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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사진전 - 서울역, 길의 끝에서 길을 묻다(2)

[편집인주] 10월 16일 서울역 광장에서 작은 사진전이 열렸습니다. 홈리스 당사자들이 직접 찍은 사진과 사진 속에 담긴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인권오름 독자들과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전시 소개]
서울역은 기차의 종착역 뿐 아닌 서울역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우리들 인생의 정거장이기도 합니다. 홈리스들은 서울역에서 절망을 이어가기도, 또 다른 난관을 만나기도, 새 출발의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홈리스들에게 서울역은 어떤 의미인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서울역을 직접 카메라에 담고, 그 사연을 적어 봤습니다.



작품 아닌 작품, 작품 위에 앉지 마세요
여기에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는데, 시간만 나면 서울역에서 아래, 위 바닥에 모두 물을 뿌려요. 이 의자가 사람이 앉아 있으라고 만든 게 아니라 작품이래요. 사람들 앉기에 딱 좋은데…… 사람들도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앉은 건데, 서울역 외부에는 이 작품 말고는 앉을 곳이 없네요. 민자역사 정문 쪽에는 수도꼭지가 호스에 항상 연결이 되어 있어요. 물 뿌리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어요. 민자역사 광장에는 조용히 자고 있는 노숙인을 물청소한다고 일부러 깨우기도 하고요. <사진: 김정원>



참 좋은 다리, 안 좋은 다리
50년 전에 이곳을 오가며 잠을 자곤 했던 기억이 있어요. 맨 처음 무료급식을 먹었던 기억도. 그 때 겨울에는 참 많은 사람이 죽어갔던 기억이 떠올라요.
난생 처음 죽은 사람을 목격한 곳도 이 곳이었어요. 쓰러져 잠든 사람이 있어서 119에 신고했었는데 죽은 거였어요. 난간 바깥으로 떨어져 죽은 사람도 있었어요. <사진: 김정원>



나의 인생 보관소
500개의 가방이 기약 없는 주인을 기다리는 구나.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채.
책은 말한다. 나 좀 읽어 달라고.
핸드폰은 말한다. 나 좀 사용하라고.
지갑은 말한다. 나 좀 써달라고.
옷은 말한다. 나 좀 읽어달라고.
모두 한 목소리로 외친다. 우리도 태양을 보고 싶다. 우리도 쓰임받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주인님 빨리 오소서. 뒤이어 한없는 침묵. <사진: 박왕우>



나락의 끝
* 처음 본 30대 젊은 노숙인. 맨발로 난간에 올라가는 것을 발목을 잡았으나 땀 때문에 손이 미끄러져 막지 못했다.

젊디 젊은 30대 황금기의 나이라 힘 있게 올라가는구나.
무슨 고난이길래? 무슨 절망이길래? 무슨 아픔이길래?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휘~익, 쿵……. <사진: 박왕우>



월세 없는 방
진달래가 진한 향기를 내도
개나리가 한껏 자태를 뽐내도
장대 같은 장맛비가 와도
모기님이 한껏 피를 빨아 포식을 해도
벼이삭의 점잖은 고개 숙임도
농부의 함박웃음에도
폭설에 눈이 와도
칼바람이 귓불을 얼릴 때도
어둠이 깃들면
지나온 인생길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든다.
손에 박스하나, 신문지 하나
단벌 옷 버릴 세라 정성껏 바닥에 깐다.
냉기가 전신을 파고들어 오징어도 아니건만 온 몸이 온 몸이 오그라든다. 조명등 하나, 나 하나, 조명등 둘, 나 둘.
눈을 감는다. 내일도 숨 쉴 수 있으려나? <사진: 박왕우>



옛 광장에는
예전에 이 광장에는 쉬는 곳이 있었다. 지금 이 넓은 광장에는 아름다움이 없고 한낮의 뜨거움과 밤에는 차가워지는 아스콘만이 깔려 있다.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인정과 사랑, 아름다움이 있는 광장으로 만들어 놓으면 좋겠다. <사진: 사랑나라>
덧붙임

권오대, 김정원, 김종언, 박왕우, 박학봉, 사랑나라 님은 홈리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