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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호의 인권이야기] 신고하지 않고 함께 살 권리

“저는 법적으로 총각입니다”

사람들이 결혼을 화제에 올릴 때면, 가끔 농담 삼아 이렇게 이야기한다. 농담이긴 하지만, 이 말은 동시에 진담이기도 하다. 결혼 5년차인 나와 아내는 아직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를 두고 주변에선 말들이 많다. 당연하게도 양가 부모님은 만날 때마다 성화시다. 초기에는 ‘어쩌자고 혼인신고를 안 하는 거냐’는 협박형 권유가 많았으나 ‘너희들은 무슨 계약결혼을 한 거냐’는 등의 결혼에 대한 간접평가와 은근한 압박으로 변하더니 이젠 ‘너희가 애를 낳으면 별 수 있겠냐’라는 생각에 아이에 대한 요구가 더 많아졌다.(사실, 아이에 대한 강요 역시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는 권리를 침해하는 사례임에 분명하지만.)



나는 20대 기간 내내 ‘지금과 같은 결혼제도 하에서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나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국은 현실과 기분 좋게 타협하는 길을 찾았다. 그렇지만 혼인신고만큼은 서둘러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까닭은 귀찮아서, 시간이 들어서, 비용이 들어서 등등 다양하다. 하지만 본질은 국가에 ‘등록’을 하는 것이 두 사람의 관계를 공인하는 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혼인신고가 갖는 현실적 기능이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현격하게 낮던 시절, 혼인신고는 여성의 권익을 지켜주는 하나의 보루와도 같았을 것이다. 지금은 현실적으로 폐지되었지만 ‘혼인빙자 간음’ 같은 죄목도 마찬가지 맥락이었을 터이다. 여전히 유사한 지점은 있다. 만약 내가 사고나 기타 이유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 아내에게 유산이 상속되도록 하는데 혼인신고는 절대적이라는 이야기를 주변인들에게 꽤나 들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아닌가. 뭐, 서로에게 상속해줄 만한 재산이 변변치 않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이 역시 크게 고려할 대상이 아니긴 하지만.

하긴, 사실혼 관계라는 법적 용어가 있긴 하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인정되는 관계라는 수동적인 입장이 드러나는데다가 왠지 부정적인 뉘앙스와 음습한 시선이 느껴진다. 이 말은 꼭 ‘사실혼 관계에 있는 너희들은 떳떳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정당하지 못한 관계야’라는 법의 부당한 규정인 것만 같아 맘이 불편해진다. 비록 사실혼 관계에 대한 폭넓은 인정이 어느 정도까지는 혼인신고를 대체하는 효과를 갖는다 해도 말이다.

프랑스에는 결혼하지 않고 단순히 계약만으로도 결혼생활과 같은 법적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시민연대계약’이라는 제도가 있다. 나는 이 말을 한때 동료였던 목수정 씨의 책에서 만났다. 최초에는 동성애자 커플의 법적 권리와 복지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 제도는 현재 이성애자 커플이 훨씬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동성애자 커플 중 한 명이 죽으면 남은 한 명이 법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이들과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던 거다. 사실, 프랑스에서도 이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99년도였다고 하니 그리 오래 된 전통은 아닌 셈이다.

어쨌든 나는 국가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지금의 아내와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 물론, 나는 결혼제도와 타협한 이상 현실적인 문제들을 끝까지 회피하거나 거부할 생각은 없다. 실용적인 차원에서 혼인신고가 우리의 권리와 연계되는 지점들이 나타난다면 상의를 통해 혼인신고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위에 예로 든 아이 문제가 그렇다. 아이를 갖게 된다면 아마도 그때는 불가피하게 혼인신고를 하고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신고하지 않고 함께 살 권리를 누릴 계획이다.
덧붙임

안태호 님은 예술과 도시 사회연구소 연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