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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의 인권이야기] 인권운동의 법률주의를 경계하며

2007년 공감 변호사로 갓 활동하기 시작한 무렵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하는 외국인보호소 방문조사에 ‘외부전문가’로 참여하게 되었다. 첫 기획회의에서 나의 의견이 변호사라는 이유로, 10여년 이주운동을 해온 단체 활동가의 의견과 같은 무게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당혹스럽기도 하고 아찔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사회에서 어리다는 이유로, 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잘 주어지지 않는 사회적 발언권이, ‘변호사’라는 이름을 달면 달라진다. 때로는 ‘법률전문가’라는 이름으로 그런 사회적 발언권이 과도하게 주어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경험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더 노골화되는데, 한 번은 구금시설 진정 사건이 이슈가 되어서 라디오 인터뷰 요청이 온 적이 있었다. 당시 나보다 이 사건을 더 자세히 알고 있는 활동가를 인터뷰하라고 소개해줬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담당 작가가 인터뷰 대상으로 변호사나 교수를 섭외하고 싶다고 하여 결국 그 활동가가 다른 교수를 소개해줬다고 한다.

나는 법률가들에게 주어지는 이런 사회적 발언권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우려스럽기도 하다. 그 배경에는 한국사회가 점점 법률만능주의, 사법만능주의가 되어가고 있는 영향도 있는 듯하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원 구성에서 법학자를 포함한 법률가의 구성이 지나치게 많다는 비판이 있다. 그래서인지 인권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하는 국가인권위원회가 “합법이냐, 불법이냐”의 기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법원을 닮아가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그림: 윤필]

▲ [그림: 윤필]


인권운동의 영역에서도 입법운동, 기획소송에 대한 기대와 비중이 예전보다 커지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인권운동의 영역에서 턱없이 부족했던 변호사들의 활동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반가우면서도 경계해야 할 것은, 법 또는 판결이라는 강제력과 제도화라는 눈앞의 성과를 이유로, 인권운동 차원에서 해야 하는 이야기들이 생략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논쟁들을 서둘러 종결시키려고 하는 조급함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이주민에 대한 강제단속과 구금, 강제추방의 문제가 있는데, 관련 법제도 내에 출입국 공무원의 권한을 통제할 수 있는 절차가 없어서 더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최소한 출입국 공무원의 자의적 판단과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출입국관리법 개정운동을 하고 있고, 불법적인 단속행위에 대하여 국가배상소송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논의 속에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강제단속과 구금, 강제추방 정책의 폭력성이라는 본질적인 문제제기는 희미해지고, 단순히 단속과정의 절차적 적법성 차원의 논의로 범위가 좁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한편 집회, 시위 현장에서 인권침해감시단 활동을 하면서 경찰의 과도한 채증을 ‘불법’ 채증으로 명명하고 항의하던 순간들의 답답함도 있다. 물론 “그것은 불법이야!”라는 공격 또는 항변은 간명하다는 강점이 있고, 저항의 수단으로서 법이 가지는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되거나 반복이 되다보면 자칫 사회적 논의들이 실정법의 범위 내로 좁혀지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법은 인권의 경계를 확장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그 한계도 명백하다. 결국 인권운동이라는 큰 흐름에서 그 기능을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덧붙임

서연 님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