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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들도 세상 물정 좀 알 수 있게 대합실서 서서라도 TV 볼 수 있게 해달라.”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조치 1년이 만들어낸 것들

작년 8월 22일부터 서울역은 역사 내 <야간노숙행위금지> 조치를 시행했다.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역사 내 노숙인 출입을 금지하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노숙인’이라는 특정 인구집단 전체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행위가 노숙인들의 생활공간 한복판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에 홈리스행동을 비롯한 22개 반빈곤・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구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공대위는 강제퇴거조치가 혹한, 혹서기에 갈 곳 없는 노숙인들의 생존권의 문제임과 동시에, 한국사회에 만연한 노숙인에 대한 차별이 더욱 극심해지고 공식화되는 계기가 될 것을 우려했다. 그리고 강제퇴거조치를 철회시키지 못하고 1년이 지난 지금, 공대위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사진: 2011년 7월 25일 노숙인 강제퇴거 방침 서울역 규탄 기자회견(출처:참세상)]

▲ [사진: 2011년 7월 25일 노숙인 강제퇴거 방침 서울역 규탄 기자회견(출처:참세상)]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노숙인 쫓아내기

노숙인 강제퇴거조치 1년을 맞아, 공대위는 서울역 인근 거리노숙인 50명과 심층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조사 결과 가장 두드러진 것은 한국철도공사의 조치가 더 이상 <야간노숙행위금지> 조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숙인 퇴거임무를 맡은 특수경비용역에 의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숙인 퇴거가 시행되고 있었다.

특수경비용역은 검은 베레모에 선글라스를 쓰고, 공항 등지에서 볼 수 있는 대테러 특수부대와 같은 복장을 하고 있다. 복장은 요란하지만, 이들이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은 노숙인을 윽박지르고 쫓아내는 일이다. 철도공사는 작년 7월 13일 이들과 4억 8천여만 원 상당의 경비용역계약을 맺었다. 8월에 시행할 노숙인 강제퇴거조치를 집행할 인력을 충원한 것이다. 철도공사가 정말 ‘야간노숙행위’를 제지하려고 했다면 수억 원을 들여 경비용역을 고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새벽 두어 시간 동안 노숙인 출입을 막기 위해서라기엔 과도하지 않은가? 노숙인이 실제로 마주치게 되는 강제퇴거조치는 바로 이들 특수경비용역이다. 설문조사에서도 노숙인들은 이들에 의해 퇴거조치의 괴로움을 토로하고 있다.

“대합실의 화장실에 가려는데 용역 3명과 직원 1명이 반말로 "가, 인마"라고 하며 손가락질하는 것을 경험했다. "지하도 가서 싸라"고 말해서 그대로 나갔다. 나도 나이 60대인데 슬프고 죽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오전에 대합실에 앉아 TV를 보는데 까만 안경 낀 용역이 사람 많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내 등을 꾹꾹 찔러가며 나가라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웃거나 봤고 무척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당시 깨끗한 용모였는데, 억울했지만 나왔다.”

“서울역 정문 밖 재떨이 있는 곳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베레모를 쓰고 위아래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 네 명이서 내려가라고 해서 내려갔다. 같이 있던 노숙인 전부 다 내려갔다. 그때 든 생각에는 규정에도 없는 잘못된 요구라고 생각했고 그런 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숙인 다음은 누굴까?

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8월 초, 한 인터넷 언론에서 공짜 공항철도를 타고 노인들이 시원한 인천공항에 대거 몰리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관련된 연속기사는 더위에 지친 탑골공원 노인들이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시간을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누군가 한국의 노인들은 60세 이순(耳順) 다음에 65세 지공(地空)이라고 했던가. ‘지하철 공짜’ 말고는 별 볼 일 없는 빈약한 한국의 노인복지를 빗댄 것이다. 인천공항의 노인들과 서울역 노숙인의 상황이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일자리가 없어서 시간은 많지만, 벌이가 없어 가난한 이들이 더운 여름을 나는 방식은 비슷하다. 다만 공항 경비를 담당하는 경찰은 ‘노인분들이 오셔서 소란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그저 조용히 의자에서 쉬었다 갈 뿐인데 이걸 나쁘게 보거나 제지할 이유도 없다. 인천공항은 이용객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공장소’라고 말하지만, 서울역은 ‘노숙인은 누구나 소란을 피우며, 서울역은 철도 이용객만 올 수 있는 영업장소’라고 말한다는 차이가 있다.

서울역의 노숙인 강제퇴거조치는 바로 이런 사회경제적 약자를 공공장소에서 몰아내는 차별과 배제다. 철도공사는 가장 힘없는 집단인 노숙인을 상대로 이러한 차별과 배제행위를 시작했다. 이미 철도역사라는 공공장소의 상당 부분이 각종 상업시설에 의해 점유된 상태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공공장소에서 또다시 이런 구획과 배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같은 플랫폼으로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KTX 이용객 대합실을 따로 만들어놓은 거나 일반열차 배차량이 대폭 줄어 가난한 사람들의 이동권이 제약을 받는 것들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수중에 돈이 떨어지면, 서울역에 우리가 앉아있을 곳은 없다.

문제의 해결책? 노숙인들은 이미 알고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한 흔한 반론은 ‘노숙인들을 서울역 인근에서 거리노숙하게 방치하자는 이야기냐’, ‘솔직히 노숙인들이 역사에서 술 먹고 행패를 많이 부리는 건 사실이지 않냐, 대책을 세워야 한다.’ 등이다. 설문조사에서 노숙인들은 그 해결책들을 이미 제시하고 있었다.

“일자리와 잠자리를 제공해서 노숙인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해 달라.”

“취업을 생각하고 서울역에 왔는데 이제는 다 포기 상태다. 사람들이 보는 시선부터 다르고 노숙인이라면 색안경을 끼고 으레 술 먹고 깽판 친다는 생각을 하고 인식을 하니 아예 나도 담을 쌓고 자포자기다. 한 사람으로 인해 여럿이 덤핑으로 넘어가니 자포자기 상태다.”

“노숙인이라고 해서 받는 차별 때문에 마음속으로 숱하게 울었습니다. 집도 절도 없는 사람들 인간 차별하지 마세요. 노숙한다고 사람 취급하지 않는데, 그러지 말았으면 합니다. 나도 뜻대로 되지 않아서 계속 머물러 있는 겁니다. 현재는 폐지 줍는 사장(1인)입니다.”

“노숙인들도 세상 물정 좀 알 수 있게 대합실서 서서라도 TV 볼 수 있게 해 달라. 단속도 술 먹고 행패 부리는 사람만 선별적으로 해야지 노숙인이라고 일괄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조치가 시행된 지난 1년은 이미 노숙인들의 삶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 그리고 또한 지난 1년은 한국사회에 노숙인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낙인이 더욱 깊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차별과 배제가 더 확산되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강제퇴거조치를 철회시켜야 한다.
덧붙임

정록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