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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랑의 인권이야기] 이주여성들이 죽지 않을 권리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사회는 얼마나 야만적인가

“피고인만을 지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미숙함의 한 발로일 뿐이다. 노총각들의 결혼 대책으로 우리보다 경제적 여건이 높지 않을 수도 있는 타국 여성들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이 취급하고 있는 인성의 메마름이 비정한 파국의 씨앗을 필연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다. … 이 자리에서 우리는 21세기 경제 대국, 문명국의 허울 속에 갇혀있는 우리 내면의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한다.”

2007년 베트남에서 온 후안마이 씨가 남편의 폭력으로 사망한 사건으로 이주여성의 가정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중개업에 의한 국제결혼에 대해,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이주민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많은 질문을 던지며, 사람을 마치 물건 취급하는 우리의 야만성에 대해 성찰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 벌써 올해만 세 명의 이주여성이 가정폭력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문자 그대로 맞아 죽은, 이 비참한 현실을 앞에 두고 너무 조용합니다. 이 사회적 침묵이 섬뜩할 만큼. 잊을만하면 포털을 장식하는 청소년의 죽음, 생활고로 인한 많은 사람들의 삶의 포기 그리고 이주여성의 가정폭력으로 인한 사망. 너무나 많은 죽음들이 이어져 우리는 ‘죽음’에조차 무뎌져 가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황량합니다.

[그림: 윤필]

▲ [그림: 윤필]


2년여 전, 한국인 남성과 혼인 후 입국하기 위해 준비 중인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출국 전 사전정보제공 프로그램’ 관련 활동을 하였습니다. 드라마를 통해 한국을 접하고 알게 된 많은 경우, 여성들은 한국에 대한 환상을 품게 마련입니다. 도시의 쾌적한 주거환경, 넘쳐나는 상품과 풍족한 소비생활, 다정하고 세심하면서도 여성에게 헌신적인 한국남성… 주변에 한국으로 이주한 사람이 있다면야 모를까 여기에 중개업자들의 감언이설까지 더해져 한국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 보장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키우게 했습니다. 더구나 베트남의 경우 한국에 대한 정확하고 충분한 정보를 얻을 기회가 많지 않았기에 왜곡된 정보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여성들의 자기 삶에 대한 적절한 준비와 계획을 가로막았고 한국으로 이주 후 벌어질 많은 갈등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일주일 해외여행을 가도 현지의 날씨, 교통체계, 숙박할 곳을 알아보고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비를 합니다. 그런데 이주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걸고 내리는 결단임에도 최소한의 올바른 정보를 접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배우자가 될 사람에 대한 정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사전정보제공 프로그램이 준비되었습니다. 베트남과 완전히 다른 한국의 계절과 날씨, 가족관계나 주거형태, 교통체계와 관공서 이용 등 기초적인 정보를 담았습니다. 그리고 이주여성이 한국사회 정착에 필요한 언어 및 커뮤니티 형성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지원기관 안내와 함께 무엇보다 프로그램 속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강조하는 것은 위급상황 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하루 6시간 동안 진행되는 정보제공이 얼마만큼 큰 효과가 있을까 싶지만, 적어도 자신이 이주해서 살게 될 지역과 환경에 대한 올바른 정보는 환상에서 나와 현실에 발을 딛게 했습니다. 위험에 노출되었을 때 기댈 수 있는 안전장치를 갖춤으로써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또 피상적으로나마 한 번이라도 보고 들은 이야기들은 이후의 문화충격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이라는 것이 어느 한 쪽의 노력과 준비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주여성이 만날 배우자 남성과 그 가족, 그리고 이주여성들이 살아갈 우리 사회의 이주민에 대한 우월의식과 혐오 등 사회 전체의 공기가 바뀌지 않는다면 어떠한 보호막도 무용지물일 뿐입니다.

그래서 뻔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중개업을 통한) 국제결혼에 대한 우리의 인식변화는 물론, 필요하다면 국제결혼 과정에서의 요건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제도나 시스템을 바꾸지 않아도 현재의 것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상호 간에 올바르고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남편의 직업이나 건강상태에 대해 결혼하고 나서 알게 되기도 합니다.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의 상담사례를 보면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한 여성의 경우 2010년 11월 한국에 입국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당황한 남편이 그 이유를 묻자 이 여성은 자신은 재혼이며, 모국에 딸아이가 입원 중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이러한 신상정보를 중개업자에게 모두 알려줬지만, 전달이 안 된 것 같다고 하여 협의이혼 한 케이스도 있습니다. 쌍방이 필요최소한의 정보를 모두 정확히 알고 있는지 비자발급 단계에서 결혼당사자 쌍방을 동석시켜 인터뷰한다면 이러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요청했지만 유관기관의 침묵 속에 힘도 쓸 수 없었습니다. 비자발급 인터뷰를 강화하려면 물론 현재의 국제결혼절차를 고려하여 어느 단계에서 인터뷰할 것인지, 현지국과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등 복잡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현재와 같이 이주여성의 본국에서 혼인절차를 마치고 난 후 비자발급을 신청하는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인터뷰만 강화한다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여성 혼자서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전정보제공 프로그램을 베트남에서 먼저 시작하게 된 것은 통계적으로 중국동포에 이어 베트남에서 이주하는 여성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중국동포들의 경우 한국어를 할 줄 아셨기에 상대적으로 더더욱 취약한 베트남, 몽골, 필리핀 등의 이주여성에 관심을 기울인 측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 통해 이주여성 각자의 상황이나 요구를 고려하지 않은 채 언어를 중심으로 이주민을 쉽게 구분하고 대우한 건 아닌지, 이건 또 이것대로 소위 가진 자의 횡포는 아닌지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언어를 안다는 이유로 다문화가족정책의 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되면서 지역사회 내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어려웠고, 그로 인해 폭력 발생 시의 대처법에 대한 정보에 차단되어 있어 더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필요와 요구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래왔는데......

어디부터 다시 생각하면 좋을지 마음이 복잡하다 보니 글도 복잡스럽습니다. 한국사회에서 결혼을 못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사실 현재 국제결혼을 하는 사람들은 초반의 유형-소위 결혼시장에서 밀려난 경제력이 낮고 도시 외 지역에서 사는 남성-과는 또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이주여성에 자신의 노후를 위탁하기 위한 사람, 한국여성으로 구성하기 어려운 가부장적 가정을 이주여성으로 대체하여 구성하고자 하는 사람, 이주여성의 취약한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사람 등등.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이주여성과의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여성에 대한 존중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쨌든 사인 간의 결정이기에 외부에서 개입하기 어려운 만큼 이주민 당사자의 자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요......

가장 기본적인 인권-‘죽지 않을 권리’-도 지켜지지 않는 사회,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사회가 얼마나 비참하고 야만적인가요. 여전히 복잡한 마음으로 이 자리를 빌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덧붙임

묘랑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