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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호의 인권이야기] 상상력을 박탈당하지 않을 권리

중학교 미술시간. 미술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고는 교실을 헤집고 다녔다. 나에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공포스러운 순간이었다. 학생들의 그림을 하나하나 둘러보던 선생님이 지목하는 아이들은 단박에 교실 뒤편으로 가 ‘엎드려뻗쳐’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긴 말도 아니었다. “너, 나가”, “너, 나가”, “너도 나가”. 선별이 끝나면 이어지는 매질, 뒤따르는 훈계. 선생님의 명분은 단순명료했다. ‘정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니들 그림은 초등학생 그림이야, 니들은 정성이 없어!”

가끔 생각한다. 그 때, 미술선생님이 그렇게 나를 몰아세우지만 않았어도, 일주일에 두 차례씩 꼬박꼬박 엎드려뻗쳐에 이은 매질과 훈계에 긴장하며 살지만 않았어도,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을 그렇게 기피하지 않았을 거라고. 낯가림이 있는데다 소심하고 심약했던 나는 악몽 같은 미술시간 1년을 그렇게 보낸 후, 미술시간만 되면 가슴이 콩닥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증상을 앓았다. 결국 아직까지도 무언가 그리거나 만들거나 하는 일이 어색하고 어설프기 짝이 없다. 친구들에게 항상 농담 삼아 이야기한다. 내가 한국의 피카소가 될 지도 몰랐는데 그 선생님이 싹을 짓밟아 놓았다고. 아니, 농담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한때는 피를 토할 만큼 억울했다.

언젠가 내 이야기를 들은 지인은 정확히 반대되는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초등학교 시절, 찰흙으로 만들기를 하는데 마땅히 만들게 생각이 안 나 그저 둥글고 길게 찰흙을 말아 쥔 뒤 눈만 덩그러니 두 개를 붙였단다. 그래놓고는 ‘우주지렁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선생님이 발상이 좋다며 칭찬해 주셨다는 거다. 물론, 이 지인이 지금 예술가가 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만화기획자로 참신한 상상력을 발휘해 매번 빼어난 기획들을 내어놓으며 활약하고 있다.

물론, 나는 미술에 재능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재능’은 학교가 원했던 ‘똑같이 그리는’ 재능이 없었던 것뿐이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 미술이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사람의 상상력을 촉진시키는 세계인지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분노와 억울함, 안타까움이 생생하다. 나는 내 인생에서 중고등학교 미술시간에 고양시키고 자극할 수 있는 상상력의 분량을 덜어내는 쓰라린 경험을 한 셈이다.



그런데, 내가 중학교 때 겪었던 일이 지금 고스란히 다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미술가들이 대북삐라를 패러디해 청계광장에서 현 정부를 비판하는 풍선을 띄우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경찰들이 손바닥만 한 풍선까지 모조리 터뜨려 버렸다. 대통령을 풍자한 작품은 국정원 직원의 요구로 전시장에서 모습을 감췄다.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독립영화인들의 둥지는 얼토당토않은 단체들에 운영권이 넘어가버렸다. 이미 결정된 기금지원을 두고 시위에 불참하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예술단체들에 들이민다. 장관의 모습을 패러디한 네티즌은 고소를 당했다. 내겐 이 모든 일들이 미술 선생님의 불합리하고도 반교육적인 동시에 반인권적인 매질과 훈계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더군다나 예술가는 잠수함 속의 토끼 같은 존재들이다. 그 예민한 감수성과 상상력으로 사회의 퇴행에 경종을 울린다. 그런데 이 정부는 예술가들의 표현까지 노골적으로 간섭한다. 우리는 상상력을 박탈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시키는 대로,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똑같이 그리지 않는다고 매질을 하는 만행은 중학교 미술선생으로 충분하다. 내가 중고등학교 미술시간에 얻을 수 있는 상상력의 자극을 박탈당한 것처럼, 우리 사회가 이 정부가 집권하고 있는 동안 상상력을 박탈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쉽게 저항하기 어려운 상대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저항해도 되는 것인지. 선생님은 너무나 어렵고 거대한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정부가 아무리 힘이 세도 결국 그 권력이라는 것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던가.
덧붙임

안태호 님은 예술과 도시 사회연구소 연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