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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에 대한 여전히 못다한 이야기……

여성의 낙태 문제를 다룬 영화중에 <더 월>이라는 영화가 있다. 낙태 문제와 관련해서는 항상 언급되는 영화인데 난 아직도 홀로 영화를 봤던 그 새벽을 잊지 못한다. 잠깐의 실수로 시동생의 아이를 임신한 데미무어가 불법 시술사를 집으로 불러 수술 받다 피 흘리며 홀로 집에서 죽어가던 모습……. 여자 친구와 함께 병원에 온 것처럼 위장한 한 낙태 반대주의자가 쏜 총에 맞아 죽어가던 자신을 수술하던 의사를 부여잡고 절규하던 한 여성의 모습……. 그 날 새벽 난 너무나 서러웠었다. 너무 서러워 울음이 멈추질 않았었다. 영화 속 여성들의 삶이 2010년을 살고 있는 내 몸 속에 빨려 들어와 그들의 영혼이 내게 투과된 것처럼……. 서러움의 눈물이 솟구쳤었다.

[설명] 영화<더 월(If the walls could talk)>의 한 장면<br />

▲ [설명] 영화<더 월(If the walls could talk)>의 한 장면



이 글을 쓰며 다시 그 영화를 떠올리는 지금 다시 그 서러움과 고통이 내 몸을 깨우며 그 때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다시 난 서러워진다. 그 영화에서처럼 2010년 한국에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이 낙태를 불법화하고 여성을 범죄화 하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 얼마나 비참해지고 있는지 구구절절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바로 얼마 전 한 한국 남성이 부인이 낙태했다며 부인을 고발했고 그 여성은 결국 벌금형이라는 형사 처벌을 받았다. 또 한 남자는 헤어진 자신의 여자 친구가 자신과 헤어진 후 낙태를 했다며 고발했던 사건이 있었고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다. 그 뿐 아니다. 낙태 시술 의사 고발과 단속이 강화된 이후 낙태할 병원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한 여성이 낙태 시술 병원을 소개해주겠다는 사람에게 속아 성폭력을 당한 사건도 있었다. 기사화되지 못해 알려지지 않은 이 같은 사례들은 분명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작년 하반기 일부 의사들이 낙태 수술하는 동료 의사들을 고발하겠다고 등장하면서 시작된 한국 사회의 낙태 논쟁은 이렇듯 여성들이 형사 처벌을 받거나, 취약한 상황에 놓인 여성들이 다양한 폭력에 노출되거나, 불법 시술소로 내몰리거나, 그도 아니면 중국이나 일본으로 원정출산에 나서야 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결국 이번 논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들의 몸에 부과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낙태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여성, 노동, 사회 단체 등으로 구성된 <임신출산결정권을위한네트워크>에 참여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번만큼은 여성들이 얼마나 피해를 받고 있는지를 구구절절이 드러내는 방식으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몸에 대한 여성의 온전한 자기 결정권이 보장될 수 없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낙태에 대한 여성들의 결정은 단순히 여성의 선택의 문제가 아님을 드러내고, 낙태를 여성의 임신, 피임, 임신중지(낙태), 출산, 양육 등 재생산과 관련된 전 과정 속에 위치시켜 논의를 해 보자……. 그랬었다. 낙태는 여성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맥락 과정 속에서 결정되는 행위이자 이 결정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여성이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 결정하는 것이므로, 여성의 낙태에 대한 결정을 사회적 맥락 속에 위치시켜서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선택권이라는 기존의 이분법적 대립 구도를 벗어나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런 논의 속에서 낙태를 하는 여성들이 안전하게 시술받을 수 있는 여성의 건강권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고, 재생산 과정에 있어서 여성들의 결정권 보장은 또한 한 여성이 자신이 재생산과정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음으로써 남성과 동등한 시민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조건으로서의 평등권의 문제라는 것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 낙태라는 이슈는 결국 여성에 대한 형사적 처벌 강화의 방향으로 흘러갔고, 우리는 여전히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지 말라!"는 가장 낮은 단계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우리는 낙태 불법화와 안전하지 않은 낙태 시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매 년 7만 명의 여성들이 불법 낙태 시술로 죽어가고, 800만 명의 여성들이 합병증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외쳐야하는 상황이다.(*) 이것이 OECD 가입을 자랑하는 한국의 현실이다.

[설명] 과거처럼 다시는 옷걸이로 여성이 스스로 낙태를 해야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br />

▲ [설명] 과거처럼 다시는 옷걸이로 여성이 스스로 낙태를 해야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낙태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관계들은 생략된 채 낙태라는 행위를 한 여성에 대한 비난과그 처벌만이 남아있는 이러한 현실이 너무 서글프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낙태 범죄화인가? 여성들은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순간 취약한 위치로 전락한다. 낳아야할 지, 낳지 말아야할 지... 낳을 수 있을지, 낳을 수 없을지...의 고민들 속에서 여성들은 때로 남자친구, 남편, 파트너의 눈치를 보고, 결정 후에 오롯이 남겨질 사회적 시선을 견뎌내야 한다. 반면 남성들은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낙태한 여성들을 고발할 권리를 법적으로 갖는다. 그러나 반대로 여성들이 낙태를 원치 않을 때 여성의 낙태를 강요하는 상황이 오면 이들은 낙태죄로 처벌 받지 않는다. 결국 낙태에 대한 처벌은 여성의 몸에 오롯이 새겨지는 형벌인 것이다.

이 글을 끝내야하는데 계속 아쉬움이 남는다. 성명서를 쓰면서 담아내지 못했던 내 마음을 담아내고 싶었는데 아직은 그 마음들이 언어화되지 않는가 보다. 아마 나처럼 마음속에 담아두고 꺼내지 못하고 있는 낙태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이 많은 여성들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을 씨실과 날실 삼아 우리의 이야기들을 펼쳐 내다보면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도 다시 꺼내놓을 수 있겠지……. 그 날들을 기다리며 다시 난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지 말라”는 구호를 외칠 준비를 한다. 지금은 그래야하니까.

[설명] 다시 영화<더 월(If the walls could talk)>의 한 장면<br />

▲ [설명] 다시 영화<더 월(If the walls could talk)>의 한 장면



* 출처: Guttmacher Institute에서 발간한 <전세계 낙태: 지난 10년간의 불균등 발전> 보고서

덧붙임

이안지영 님은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NGA)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