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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진의 인권이야기] 빈곤비즈니스, 벼룩의 간 빼먹기

학생들은 은행의 먹이?

대학교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올라 학생과 학부모들을 힘들게 한지 오래다. 그런데 이를 완화해준다며 내놓은 대책이 부담을 높이고 있다. 실제 신용카드로 등록금을 납부하도록 하는 대책은 사실상 등록금 부담을 가중시킨다. 카드수수료를 부담하는 학교측은 학교발전기금이란 명목으로 되돌려 받으니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다. 금융기관과 대학의 파렴치한 대책으로 대학생과 그 가족의 고통은 더 심해지고 있다.

2005년부터 정부보증으로 시행된 ‘학자금 대출’이 ‘고리대금사업’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학자금 대출제도의 기준 금리는 7.3%로 현재 시중은행의 대출금리가 4%대까지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위험도를 반영한 가산금리 2.05%를 반영한 때문이라고 하니, 위험부담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떠넘긴 셈이다. 카드납부를 하는 경우 부담은 더욱 커진다. 카드 납부의 할부 수수료는 10.9%-19.5%로 학자금대출보다 두 배 높다. 등록금 상한제 및 무이자 분할납부제, 정부 보증 책임후불제, 학자금 보증이자 인하 등 여러 대책을 내놓지만 사실상 금융기관의 배만 부르게 하는 대책일 뿐이다. 등록금 반값 공약을 내걸었던 정부는 모르쇠를 대고 있다.

지난 9일 한나라당이 발표한 ‘금융소외자 종합대책’이 진정성이 있고 실효성이 있는 대책으로 인정받으려면 위와 같은 문제부터 우선 해결해야 한다. ‘종합대책’은 저신용자에게 소액대출을 해준다는 것이지만, 저신용자에게 도움을 준다는 명목으로 또 다시 시중금리보다 높은 고금리를 준다면 그게 무슨 대책인가!

빈곤비즈니스

이 같은 현실은 국내에서도 ‘빈곤비즈니스’가 활발함을 보여준다. ‘빈곤비즈니스’는 빈곤층을 대상으로 시장을 확대하는 사업이다. 학자금 지원을 명분으로 저소득층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돈놀이’를 하는 학자금대출도 이와 다르지 않다. 대부업을 하는 회사들의 고금리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일자, 대부회사보다 이자율을 싸게 해 준다며 다른 대출보다 두 배 이상 높게 책정된 이자율로 ‘저소득층 대상 소액대출’상품으로 출시하기도 한다.

‘빈곤비즈니스’의 중 대표적 형태가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다. 미국에서 빈곤층은 대출에 따른 원금과 이자를 부담하느라 고통을 겪었고, 결국 집마저 잃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대표적인 것이 학자금 대출사업이다. <빈곤대국 아메리카>라는 책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정부교육예산을 삭감하면서 저소득자용 교육비로 정부가 이자를 금융기관에 보조하는 학자금대출이 활발하다. 금융기관에서 이 ‘학자금 대출’을 ‘달러상자’로 불렀다고 한다. ‘교육예산 삭감 → 수업료 상승 → 학자금대출 증가’라는 고리는 정부의 입장에서 비용을 절감하고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이윤을 증대시키지만 학생들의 부담은 늘어난다. 대출은 고스란히 대학졸업 이후 갚아야할 빚이 된다.

그렇다고 졸업하면 사정이 나아지는가? 그것도 아니다. 대졸자의 초임은 낮고 불안정한 일자리가 대부분이어서 여러 수당과 의료보험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러니 그만큼 부담은 늘어난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새로운 미국대통령인 오바마는 교육 등 사회보장 지출을 대폭 늘리는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지만 공화당은 ‘사회주의’라며 비판하고 있다. 어떤 이는 이를 예산안을 둘러싼 ‘계급전쟁’의 서막이라고도 한다.

정부가 대학졸업자의 초임금 삭감정책을 발표하자 이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정부가 대학졸업자의 초임금 삭감정책을 발표하자 이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한국도 ‘빈곤비즈니스’를 본격화하려는가

한국도 위와 비슷한 길을 밟고 있다. 높은 금리로 학자금 대출을 받고, 졸업 후 취직은 어려운 데, ‘일자리 나누기’란 명목으로 대졸초임을 10-30%까지 삭감한다고 한다. 정규직 일자리는 고사하고 ‘청년인턴제’란 이름의 ‘알바’자리만 난무하다. 결국 학자금 대출금을 갚지 못해 신용등급은 떨어지고, 이로 인해 부담이 커져 ‘가난의 굴레’를 쓰게 되는 악순환이 지속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정부 대책은 전무하다. 아니 오히려 조장한다. 그것도 ‘일자리’를 강조하면서.

빈곤비즈니스는 일본에서 먼저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주거 및 생활지원, 취업 원조 등 본래 공공기관이 담당해야 할 복지 분야에 기업이 진출해 ‘노동빈곤층’(아무리 일해도 빈곤을 탈출하지 못하는 계층)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이득을 챙긴다. 연 수입 200만 엔 이하의 저소득 봉급생활자가 1천만 명을 넘어서지만 각종 복지정책을 축소하는 등 사회적 안전망은 점점 허술해지는 허점을 파고든 것이라 한다. 대표적으로 월세방을 구하기 힘든 빈곤층에게 값싼 방을 제공해준다며, 일자리를 소개해준 뒤 각종 수수료 명목으로 임금의 40%를 착취하기도 한다. 물론 빈곤층과 사업자 모두 ‘윈-윈’을 모색하는 사례도 있다고 하나, 드물다.

경제침체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올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하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4%이면 빈곤층은 120만 명이 늘어난다고 한다. 한국의 사회안전망은 4대 사회보험, 기초생활보장제도 등으로는 제도적 틀이 있으나 자격기준이 까다롭고 급여도 적어 형식적이다.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40%에 육박하고, 비수급 빈곤층도 300만에 다다르는 등 사회적 빈곤은 더욱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서비스산업 선진화’명목으로 교육, 의료, 사회서비스 등 필수 공공서비스를 시장에 맡기거나 이윤을 창출하는 ‘비즈니스’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대책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러니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사회안전망마저 훼손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이 상황에서 미국이나 일본처럼 잘못된 빈곤대책이나 ‘빈곤 비즈니스’가 확산된다면, 엎친데 덮친격으로 빈곤층은 더욱 고통에 빠질 것이 뻔하다. 이명박 정부가 저소득층의 지지율이 다른 계층보다 높다는 여론조사에 고무되어 ‘섶을 지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격의 정책을 쓰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독이 든 사과’라도 겉모습은 군침을 흘릴 정도로 탐스럽다는 걸 잊지 말자.
덧붙임

강동진님은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