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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책의 유혹

[책의 유혹] 그 노래를 들어라

함께 울고 웃고 분노하는 마음을 일깨워주는 책

평소 책 안 읽기로 유명한 나에게 이런 글을 쓴다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다. 사실 난 주변사람들, 특히 활동가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든다. 이런 책, 저런 책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읽은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운동권들이 필수적(?)으로 읽어야 한다거나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학자들... 뭐 이런 것도 나는 잘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가 너무 무식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 다른 사람들이 책 이야기를 할 때면 그냥 끄떡이며 입을 닫아버린다. 그런 나에게……. 흑흑;;;;

내가 시집을 선택한 것은 분량이 작아서가 아니다. 결코 오해하시지 마시길...ㅋㅋ 평소 나는 인권운동연대 소식지에 곧잘 이 시집에 나온 시들을 싣곤 한다. 우리 회원들은 대부분 가난하다. 가난해서 빚을 지고, 몸이 아파 일도 잘 못하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그냥 그런 사람들이다. 뭔가 다급할 때는 달려와서 당장 해결해 달라고 소리치지만 급한 일 해결하면 돈 벌이에 몸이 녹초가 되어 사무실 한번 방문해 주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을 매일 만나면서 한편 세상이 야속하기도 하고, 내가 하는 일이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 그럴 때면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지, 뭐.’라며 한숨 쉰다.

세상의 풍경을 이루는 사람들을 만나다

책 이야기는 안하고 너무 나의 한풀이만 했나? ㅋㅋ 이 시집 속에 나오는 삶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 우리 회원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난 이 시들을 소식지에 싣는다. 나의 삶을 글로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요즘은 일일 드라마나 인생극장에서도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만나기 힘드니깐. 평범하고 하루를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짧은 시집 속에는 세상의 풍경이 되어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럼 시 하나를 소개해 볼까?

정기 건강 검진

가슴이 답답해도
뒷골이 뻐근해도
병원에 갈 수 없습니다
큰 병 얻기 전에 빨리 병원 가라는
아내의 잔소리 앞에서
고사리 손으로 어깨 주무르는
아이들 재롱 앞에서
아직 한 목숨 바쳐
지켜야할 가장의 자리가 너무 커
끝내 병원 가기가 두렵습니다
빵구 투성이 용접쟁이 하나 의지하며 살아온
아내와 아이들에게
혹시 드러누우라는 결과 나올까 싶어
그 결과 앞에 대책 없이 스러져버릴 가족들 생길까 싶어
공장 정기 검진 받는 날 월차를 씁니다



신경현 시인은 대구에 있는 성서공단노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역시 본인이 겪고 느낀 삶의 경험이기에 이런 시들이 나오는 것 같다. 마찌꼬바 영세사업장에서 몇 년째 같은 임금 받는 고령노동자, 프레스에 손이 짤려도 아프다 말 못하는 이주노동자, 아이 머리가 불덩이가 되어도 병원에 데리고 가지 못하는 여성노동자. 이들을 만나면서 함께 이야기하고 소주마시며 서로 어루만지는 그의 글이기에 우리는 그의 글을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그 어떤 친절한 설명이나 해설이 따로 없지만 나는 시를 읽으며 느낄 수 있다.

공감한다는 것의 의미

학교를 다닐 때 국어책에 나오는 수많은 시들을 읽으면서 마음으로 공감하며 읽은 시가 있었던가? 너무 옛날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활동을 시작하면서 책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돌아오는 건 토론회 자료집과 회의자료 등 각종 ‘문건’들이다. 어려운 단어들을 읽어가면서 아는 것은 많아지는 것 같지만, 내 마음은 점점 딱딱해 진다는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함께 공감하는 것이 아닌 현상을 분석하려 하고, 마치 모든 것을 아는 듯 몇몇 단어들로 그것들을 규정해 버렸다.
하지만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이 어떻게 다 설명되어지고 분석될 수 있겠는가.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말 하는 나는 사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함께 울고 웃고 분노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실을 안다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가끔씩 사람들을 너무나 냉정하게 바라보고 기계적으로 대답하는 나를 발견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반복되고 지치는 활동가들의 생활. 그것은 불안정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의무적으로 집회를 가고, 정작 내가 읽어볼 여유도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선전물을 뿌려대는 활동가들의 삶과 그것을 받아볼 여유조차 없이 종종걸음으로 지나치는 노동자들의 삶은 너무나 닮았다. 사실 조금만 여유를 갖고 눈 돌리면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다. 나도 그렇고, 우리 아버지도 그렇고, 우리 회원들도 그렇다.

잠시 멈춰서 서로의 노래를 들어보자

앞으로도 우리는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불안하고 초조한 삶 속을 함께 걸어가면서 서로를 ‘힐끗힐끗’ 쳐다보겠지... 하지만 쉴 새 없는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만 길을 멈추자. 가슴을 펴고 숨을 들이키며 서로의 노래를 들어보자. 나의 슬픔, 너의 피곤함, 우리의 삶을 담은 노래들을……. 자~ 다시 한번 시집을 열어볼까?^^


*참고- 신경현 시인은 전국 현장노동자 글쓰기 모임인 ‘해방글터’ 회원입니다. 네이버 ‘해방글터’ 까페에 가시면 더 많은 시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덧붙임

아요 님은 빈곤과 차별에 저항하는 인권운동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