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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 비친 인권풍경] 대학졸업 앞에 놓인 것들 ②

행정인턴은 숫자 놀음

W군(30)은 2009년 2월 서울에 소재한 4년제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을 했지만 취업을 할 수가 없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를 하다가 취업준비를 하려니 잘 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취업이 힘들겠다는 판단을 했고, 결국 영어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다 우연히 아는 사람에게 행정인턴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인턴에 지원하게 된다. 용돈이라도 벌면서 영어공부를 하자는 심산이었다. 5개월간의 행정인턴 과정을 마치고 그는 다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2009년 6월부터 5개월 동안 A구청 가정복지과 행정인턴으로 근무했던 W(30)를 만나 그 속사정을 들어보았다.

그가 행정인턴에 지원하게 된 계기는 영어 공부를 위해 외국에 나가려고 돈을 모으던 차였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중, 행정인턴제도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어차피 사회 생활의 경험을 쌓으면 도움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돈만 벌려면야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게 나았겠지만, 무의미하게 돈만 버는 것보다는 사회경험도 쌓을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했다. 또 개인적으로 과거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었기 때문에 실제로 어떻게 일하는지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

그러나 그가 생각 했던 행정인턴의 업무는 뚜렷하지 않았다. 사회생활의 경험을 쌓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처음 2주 동안은 아무 것도 안했다. 아마 시킬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나중에는 주로 잡무를 맡았다. 내가 일했던 A구청 가정복지과는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처음 인턴을 뽑을 때 어린이집 희망근로. 어떻게 보면 우리 과는 필요해서 뽑은 것이다. 그런데 사실 다른 과는 특별히 업무가 있어서 인턴을 뽑는 경우는 드물다. 처음에는 문서철, 복사, 모니터링단. 행사보조도 하고……꾸준하게 ‘보조’였다. 나 같은 경우는 다른 인턴에 비해 많은 일을 한 편이었는데, 어린이집 점검이라는 고정업무였다.”

실업 수치 낮추기, 숫자 놀음

사실 행정인턴의 문제는 정부의 실업정책이 단기적이고 포장용이라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입을 모은다. 짧은 기간이지만 행정인턴의 경험을 한 그도 언발에 오줌누기 격의 근시안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잠깐 청년실업률 수치를 낮추기 위해 만든 제도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일반 사기업과 달리, 정직원이 되리라는 기대는 할 수가 없지 않냐고 말이다.

“일반 기업 같은 경우는 일을 잘해서 능력을 인정받으면 나중에 정직원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있는데, 이 제도는 단순히 ‘숫자’를 위한 제도다. 그리고 가봐야 뻔히 하는 일이 보인다. 나도 사실 잡무가 많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처음부터 제도 자체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예견된 바니까. 사람들은 어떤 기대를 가지고 갔는지 모르겠는데, 난 그다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일반 공무원들이 하는 대민업무를 계약직이 할 수는 없다. 그런 것 빼고 나면 남는 건 잡무뿐이다. 정말로 그렇게 필요해서 쓸 거라면, 우리 팀같이 어린이집 점검‘과 같은 특정한 업무를 정해놓고 인턴을 뽑았으면 좋겠다. 괜히 위에서 하라니까 뽑아놓고, 시킬 일 없으니까 인턴들 뻘쭘히 앉아있는 상황이 생기지 않나.”

더구나 취업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처음 행정인턴을 신청할 때 지원서에 신청자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공공기관 이름밖에 없다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고 그는 말한다.

“거기서 어떤 일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대략적으로라도 어떤 일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구청 가정복지과에서 일하는 것도 몰랐다. 어느 날 구청으로 오라고 해서 매점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서류에 ‘가정복지과’라고 배정되어 있더라. 어떤 친구는 동사무소, 어떤 친구는 문화체육과.. 그런 식으로 임의로 배정된다. 그냥 이름만 보고 1, 2지망을 적고 지원하는 게 다다. 그리고 면접도 볼 줄 알았더니 그냥 바로 서류만 보고 통과하더라.”

행정인턴, 공익근무요원, 희망근로와의 차이는?

행정인턴이 하는 일이 기존의 공익근무요원이 하는 일은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더구나 희망근로와도 겹친다고 그는 말한다. 안정적인 일자리는 줄어든 채 보조업무들을 취업률 상승을 위해 임시 일자리를 임시방편으로 만들다보니 이런 일이 생긴 거다. 어차피 세금으로 하는 일이라면 정규직 일자리를 더 만들어서 대민업무를 더 꼼꼼하게 잘할 수 있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사실 몇 개월짜리 임시직이 할 수 있는 대민업무는 한정될 수밖에 없다.

“내가 공익인지 인턴인지 모를 때가 있다. 공익이 하는 일을 행정인턴이 하는 경우가 많다. 또 희망근로와도 겹친다. 기존에 계약직으로 일하던 사람들을 희망근로로 돌린 경우가 많다. 서로 일이 겹치기 때문에 누구 하나는 놀게 된다. 일이 줄어드니까. 그러니까 결국은 세금낭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자화자찬식 취업률

행정인턴을 경험한 취업 준비생들의 취업률은 64.7%(2009년 8월 기준)였는데, 절반이상이 취업에 성공하고 있으니, 행정인턴 경험이 취업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발표하지만 이는 자화자찬이라고 그는 말한다.

“행정인턴 담당 주임도 너희 주는 이게 아니라 취업이니까 취업준비를 계속해라라고 얘기한다. 서울시에서도 인턴들한테 계속 취업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연계해 준다. 인턴들은 기존에 이미 취업준비를 하던 사람들이다. 물론 인턴 인증서 같은 거 를 주던데, 그거 받으면 이력서에 한 줄 더 적을 수는 있겠더라. 물론 나는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해서 받지 못했지만. “


그가 생각하기에 행정인턴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한시적이라는 점이다. 이후의 취업과의 연관성이 전혀 없는 업무배치, 이후 취업과 연계성도 없는 한시적 일자리는 취업생들에게 용돈을 버는 일자리, 그것도 세금으로 만든 아르바이트 이상의 의미가 없는 게 문제라고 그는 말한다.

“그치만 기왕에 하는 거면, 정말로 도움이 되려면, 중소기업 연계가 되어서 행정인턴의 성실성이나, 그런 걸 판단해서 기업에 추천을 해 주는 제도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중소기업은 자체적으로 인턴을 하기도 힘드니까. 공공기관 행정인턴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신뢰성 있는 인력평가가 가능하다고 본다. 또 공공기관에서 선정하는 중소기업은 또 어느 정도 탄탄한 기업만 연계되지 않겠나? 그럼 취업준비생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믿음이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중소기업이 탄탄해져야 실업률이 내려간다. 인력을 그만큼 수급하는 과정을 국가가 지원해준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인턴경험을 가지고 정책제안까지는 못하겠다. 행정인턴들 사이에 어쩔 수 없는 경쟁이 생길 것이고 그 평가과정이라는 것도 얼마나 객관적으로 이루어질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지 않나. “

그는 국가가 실업청년 한 명한 명을 위해 건 한계가 있다하더라도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은 큰 틀을 잡아주는 거라고 말한다. 단기적인 정책도 때로는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청년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국가와 개인이 서로 노력해야하지 않겠냐고 말할 정도로 그는 취업을 위해 성실히 노력하는 청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어느 누구도 취업을 위해 마음이나 삶을 게을리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

그래서 더욱 청년 실업 문제가 더 심각하게 느껴진다.
덧붙임

융인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