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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의 인권이야기] 활동가들에게 커밍아웃하기까지 걸린 시간

오늘은 나의 사적인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이 글을 쓰기까지, 쓰는 지금도 몇 번의 망설임이 있었다는 것도 밝혀둔다.

2006년, 공감에 지원을 하고 면접을 처음 볼 때였다. “공감에 왜 지원했느냐”, “소수자 인권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채용 면접에서 당연히 나올 예상 질문인데, 나는 속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면접 장소에 공감의 모든 구성원인 8명이 나올 줄은, 면접장소가 시끄러운 음식점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 질문을 받고 당황하면서 속으로 갈등하고 있었다. 결국 그냥 ‘뻔한’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인권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신통치 않은 면접을 마치고, 낙담을 하고 돌아오던 길이 생각난다.

공감에 오고 나서도, 비슷한 질문을 수십 번 받았다. “왜 검사를 그만두고 공감에 왔어요?” 비슷한 질문들에, 나의 대답은 늘 달라졌다. 어떤 결심을 하기까지, 한 가지 이유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기 마련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또는 현재의 상황에 따라, 그 이유들이 달라졌다. 하지만, 정작 나는 내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은 하지 못했다. “내가 소수자여서 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있고, 인권운동을 하고 싶다”는 간단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소수자, 동성애자이다. 뒤늦게 학생인권조례 대응활동을 하면서, 나의 학창시절을 돌아보았다. 상대적으로 공부 잘하는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방송에서 한창 트랜스젠더(당시에는 트랜스젠더를 ‘게이’라고 불렀다) 이야기가 등장하던 시절이었다. 그 즈음 같은 반 남학생이 지나가던 말로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게이’들은 사실 불쌍해. 어쩔 수 없으니까. 역겨운 건 ‘호모’들이야” 90년대, 대학에 진학해서 인터넷 PC통신 퀴어 커뮤니티들을 알기 전까지, 나는 세상에 나 혼자인 줄 알았다. 그 이후 비교적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대학시절을 보냈지만, 사법연수원, 사회생활에 들어서면서, 나는 다시 고립되었고, 커밍아웃은 여전히 나에게 낯설고 더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그것은 인권운동을 시작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림: 윤필]

▲ [그림: 윤필]


인권활동가대회를 처음 갔을 때의 일이다. 서로 자기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평상시처럼, 활동가들이 하나씩 단체 소속과 이름을 밝혔다. 나도 소속단체와 이름을 말했다. 순서대로 성소수자인권단체 활동가들도 단체 소속과 이름을 말했다. 그들은 소속 단체를 밝히는 것만으로도 커밍아웃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런 순간들이, 나에게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처음만나는 사람들에게 커밍아웃하는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나도 여기서 커밍아웃해도 될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결국 말았던 기억이 난다.

2007년, 차별금지법안에서 ‘성적 지향’이 삭제되면서, 이에 대응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여성, 인권, 시민사회 단체 활동가들을 만나게 되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 외에 다른 인권단체들에도 나처럼 성소수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때였다. 잘 보이지 않지만, 성소수자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당시 차별금지법안 대응활동을 긴급하게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열심히 활동하기도 했지만, 사적으로는 활동 후의 그 뒤풀이 자리가 좋았다. 다른 자리에서는 긴장을 놓지 않고 쉽게 하지 못했던, 사소한 연애 이야기에서부터, 인권단체들의 여전한 이성애중심 문화에 대한 흉도 보고, 공감에 지원하게 된 사연도 거리낌 없이 털어놓을 수 있었다. 성소수자 인권을, 성소수자 인권단체들뿐만 아니라 다른 인권 단체들에서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옹호해 주는 활동들이 좋았다.

공감에서 인권 활동을 시작한지 5년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도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이 아닌, 이주나 장애 등 다른 인권활동가들에게는 별로 커밍아웃하지 못했다. 공감 동료 변호사들에게 커밍아웃한 것도, 공감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한참 지난 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도, 내가 비이성애자일 수 있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상대방의 문제라기보다는, 무엇보다 커밍아웃하는 스스로에게, 불편함과 거리낌이 없는 상태가 되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이제는 다른 친한 활동가들에게 자연스럽게 커밍아웃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상황들에 직면하면 선뜻 입 밖으로 말이 잘 안 나온다.

이렇게 글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사실은 대면해서 말로 하는 것이 여전히 낯설고 어렵기 때문이다. 일단 글은 시작했는데, 어떻게 맺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내가, 그리고 많은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하기까지 걸린 시간들을 이해해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 번쯤, 그렇게 망설인 시간들에 대하여 생각해달라는 것이다.

덧붙임

서연 님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