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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인(in) 걸] 걸 페미니즘 “다시 보기”

먼 길을 돌아와 당분간 굿바이

고백하자면, 사실 난 ‘페미니즘 인 걸’ 의 연재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올해 초에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팀 편성을 다시 했다. 2년 여 활동해왔던 여성주의팀을 반차별 연구팀으로 전환하면서 사실상 기존의 여성주의팀은 활동을 끝맺었다. 까맣게 잊고 있던 ‘페미니즘 인 걸’의 얘기를 다시 듣게 되었을 때, 여성주의팀 활동과 너무 안일하게 이별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새로운 팀에서 이 연재를 이어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덥석 한 번만 더 쓰자고 했다. 지금 읽고 있는 이 글은 내 이런 미련이 만든 ‘자투리 부록: 걸 페미니즘 다시보기’다.

걸(girl)들의 페미니즘,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그간의 연재분들을 쭉 돌아보니, 대충 성격을 네 가지 종류로 나눠 볼 수 있을 것 같다. 야오이, 공포 영화, 애니메이션 같은 매체를 통해 여성 청소년의 이야기를 풀어냈던 게 하나, 스무 살의 편지나 소수자의 오지랖, 담배 편처럼 여성 청소년으로서의 경험을 통해 사적이고도 공적인 고민을 나눴던 게 둘, 청소년인권 의제였던 학교, 정치적 권리, 보호주의, 가정 등의 사안을 여성 청소년의 시점에서 다시금 파보았던 것들이 셋, 팬덤 편처럼 나름 묻혀있던 여성 청소년의 이야기를 새로이 짚어보려 했던 시도들이 넷. 여성주의팀 활동은 지금 와 생각하면 여성 청소년을 주어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걸 페미니즘의 주어는 계속해서 ‘걸(Girl)'이었다. 그 걸(girl)은 10시 땡 치면 아빠 품으로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 같은 여자애들이기도 했고, 팬클럽이라는 모임을 통해 주체적 행동을 도모하는 여자애들이기도 했다. 그녀들이 사는 현실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녀들이 어떤 억압에 처해있는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얘기하고, 여성 청소년들에게 사회적으로 가해지는 가부장적 폭력에 반소시(반사회적 소녀들의 시선!)로 맞서는 것, 매번 하려했던 건 결국 이거였다. 물론 이렇게만 단순화시키기엔, 주로 이야기 하던 것들이 점점 달라져오긴 했지만.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시선은 변한다

페인걸 연재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렸던 주제가 원더걸스, 소녀시대 등 10대 여성 아이돌에 관한 이야기였던 건, 당연히 우연이 아닐 것이다. 소녀시대로 대표되는 여성 아이돌은 여성 청소년을 둘러싼 억압과 권력이 가장 눈에 띄게 잘 드러나는 구체적인 예였고, 그건 ‘걸 페미니즘’을 처음 시작한 우리 같은 초짜들 눈에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적나라했다. ‘소녀’는 순수하고, 어여쁘다. 소녀에 대한 이미지는 곧 여성 청소년들이 사회적으로 요구 받는 덕목이다. 물론 실제와는 상관없는 환상, 즉 소녀 판타지다. 소녀시대의 상품성은 남성 및 가부장 권력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동시에 지배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데 있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덕분에 그 당시 우리가 말하는 소녀는 가녀린 몸매에 새하얀 스커트를 입고 예쁜 표정을 지으며 춤추는 ‘바로 그 소녀’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소녀시대의 판매 방식은 몇 년 사이에 순수에서 섹시로 변모한다. 우리의 시선이 향하는 곳 역시 변해갔다. 처음엔 ‘바로 그 소녀’에만 붙들려 있던 눈이 지금의 사회와 실제 여성 청소년들이 어떤 식으로 ‘관계’ 맺고 있는 지를 향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회가 10대 여성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블링블링한 화장품 가게에서 “고객님”으로 호명되고 있는 소녀들을 통해 봤던 것처럼.

뽀인트는 맥락을 놓치지 말 것!

이제와 하는 얘기지만, 여성주의팀은 원래 ‘반차별팀’으로 시작했다. 청소년 인권과 사회에 존재하는 이런 저런 소수성을 결합해서 얘기해보자는 게 처음 계획이었고, 그 중 여성주의를 택해서 일단 한 번 해본다는 게 그만 꽤 재미져서 아예 여성주의팀 활동으로 정착했다. (맞나? ㅋㅋ) 연재 후반에 복합차별이니, 반차별의 눈으로 ‘30대 여교사 10대 남학생 사건’을 보자는 둥의 얘기를 계속 하게 됐던 건 페미니즘과 청소년인권을 동시에 말하고자 했던 시도가 자연스레 어떤 상황이 일어나는 이유를 하나 이상의 시선으로 복합적으로 고민하게끔 했던 데 있다. 청소년 인권 의제의 대표주자 격인 학교 이야기에 페미니즘이 더해질 때, 교사는 무조건적인 강자라는, 성차를 무시한 관점에서 여성 교사에게는 또 다른 맥락이 있다는 사실을 새로이 발견할 수 있었다. 여성 청소년이 처한 삶의 문제가 어떤 사회적 조건과 관련 있는지 생각하면서 꽤 많은 키워드를 만났다. 남성 중심성,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질서와 도덕 등. 이제 와서는 뭘 얘기하든 이 모든 키워드들이 함께 만난다. 이 모든 게 현재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질서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더 많이 공부하고 섬세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익숙한 프레임을 고집하거나 모른다는 이유로 보지 않아 놓치게 되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람일 테니.


당분간 굿바이, 걸 페미니즘

“‘여성+청소년=여성 청소년’이라는 공식을 넘어서자”라는 지난 페인걸 연재 제목은 그동안 걸 페미니즘을 고민하는 동안 내린 최소한의 결론이다. 서원의 말처럼 여성 청소년들이 겪는 차별은 여성 청소년 고유의 경험이다. 마지막 연재가 될 뻔 했던 지난 연재는 윤티가 여성 청소년으로써 말한 자신의 이야기였다. 그런 이야기들이 더 이어지지 못했던 건, 여성주의팀을 조금은 허무하게 마무리하게 됐던 건, 우리의 활동이 여성 청소년들의 삶을 제대로 만나지 못해서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진부한 반성이지만, 그래도 덧붙이고 싶었다. 설마하니 영영은 아닐 거다. 그러니 당분간 굿바이다, 걸 페미니즘.
덧붙임

엠건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