 번째 민회와 11월 3일 서울시청광장에 함께 모여 우리들이 원하는 세상을 위해 함께 목소리를 높였으면 좋겠다. 우리들 스스로가 고통받는 이웃의 손을 잡고 함께 웃으며 씩씩하게 걸어나가자.
덧붙임

딸기 님은 평화바람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