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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여성의 몸 - ②

[그대 건강권은 안녕한가 ⑤]

다이어트로 인해 망가지는 여성의 몸

강박관념, ‘사소한 생각이지만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그것을 떨쳐버리려고 하면 할수록 강하게 일어나 자기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다이어트가 만연한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기본 증상이다.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관념은 ‘다이어트의 생활화’라 할 수 있다. 다이어트의 생활화는 음식 섭취의 조절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나는지, 무슨 교통수단을 이용하는지, 언제 어떠한 포즈로 TV를 보는 지 등 자신의 생활양식을 총체적으로 검토하고 변화시킬 것을 요구 받는다. 자신에 대한 자기 통제이다.

“사실 다이어트하면서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요. 일종의 강박관념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게 생기더라고요. 정말 안 좋은 게 하루에 다이어트에 대한 생각을 안 하는 날이 없는 거 같아요. 오늘이나 내일 혹은 모레정도까지 먹을 식단이랑 양 같은 걸 계속 생각하고 있고요. 밥 먹기 전에도 먹을 양 계속 생각하구 먹고 나서도 먹을 양 잘 지켰는지 몇 칼로리 먹었는지 계속 생각하고, 만약에 좀 어긴 거 같다싶음 그거에 대해서 한참 생각하고 있고요. 제가 다이어트에 너무 얽매여 있는 거 같아요.”(네이버 지식인에 올라온 글 중)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관념은 몸의 변화를 통해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게 되는 독특한 심리를 갖게 만든다. 다이어트가 곧 능력의 평가 기준이 되고, 다이어트에 실패한 여성들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여성들은 상실된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 계속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런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증이 심해지면 우울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강박증은 우울증으로, 우울증은 식이장애로

오랜 기간 동안 다이어트를 지속하고 있는 L씨는 “다이어트를 하면서 마음의 평안함을 잃었다”며 “조금만 살쪄도 불안하고, 자신감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또한 “첫 한 달 동안에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4개월 동안 우울증 약을 복용했고, 거의 매일 울었다”며 “나를 뚱뚱하다고 했던, 나를 고생시킨 사람들과 사회가 미웠다”고 말한다. 다이어트로 인해 힘들었던 기억이 그녀에게 아픔으로 남아있는 듯 했다.

다이어트로 인한 우울증은 식이장애를 수반하기도 한다. 심각할 경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카펜터즈(carpenters) 그룹의 리더인 카렌 카펜터가 1983년 갑자기 사망했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지나친 다이어트로 인한 거식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다이어트에 대한 지나친 강박관념이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다이어트와 거식증, 카렌 카펜터의 안타까운 죽음은 다이어트와 거식증의 위험성을 세상에 알린 사건이었다.

식이장애는 음식물 섭취를 극단적으로 피하려 하는 거식증과 이와 반대로 음식물을 과도하게 섭취하고 나서 토하는 일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폭식증이 있다. 이는 신경성정신질환의 하나이다. 현대 거식증 환자의 90센트는 여성이다. 현대인은 모두 다 날씬해지기를 원하지만 특히 여성은 날씬함에 대한 과도한 병리적 집착을 보인다. 모든 연령대의 여성에 있어서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같이 보이고자 하는 노력과 이를 위한 지속적인 다이어트가 폭식을 하게 만드는데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이어트 식이장애에 걸리면 체중과 체형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며, 식사행동에 이상을 보인다. 즉,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스스로 먹을 것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조절력을 상실해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배가 아플 때까지 많은 양을 먹고선 다시 살이 찔 것에 대한 두려운 마음에 일명 ‘제거행동’ 즉, 일부러 구토를 하거나 이뇨제나 하제를 복용해 거식을 일으키게 한다.

거식증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광고 모델로 나선 이사벨 카로

▲ 거식증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광고 모델로 나선 이사벨 카로


여성들은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극단적인 불건강 상태에 놓이게 된다. 구토가 반복되면 내장의 기능이 크게 망가질 뿐만 아니라 위산의 역류로 인해 치아를 비롯해 구강이 크게 손상된다. 또한 다른 어떤 정신병보다 치사율이 높고, 호전되는 비율은 절반가량에 불과하다. 환자의 10% 정도는 목숨을 잃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식증 환자들은 뇌 내의 포도당 대사량과 호르몬 수치가 정상인에 비해 저하돼 있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이 증가해 골격의 강화를 가로막는다. 머리카락이 푸석해지고 뭉텅뭉텅 빠지기도 한다. 에너지 대사에 이상이 생기고 그에 따라 신경체계가 변해 두뇌의 발달과 성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준다. 또 혈액 순환장애, 수면장애, 방광 약화, 골다공증, 무월경, 월경불순, 영양부족, 저혈당 등의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성들이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은 점차 자기 자신이 ‘비정상’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구토를 할 수밖에 없도록 식욕을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혐오는 극에 달한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이러한 섭식장애가 감수성이 예민한 10대 여자 청소년들에게 더 많이 생긴다는 것이다.

식이장애는 어디까지나 마음의 병이라고 말한다. 거식증은 식욕상실로 인한 고통이 아니라 왜곡된 ‘자아 이미지’로 인한 이상한 집착이다. 엄밀히 말해 거식증은 ‘식습’장애가 아니라 ‘자아상’장애이고, 거식증을 만드는 것은 ‘몸’이 아닌 ‘몸 이미지’이자 몸에 투영된 ‘언어적 의미’인 것이다. 즉 지나친 다이어트로 인한 육체적인 고통은 몸을 억압하는 것을 넘어 폭력을 가하는 것이 된다.

여성의 건강을 위협하는 다이어트 식품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여성들을 불건강한 상태에 놓이게 하는 또 다른 원인은 다이어트 식품이다. ‘1주일에 5kg 감량 보장’, ‘기적의 다이어트 요법’ 등 화려한 말을 앞세운 다이어트 식품 때문에 피해나 부작용을 겪은 사람이 많다. 다이어트 식품의 가장 큰 문제는 식품의 재료 및 성분이 모두 표시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현재 5가지 주요성분만 표시해도 되도록 법 규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제조업체가 의도적으로 문제가 되는 성분을 표기 안 할 경우 법적 책임을 물게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소비자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 이러한 허술함 때문에 다이어트 식품에는 식품 원료로 사용이 금지된 성분들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 2008년 식품의약품안전청이 23건을 사들여 검사한 결과 10개 제품에서 식품 원료로 사용이 금지된 성분이 나왔다. 4개의 다이어트 식품에는 혈압상승과 관절통에 부작용이 있는 시부트라민 성분이 나왔다. 이처럼 다이어트 식품 성분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떨어져 여성의 건강권이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다이어트 식품에 포함된 이뇨제, 하제 성분은 과도한 수분 배출로 수분과 무기질의 불균형을 초래해 뇌졸중의 위험이 증가되고 만성 변비를 초래하게 된다. 또한 적은 열량을 섭취하게 되어 복부 팽만감 및 현기증이 발생하고, 심할 경우 복통, 오심, 구토, 설사를 유발시킨다. 영양 불균형으로 인해 탈모, 근육감소, 무기력, 피부 노화 등도 발생한다.

한국소비자보호원 조계란 씨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실제 식품만으로는 체중조절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심각한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체중감량에 효과가 있다고 홍보되는 특정 식품 등을 지속적으로 섭취할 경우 장 활동을 마비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부작용이 설사, 복통 등인데, 소비자들은 몸의 이상 증상으로 인식하지 않고 체중 감량의 효과로 보는 경우가 많아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크다.

덧붙임

* 주연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