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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의 인권이야기] 성소수자 노동자, ‘우린 어디에나 있어요’

한 달 전쯤 전화 한통이 왔다.
“동성애자 인권 연대인데요, 혹시 저희 토론회에 토론자로 나와 주실 수 있나요?”
“토론회야 갈 수 있지만 전 잘 몰라서 토론자가 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요.”
“그냥 나와서 함께 편하게 이야기하시면 되요.”

집회 때 무지개 깃발을 늘 들고 나오는 사람들, 그 분들이 기륭투쟁에 연대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런데 비정규 투쟁을 이야기하는 자리도 아니고, 사실 나로서는 정말 무지한 영역이어서 요청 자체가 무척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편하게 이야기하면 된다는 답변에 토론회에 참가한다는 약속을 했다.

‘나, 성소수자 노동자’

그리고 며칠 전 약간은 떨리는 마음으로 토론회에 참가했다. 회의실 정면에는 ‘나, 성소수자 노동자’라는 펼침막이 붙어 있었다. 그 문구를 보는 순간 ‘아~ 이분들도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성소수자들이 나와 같은 노동자라고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내심 부끄러웠다. 그리고 나와 같은 노동자임을 확인한 ‘나! 노동자’라는 그 표현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림: 윤필]

▲ [그림: 윤필]


토론회에서는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우체국, 백화점, 기간제 교사, 식당, 생산직 등 일하는 곳도 다양했다. 생물학적 성과 본인이 지향하는 성이 다른 분도 있었고, 게이, 레즈비언도 있었다. 아직 사회적으로 이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일하는 현장에서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여성성과 남성성을 극단적으로 강요하는 현장 분위기와 구조, 혹여라도 성소수자임이 드러나면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매우 컸다. 이들의 어려움은 아직 사회적으로 드러나지도 못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 커밍아웃하는 것도 굉장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실정이니, 사회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 토론회 내내 나는 성소수자나 장애인 등이 우리 비정규 노동자와 크게 다를 것 없이 처지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륭투쟁을 하기 전까지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 본 적도, 더불어 사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것도 교육받지 못했고, 따라서 내 머릿속에 장애인들도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거의 없었다. 평소에 우리는 깨끗한 화장실을 선호하면서 그것을 위해 땀을 흘리는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노고와 그분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 생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이 투쟁하지 않았다면, 또 우리가 함께 연대하지 않았다면 우린 그들이 화장실 구석에 쪼그려 쉬고, 밥을 먹는지, 살인적인 저임금에 고통 받고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시설에 갇혀 있고, 집안에 갇혀 있다. 그들이 투쟁을 통해 거리로 나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그들을 인식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저항하고 투쟁하는 행위가 인류의 생각과 실천을 더욱 아름답고 고상하게 만드는 것임을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토론회였다.

저항과 투쟁으로 만나는 ‘우리’

홍익대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투쟁 기록집 제목은 ‘우리가 보이나요’다. 그런데 이번 토론회를 마치는 글에 ‘우린 어디에나 있어요’ 라는 글이 있었다. 사회적 약자, 사회적 소수자들을 지배 문화는 감추고, 지우고, 억압하려 한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애써 부정하고 없는 것으로 치부하려 한다. 지워지고 감춰지는 사람들의 절박한 심정이 그 제목 속에 다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지워지는 것들이야말로 정말 소중한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아직 우리 일상은 사람다움을 다 채우지 못하고 있다.

토론회 말미에 참여자 중 한 분이 “일반인이 참여한 것은 처음이예요.”라고 한다. 그 말에 나는 놀랐다. 그래서 왜 처음인지 그 이유를 물으니, 작년에도 ‘일반인’들에게 토론회 참석을 요청했지만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끝내 참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여러 사정들이 실은 다른 차원에서 우리사회 약자와 소수자들에게 상처가 되는 것 같아 또 부끄러웠다.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부터 그런 그늘진 곳이 많이 있다. 그리고 대충 외면하거나 불편해 한다. 바로 그런 소극적 대응 자체가 그늘을 더욱 짙게 만드는 것이 아닌지. 나부터 우리부터 주변을 돌아보고 가려진 부분을 드러내어 누구도 ‘비정상’이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더욱 분발하자는 각오를 했다. 그러기 위해 내가 속한 관계에서부터 사회적 소수자를 제대로 이해하고 더불어 사는 방법을 느끼고 배우는 교육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그것이 우리 안의 여러 한계를 넘어서는 하나의 길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태어난 모든 이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회 일반에서 감춰지고 지워지는 부분이 없어야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가 된다. 그런 사회라면 정리해고나 비정규직의 비참도 자리를 잡지 못할 것이다.

존중하고 채우고 돌보는 세상을 향해

토론회를 마치고 나온 거리엔 겨울로 가는 나무들이 마지막 겨울 준비가 한창이다. 혹독한 추위를 위해 한해 환하게 빛났던 것들이 이제 거름이 되기 위해 땅속으로 돌아가고 있다. 낙엽은 보이지 않는 뿌리, 보이지만 한 번도 화려해본 적 없는 나무줄기들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한 생명의 순환이다. 이번 토론도 이렇게 ‘서로 다름’이 차별이 아닌 ‘존중과 채움과 돌봄’의 이유가 되는 세상을 새롭게 꿈꾸는 연대와 소통의 토론회였다. 이 마음이 더 깊게 뿌리 내리고 더 넓게 자라나 모든 이가 존재 자체로 존중 받는 세상을 향한 소중한 봄싹으로 돋기를 기원했다. 그래, 우리 모두는 노동자로 하나다.
덧붙임

김소연 님은 금속노조 기륭분회 전 분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