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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의 놀이와 노동]사유 소프트웨어의 ‘이용자 감옥’에서 ‘탈옥’하기

이용 허락

우리는 '내 컴퓨터'에 깔려있는 마이크로소프트(M$)사의 윈도나 워드, 혹은 아래아한글, 엠피쓰리 음악파일이나 게임 프로그램을 내 것으로 여기며 친구랑 주고받거나 지우고 새로 깔고 하는 일에 아무런 문제를 못 느낀다. 하지만 저작권(법)의 강화는 바로 그런 자연스러운 문화를 문제삼는다. 보통 소비라는 것이 내가 무언가를 구매해서 소유하여 내 마음대로 처분하는 일인데, 오늘날 저작권법이 보장하는 정보 상품에 대한 소비는 그것을 임대하여 이용하는 것을 허락받는 일로 달라졌다. 우리가 소프트웨어를 사서 쓴다는 것은 컴퓨터 상의 복제를 허락받는다는 의미다. 즉, 소프트웨어는 복제(씨디롬이나 인터넷 다운로드)를 통해 판매가 되어 '내 컴퓨터'에 설치될 수 있는데, 이는 그것을 구매한 우리가 소유하고 양도하고 처분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계약서에 서명하고 받은 ‘이용 허락’(라이선스, license)을 받은 것에 불과하다. 이 때 서명은 소프트웨어 설치할 때 나오는, 그러나 보통 우리가 읽지 않고 ‘동의합니다’의 란에 클릭하는 것을 말하고, 계약서는 예의 그 읽지 않고 지나친 '최종사용자 이용허락 동의[계약]'(EULA, end-user license agreement)를 말한다.

정품 윈도 씨디를 샀다면 위의 과정을 거친 소프트웨어 임대 계약에 따라 단지 한 개의 컴퓨터에서만 사용하는 것이 허용된다. 친구에게도 깔라고 주거나 다시 팔거나 그것을 변경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물론, 엄청난 돈이 들지만,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살 수도 있다. 혹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판매하는 측이 다양한 계약 조건을 내걸 수도 있다. 한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자기가 만든 소프트웨어는 인권을 침해하는 목적으로 절대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을 그 계약서에 명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주로 쓰는 대부분의 소프트웨어가 내건 이용허락은 돈이 관건이다. 어쨌든 우리의 자연스러운 정보 이용문화와 다르게 나에게 있지만 내 것이 아니고 소유가 아니라 임대다. 거의 모든 정보상품, 즉 돈을 내고 사서 쓰게 되어 있는 정보와 지식과 문화는 다 이런 식이다. 그러면서, 경쟁 출판사들이나 해적판 제작자들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저작권법은 지난 10여 년간 이용자에 대한 규제로 돌변해왔다. 더 이상 저작권은 ‘복제본을 생산해 판매하는 권리’에 그치지 않고, ‘권리가 있는 복제본’의 이용 허가를 구매해야 하는 이용자를 통제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용 통제

문제는 소프트웨어의 지적 재산 권리를 소유한 사람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대해 언제나 통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이용자에 대한 통제는 폐쇄적 독점 데이터 포맷을 통해서 잘 드러난다. 데이터 포맷은 파일을 저장하는 방식을 말한다. 우리가 엠에쓰 워드나 아래아한글로 문서를 작성하고 저장하면 디오씨(doc)나 에이치더불유피(hwp)라는 데이터 포맷으로 저장되는데, 이 세상 누구도 그 문서 포맷을 여는 방법을 모른다. 마이크로소프트(M$)사나 한글과컴퓨터사 이외에는 말이다. 저 포맷으로 저장된 문서를 전달받은 어떤 사람이 엠에쓰 위드나 아래아한글을 안 쓴다면 열어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문서를 열어 보고 고쳐쓰고 하려면 엠에쓰 위드나 아래아한글 소프트웨어 복제본을 돈내고 임대해 사용하든지 어떻게든(!) 구해야 한다. 이는 문서 파일만이 아니라 음악, 영화 등 모든 파일의 공유와 교환도 마찬가지이다. 돈주고 소프트웨어를 사서 '내 컴퓨터'에 깔아 쓰더라도 그것이 내 것이 아니듯이, 그걸 이용해 생산한 나의 정보와 지식도 마이크로소프트(M$)사와 같은 소프트웨어의 소유 기업이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통제가 심해 소프트웨어 사용이 상당히 불편한 일이 된다면 시장 형성이 안 될 것이므로, 통제는 눈에 보이지 않게 간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시장을 이미 독점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통제를 굳이 숨기려들지 않는다. 엠에쓰 워드의 경우 몇 년에 한 번씩 판올림을 하면서 그 데이터 포맷도 변경해버린다. 엠에쓰 오피스2007을 샀다면 docx 포맷을 쓰게 되는데 이를 이전 판을 쓰는 친구에게 보낼 수는 없다. 그 친구도 오피스2007를 사든지 어떻게든 구해놔야 그 파일을 열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진보네트워크와 정보공유연대의 “열린 문서 캠페인”

▲ 진보네트워크와 정보공유연대의 “열린 문서 캠페인”



사실 우리의 일상적인 컴퓨터 이용문화를 놓고 볼 때 100% 공감할 얘기는 아닌 듯하다. 그래서 더 문제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컴퓨터가 마이크로소프트(M$)사 제품으로 쫙 깔려있기 때문에 어딜가도 엠에쓰 윈도, 엠에쓰 오피스, 엠에쓰 익스플로러가 있고, 혹은 한글과컴퓨터사의 아래아한글이 있어서 이런 식의 호환을 걱정할 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요하면 다양한 경로로 손쉽게 구해 깔면 되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폐쇄된 데이터 포맷의 사용은 산업계에서 ‘판매자 잠금’(vendor lock-in)이라고 부르는 사태로 이끈다. 이것은 다른 생산물이나 서비스로 옮기는 것이 학습비용과 전환비용이 너무 비싸거나 골치아픈 일이 되어 그냥 계속 그 판매자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에 더해 '이용자 감옥'이라는 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시장을 독점할 뿐만 아니라 그에 충성스런 이용자들이 허다한 판매자는 더 많은 이윤창출과 안정적인 독점 유지를 위해 자기가 만든 것만 쓰도록 통제하는 '이용자 감옥'을 만들 수 있다. 애플사의 아이팟이나 아이폰을 이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탈옥'(jail-breaking)이 성행하는 것도 시장을 독점하려는 기업이 폐쇄적 기술을 강제하는 '이용자 감옥' 탓이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M$)사의 윈도를 불법복제해 쓰거나 애플사의 아이팟이나 아이폰을 '탈옥'해 쓴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1998년 빌게이츠는 워싱턴대학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중국에서는 해마다 3백만 대의 개인용 컴퓨터(PC)가 팔리지만 아무도 소프트웨어에 돈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사게 될 것이다. 그들이 훔쳐 쓰려고 하는 것도 우리에겐 나쁘지 않다. 그들은 그렇게 중독이 될 것이고, 우리는 어떻게 돈을 챙길지만 생각하면 되니까!" 그리고 2007년, 마이크로소프트(M$)사의 영업 담당자인 제프 라익키스(Jeff Raikes) 역시 한 회의에서 비슷한 주장을 했다: “만약 누군가 복제 소프트웨어를 쓴다면, 그것이 엠에쓰 제품이길 바란다.” 판매자 잠금 혹은 네트워크 효과를 통한 독점화는 자발적인 불법복제 이용자들 덕분에 더욱 강화될 수 있고, ‘탈옥’은 애플사가 허용하지 않은 그러나 내게 필요한 응용프로그램(앱, app)을 맘대로 깔아 쓸 수 있는 자유를 주지만 사실상 보이지 않은 더 큰 '이용자 감옥' 안에서의 그것일 수 있다.

다른 한편, 한국의 은행들이 그것을 만든 마이크로소프트(M$)사조차 보안에 도움이 안 된다고 실토한 액티브액스(ActivX)로 죄다 인터넷뱅킹 체계를 구축한 것도 바로 판매자 잠금과 이용자 감옥의 비극이다. 액티브액스(ActivX)는 단적인 예일 뿐이다. 한국의 마이크로소프트(M$)사의 소프트웨어 의존도가 90%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혹시 마이크로소프트(M$)사가 망할 위기에 처하면, 이 초국적 정보기업을 망하지 않게 하는 무슨 이용자 캠페인이라도 벌어지는 게 아닐까? 과장이 지나치지만, 일상적인 컴퓨터 이용을 그에 의존해온 한국의 수 백만에서 수천 만, 혹은 전세계의 수억의 사람들이 마이크로소프트(M$)사가 망하지 않도록 앞장 서 모금하는 따위의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실제로 1998년에 한글과컴퓨터사가 무리한 사업확장과 무책임 경영으로 부도 위기에 처했을 때 그런 비슷한 일이 벌어졌으니 말이다. 마이크로소프트(M$)사 살리기 캠페인과 같은 일은 재수없는 상상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합법복제이든 불법복제이든 마이크로소프트(M$)사의 사유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M$)사가 운영해온 ‘이용자 감옥’에 들어가 안에서 자물쇠를 잠그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은 곧 우리의 자유를 스스로 구속하며 마이크로소프트(M$)사가 망하지 않도록 돕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수많은 자유소프트웨어 운영체계 중 하나 - 우분투 한국 사용자 모임에서 우분투 그누/리눅스(Ubuntu GNU/Linux)를 한글 환경에 맞게 수정한 배포판(http://www.ubuntu.or.kr)

▲ 수많은 자유소프트웨어 운영체계 중 하나 - 우분투 한국 사용자 모임에서 우분투 그누/리눅스(Ubuntu GNU/Linux)를 한글 환경에 맞게 수정한 배포판(http://www.ubuntu.or.kr)



습관에 맞선 투쟁

다른 수많은 것들처럼 소프트웨어에 있어서도 사유 소프트웨어의 대안으로 자유 소프트웨어가 있다. 그런데 자유 소프트웨어(free software)에서 '프리'(free)가 무료가 아니라 자유라고 하지만, ‘자유에 대한 윤리’적 문제 설정만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M$)사를 욕할 수는 있어도 우리의 습관을 이길 수는 없는 것같다. 우리의 동의를 어떻게든 받아내는 (헤게모니적) 지배는 우리 일상생활 속의 습관의 형태로 존재한다. 판매자 잠금 혹은 네트워크 효과는 독점의 문제로 이어지는데, 이용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습관의 문제이다. 그래서 저작권 체제 역시 우리의 자연스러운 정보공유 문화, 우리의 어떤 습관을 뜯어고치려고 하듯이, 우리도 우리가 가진 어떤 습관에는 맞서 싸워야 할 것같다. 이 습관에 맞선 투쟁을 위해, 우리를 통제하고 문화를 독점하려는 기업에 일단 ‘동의합니다’를 클릭하지만 자연스럽게 무시해버리는 방식의 저항과, 으레 해오던 '동의합니다'에 순순히 클릭하지 않고 과감히 대안을 키우는데 참여하는 방식의 저항이 생산적으로 만나야한다.

참고한 것



덧붙임

조동원 님(dongwon@riseup.net)은 미디어운동과 문화연구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