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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교육, 날다]당연해 보이는 모든 것들을 의심하기

학교의 인권적 재구성을 위한 첫 발 떼기

새로운 사람과 만나기 전엔 늘 기대감, 설렘, 두려움 등의 감정으로 마음이 들썩거린다. 인권 교육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람을 만날 때에도 이러한 심리상태는 마찬가지다. 특히나 불특정 다수와의 대면을 앞둔 상황에서의 그 떨림이란 교육을 진행해 본 횟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리라. 물론 첫 만남의 어색함을 뛰어넘을 수 있는 수완은 경험을 통해 길러지겠지만, 진행자의 예측 가능 범위와 상상력을 뛰어 넘는 수많은 변수로서의 참여자들은 놀랄 만큼 서로 다른 곡선을 그리며 교육 시간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교육이 끝나고 한숨 돌리는 시간이 오기 전까지 교육을 준비하는 동안, 그리고 교육을 진행하는 동안 긴장을 떨쳐 버리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긴장이 우리가 인간이기에 마주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서로에게 더욱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진행자가 모든 것을 예측하고, 빈틈없이 통제하려 하기보다 인간의 반응은 모두 같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에 맞춰 교육의 흐름을 바꿔나갈 때 진행자, 참여자 모두 훨씬 더 즐거운 교육을 경험하게 된다. 침대에 맞춰 나그네의 육신을 절단했던 프로크루스테스처럼 이미 정해진 수업에 사람을 뜯어 맞추는 학교 교육의 현실 앞에 ‘인권을 통한 교육’에 대한 고민을 심화시켜 나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교육 참여자인 학생의 욕구에 귀 기울이고, 학교와 인권의 접점을 계속해서 만들어 가는 것이 학교 안 인권 교육의 첫걸음일 것이다.

날개 달기- 인권이 침해되는 순간, 싹트는 인권

토요일 나른한 아침 시간, 술렁이는 마음을 애써 부여잡고 교실에 앉아 있는 30여 명의 학생들 속에 ‘이방인’인 진행자들이 스며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한 때 방송에서 유행했던 ‘프라이팬 놀이’를 변형한 몸 풀기, 마음 열기 프로그램으로 첫 발을 떼어 보았다.
모둠별로 '인권' 하면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담아 두 글자 구호를 정하고, 게임을 해서 박자를 놓치는 모둠이 생기면 자신들의 구호에 담겨 있는 의미를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모둠 이름으로는 ‘인권’, ‘권리’, ‘자유’, ‘천부’, ‘침해’, ‘사람’ 등이 나왔다. '인권' 하면 지켜지는 상황보다, 침해되는 상황이 먼저 떠오른다는 ‘침해’ 모둠의 구호 설명은 교육을 시작하는데 좋은 디딤돌이 되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인권은 하늘이 주신 선물이나 국가가 원래부터 보장해 주던 권리가 아니라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에서 그것을 바꿔내기 위해 인권을 요청했던 보통의 사람들에 의해 성장해온 것임을 상기 시켜 볼 수 있었다.

더불어 날갯짓- 차별을 낚아, 편견을 바꿔

간략히 모둠 게임을 마치고 “휙! 차별 낚기”(인권교육 날다, 넷째 마당 참조)라는 참여형 프로그램을 함께 했다. 이야기 쪽지를 보고 연상되는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는 것인데, 참여자가 자신을 대입해 그림을 그리지 않도록 동화책의 한 일부라고 소개하고 삽화를 그려보도록 했다. 쪽지 어디에도 인물의 성별이 제시되어 있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려낸 삽화들 속에서는 성별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무의식적으로 배어나왔다.



예를 들어 같은 이야기 쪽지를 받았던 두 모둠 모두 어렸을 적 무용을 하고 싶었다는 선생님은 여성으로, 앞으로 트럭 운전수가 되고 싶다는 학생은 남성으로 표현했다. 일자리를 잃고 살 길이 막막해진 가장들의 모습 역시 두 모둠 모두 남성으로 형상화 했다. ‘여성다움’, ‘남성다움’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흔히 접하는 매체나 정규 교육과정에서는 암암리에 성 역할 구분과 그에 따른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은 한 가지 정체성으로 환원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개별이 가지고 있는 여러 특성 중 유독 ‘남성’, ‘여성’이라는 부분을 강조해 역할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것은 자유로운 삶을 억누르는 힘으로 작동한다. 그렇기에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차별들을 발견하고 이를 거부하기 위해서는 예리하고 민감한 인권 감수성이 필요함을 다시금 느꼈다.

더불어 날갯짓- 교과서를 찢어라

이어서 일상에 스며 있는 차별의 시선을 살피고자 ‘윈스턴 씨와 알라오 씨’(인권교육 날다, 넷째 마당 참조) 시를 함께 보며 차이점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영국인이자 백인인 윈스턴에게만 ‘씨’라는 호칭을 붙이고, 의사인 윈스턴이 나이지리아 농부인 알라오에게 일방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내용의 시에서는 백인이 흑인보다 의사가 농부보다 유럽이 아프리카 보다 더 우월하다는 시선이 암암리에 드러난다. 이러한 집단에 대한 위계화는 교과서의 삽화나 내용에서도 곧 잘 등장한다. 학교의 틀 안에서 벗어나기 힘든 참여자들이 중립적, 보편적이라고 여겨지는 교과서에서 한 걸음 떨어져 나와 그 속에 등장하는 편견을 발견해 보는 것은 인권을 사고하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교과서 삽화나 구절들 중 ‘이건 아니다!’ 싶은 부분이 있으면 그것을 찢고, 이유를 찾아보는 교육을 진행했다.



“마을 일을 결정하는데 여자가 없다.”
“남자만 체육을 잘한다는 것 같다.”
“백인이나 황인이 항상 흑인을 돕는다는 편견.”
“여자 위인이 없다.”

“휙! 차별 낚기”에서 고정된 성 역할과 편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서인지 각 모둠들이 여성차별을 드러내는 사례를 가장 많이 찾아냈다. 그 외에도 인종 차별, 장애 차별 사례 등도 교과서 곳곳에서 발견해 그것을 찢고 이유를 다는 작업을 했다. 학교 안에서 교과서를 찢는 행위는 그 자체로서 문제적이다. 지금이 ‘인권 교육 시간’이라는 전제가 사라져도 학생들은 이렇게 자유로이 교과서를 찢을 수 있을까. 인권은 언제나 숨 쉬고 있어야 하는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정해져 있는 ‘인권 교육 시간’을 벗어나 실제 삶 속으로 걸어들어 갈 때 그것을 실현하는 일은 만만치가 않다.

“군인은 왜 남자만 하지?”
“여자도 군인 할 수 있다.”
“너는 싸우고 싶니?”

군 가산점제 위헌 판결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을 때, 여성들도 똑같이 군대에 가야 실질적으로 평등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었다. 그러나 차별을 없앤다는 것이 모두를 똑같은 조건으로 만든다는 것은 아니다. 모두 군대에 가야한다는 것을 말하기 이전에 군대가 지닌 폭력성을 비판하고 군대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보다 인권적인 시선임이 “너는 싸우고 싶니?”라는 한마디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 같았다.

머리를 맞대어- 감시와 통제를 넘어

너무나도 짧았던 2시간. 더 많은 이야기와 더 나아간 이야기에 대한 욕구가 서로에게 생길 때쯤 교육을 정리해야 했다. 10여 분간의 남은 시간 동안 학생들과 함께 학교 안에서 인권적 가치와 충돌할 수 있는 몇몇 상황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여학생 보다 남학생에 대한 두발 규정이 더 강력한 이유는 무엇일까, 두발 문제를 학생회에서 논의하는 것 자체가 맞는 일일까, 학생회가 실질적으로 학생들의 이익과 권리를 대변할 수 있는 구조이긴 한 것일까 등등 솔직한 대화가 오고 갔다.

교실을 들어서면서부터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압박스러운 급훈은 여전히 학교가 학생들에게 편안한 공간은 아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교사, 동료들과의 관계 맺음은 상시적인 감시와 규율을 전제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며 가장 무서운 것은 본인 스스로 끊임없이 규율에 비추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학교의 주체로서 학생들이 자신들의 공간을 인권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10년 넘게 익숙하게 받아들여 왔던 규율이 불변하는 진리나 항구적인 기준이 아님을 의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덧붙임

*한낱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활동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